부산에 왔다. 나의 첫 여행지였던 부산. 몇 번을 방문한 탓일까,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무덤덤함. 새로운 맛집을 찾는 것도 놀거리를 찾는 것도 조금 귀찮아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술을 시켰다. 평택에서 부산, 부산에서 일본 그리고 다시 부산으로의 이동길이 힘들었는지 술이 들어가지 않았다. 술 한 병도 비우지 못한 채 길을 걸은 밤. 술에 져버린 부랑자를 피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번, 두 번 통화 연결음이 울렸고, "오늘따라 전화 걸어주는 사람이 많네"라는 그의 말을 시작으로 우린 여러 대화를 나눈 것 같다. "잘 지내냐는 말에 어떤 대답도 할 수 없던 나. 통화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태풍이 온다더니 습한 바람이었다. 직장에서 해고 통지를 받았다는 그는 나의 전화가 너무도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고, "그때 내가 널 잡았다면 달라졌을까?"라는 말과 함께 미련을 남겼다. 본인이 어떤 사람이었냐 묻는 말에 나는 나쁜 사람이라 말했고, 우리가 이런 사이가 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며 웃음을 건네었지. 그 시절의 나는 불안했고 우울한 상태였기에 우리가 함께였다면 바다에 빠졌을 테다. 무작정 걷다 보니 해운대 앞바다가 보였다. 신발에 가득 찬 모래에 양말을 벗을까 고민하다 그냥 걷기로 했다. 태풍이 온다더니 파도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파도 앞에 혹여 사람이 들어갈까 지키는 직원과 직원의 제지에도 바다로 뛰어간 취객 두 명. 요란한 시간이다. "역시 헤어져야 할까." 바다 앞에 멈춰 흘러가는 파도를 바라보았지만 해결된 건 없다.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숨을 골랐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걸, 이제는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해야 한다. 새로운 시작이 필요한 밤, 새로운 발견을 해야 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