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동네 투어
어린 아들은 엄마랑 스파르타로 훈련하며 체력을 단련했다.
첫째 아이 4세(만 나이가 아닌 대한민국나이)가 되는 해, 3월에 어린이집에 보냈다. 다른 대부분의 아이들은 진작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그 아이들이 상급반으로 진급을 했기 때문에 빈자리가 있는 어린이집이 잘 없었다. 더군다나 말일생 엄마로 난 혼합반을 운영하는 곳을 제외시켰기 때문에 더더욱 찾기가 힘들었다.
혼합반은 쉽게 말하자면 4세 아이랑 3세 아이가 한 반에서 같이 생활하는 것이다. 해마다 분위기는 다르겠지만 그 해는 우리 아이가 가야 할 4세 반의 정원은 꽉 찬 터라 말일생인 우리 아이는 일 순위로 3세 친구들과 같이 생활해야 했다. 엄격하게 따지면 이렇게 운영하면 안 되는 것이지만 소규모 가정 어린이집의 경우는 운영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일부 허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이 시절의 아이에게는 한 달의 성장이 달랐기 때문에 나이의 의미는 크게 없긴 하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 시절 난 아들이 동급생 친구들과 어울려서 겪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일생 엄마의 자격지심이었는지 모르겠다.
잘 먹어도 모자란 때인데 입이 짧은 아이는 잘 먹지 않았다. 안 그래도 밥그릇수가 모자란데 말이다. 놀이터에서 아이와 놀고 있을 때 주위에서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아이가 진짜 행동이 재빠르고 잘한다고, 처음에는 칭찬인가 싶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덩치가 작아서 현재 나이보다 어리게 봤던 거다. 그럼 난 씁쓸한 표정으로 할 때 돼서 하는 거라고 말하곤 했다.
활동적인 아이였기도 하지만 난 작정하고 아이를 밖으로 돌렸다. 체력면에서는 절대 빠지면 안 된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4시쯤에 하원을 하고 비가 오는 날이 아니면 동네투어를 시작했다. 일명 놀이터 투어? 놀이터를 거점으로 여기저기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녔다. 매일 두 시간 정도는 이렇게 동네를 방황했다. 신랑 퇴근시간이 되면 난 지쳐가는 목소리로 우리의 위치를 알렸다. 다행히도 그 시절 뺑뺑이 덕분인지 작은 덩치에 비해 아이의 체력은 나쁘지 않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