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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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진 사냥개 2
청람
선거철이 다가오면 도시는 일종의 축제 분위기로 변한다. 각종 현수막과 포스터가 거리마다 나부끼고, 방송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후보자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들의 목소리는 단순한 언어의 나열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이라는 단어로 감싼 약속과 다짐, 그리고 미사여구로 무장한 희망의 메시지다. 거리로 나선 후보자들은 허리를 굽혀 악수를 청하고, 때로는 서민들의 식탁에 앉아 보리밥 한 술을 떠먹으며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 모습을 보면, 한 마리 길들여진 사냥개가 떠오른다.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척하며 다가오는 그 눈빛 속에, 우리는 속지 않으려 애쓰지만 결국 또다시 속고 만다.
선거판은 일종의 사냥터다.
각 후보자들은 자신이 던진 권력의 미끼에 얼마나 많은 표가 걸려드는지 주시하며, 그들이 얼마나 잘 길들여졌는지를 연기한다. 그들은 선거가 끝날 때까지 ‘국민의 종’이라는 가면을 쓰고 충성을 맹세하지만, 그 가면은 얄팍하다. 당선의 순간, 가면은 벗겨지고 그들은 맹수로 변한다.
'국민을 위한 정치'는 허공 속 메아리가 되고, 국민의 삶은 그들의 관심사에서 빠르게 사라진다. 모든 선의는 사라지고, 남은 것은 자기 당의 이익과 권력 다툼뿐이다.
국회는 이제 국민을 위한 토론장이 아닌 당리당략의 전쟁터다.
정치인들은 마치 장기판의 말처럼 움직이며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싸운다. 정책은 뒷전이고, 민생은 안중에 없다. 그들은 오늘의 작은 승리를 위해 내일의 큰 가치를 희생시킨다.
이들은 언제부터인가 정책이 아닌 쇼를 하고 있다. 카메라가 돌아갈 때만 나타나는 그들의 '관심'은 진실되지 않다. 한편에서는 진지한 토론이 이루어져야 할 공간이, 반대 진영의 의견은 묵살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방어와 공격의 도구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변한 정치가들은 마치 '길들여진 사냥개'와도 같다.
선거가 다가오면 머리를 숙이며 한없이 겸손한 척하지만, 당선되는 순간부터는 더 이상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더 이상 국가와 국민이 아닌, 자신들의 권력 유지와 당의 이익이다.
결국, 우리가 선거 때마다 목격하는 것은 그들의 얼굴이 아니라 가면이고, 우리는 그 가면을 다시 한 번 벗겨 보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더욱더 두껍고 강한 가면으로 돌아온다.
이런 정치적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정치가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개인의 욕망과 당의 이익에만 몰두할 때,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에게 돌아온다. 국민은 이제 정치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 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찾아야 하는가?
우리가 바라는 것은 더 나은 세상, 더 정의로운 사회인데, 그들의 이기적인 행보로 인해 그 꿈은 점점 더 멀어져만 간다.
한때는 '국민을 위한 정치'를 외치던 그들이, 정작 정치인이 되어서는 국민을 뒤로한 채 권력만을 좇는 모습은 참으로 비극적이다.
그들이 맹수로 변하는 순간, 국민의 신뢰라는 사슬은 끊어지고 만다. 우리는 이 늑대의 가면을 쓴 정치인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들이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진정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여전히 답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의 귀에 우리의 외침이 들릴지, 혹은 이미 그들의 귀는 권력의 노랫소리에만 길들여져 있을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포기할 수 없다.
길들여진 사냥개가 다시금 진정한 국민의 개가 될 때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들이 던지는 달콤한 미끼에 넘어가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의 투표는 한 번의 선택이 아니라, 지속적인 감시와 참여의 시작이다.
길들여진 사냥개, 혹은 늑대의 가면을 쓴 그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그들이 국민을 위한 진정한 정치를 다시금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들의 행동이 국민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그리고 그날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언제나 깨어 있을 것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