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an 0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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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친구가 떠났다
60 중반을 넘어서면서 부음(訃音)의 소식이 부쩍 늘었다. 한때는 부모님 세대에서 주로 들리던 부고가 이제는 친구들의 소식으로 바뀌고 있다. 누구보다 가까웠던 친구들의 이름이 하나둘씩 부고의 주인공이 될 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자리 잡는다.
건강을 지키라는 이야기는 늘 귀에 익다. 이상하게도 그 말이 절실하게 와닿은 적은 없었다. 몸이 아프지 않으면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기 어렵다. 늘 당연하게 여기던 건강이 갑자기 무너질 때, 그제야 사람들은 후회한다. 더 잘 먹었어야 했고, 더 운동했어야 했고, 더 아끼고 사랑했어야 했다고.
젊을 때는 건강이 영원할 것처럼 여겨지지만, 나이가 들수록 몸의 한계는 명확히 드러난다. 나의 하루가 더디게 흘러가고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마저 무시하기 어려워진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깨달음은 항상 아프고 난 뒤에야 찾아온다. 건강할 때는 건강을 돌보는 일이 귀찮게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와서 깨달은들 무슨 소용일까.
친구의 부음을 들을 때마다 무언가를 잃은 듯한 상실감이 몰려온다. 그들과 나눴던 대화, 함께 웃었던 기억들이 떠오르고, 한편으로는 내 삶도 그들과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우리의 인생은 결국 시간이 주는 기회 속에서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가는 노정일뿐이다. 그 노정 속에서 건강은 가장 소중한 동반자다.
부음은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만을 알리는 소식이 아니다. 그것은 남아 있는 이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과도 같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을 하며 누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삶 속에서 건강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가?
아프기 전에, 후회가 밀려오기 전에, 나 자신을 위해 조금 더 신경 쓰기로 마음먹는다. 부음을 들으며 느낀 이 무거운 마음이 헛되지 않도록, 오늘은 작은 운동이라도 시작해 보아야겠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결심이 내일의 나를 지켜줄지도 모른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