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Jan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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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군대는 당나라 군대냐!"
1980년 군에 입대한 김 이등병 선임 상병의 일갈一喝에 등골이 오싹했다. 군복의 주름마저 펴질 것 같은
그 목소리는 마치 천둥 같았다. "왜 이렇게 군기가 빠졌나!"라는 한 마디에 김 이병은 긴장을 풀 새도 없이 정신을 바짝 차렸다.
김 이병도 어느새 상병이 되어 있었다. 갓 입대한 이등병에게 똑같은 말을 던진다.
"요즘 군대는 당나라 군대냐!"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자신이 들었던 그 말을 꼭 빼다 박은 듯이 후임에게 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김 상병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당나라 군대가 도대체 어땠길래 군기가 빠졌다는 말이 붙었을까?'
역사를 잠시 들춰보자.
당나라는 중국 역사상 문화와 국력이 찬란했던 시기였다.
군사 면에서는 조금 달랐다. 오랜 평화 속에 군기가 해이해졌고, 병사들은 상관의 명령보다 자신의 안위를 챙기기 바빴다. 특히 용병 제도가 확산되며 군의 결속력은 약해지고, 국방이 허술해졌다는 평이 많았다. 그렇게 당나라 군대는 오늘날 '군기가 빠진 군대'의 대명사가 되었다.
돌아보면 김 상병이 처음 들었던 그 말은 과연 진심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군대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세대를 넘어 전해지는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었을까?
김 상병은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이 말은 군대의 전통이자, '나 때는 말이야'라는 시대를 초월한 인간 본성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이전 세대는 현재 세대가 나약하다고 느낀다. 조선 시대 병사들도, 고려 시대 장수들도, 아마도 고구려의 무장들도 "요즘 젊은것들은..."이라는 말을 했을 것이다.
군대만 그런가?
회사에서는 선배가 후배에게, 학교에서는 선배가 신입생에게, 심지어 동네 축구팀에서도 선배가 후배에게 비슷한 말을 던진다. 이쯤 되면 '당나라 군대'는 단순히 군대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인간 사회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세대 차이의 공식'이라 할 수 있다.
과연 요즘 군대가 정말 당나라 군대일까?
상병 김 씨는 고민했다. 요즘 군대는 스마트폰으로 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하고, PX에서는 치킨과 햄버거를 먹는다.
훈련은 여전히 힘들지만, 복무 환경은 많이 좋아졌다. 예전에는 꿈도 못 꾸던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군기가 빠졌다고 할 수 있을까?
군기란 무엇일까?
군복의 단추가 잘 잠겼는지, 군화가 번들거리는지, 아니면 명령에 즉각 반응하는 자세인지. 어쩌면 군기는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그 의미가 조금씩 바뀌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거의 군기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도, 현재의 군기가 잘못됐다고 할 수도 없다.
김 상병은 후임 이등병에게 다시 말했다.
"요즘 군대는 당나라 군대냐?"
이번에는 말끝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근데 나도 그랬어."
이등병은 어리둥절했지만, 김 상병은 빙긋이 웃었다. 누군가는 군기가 빠졌다고 말하지만, 또 누군가는 그런 말도 사랑과 관심의 표현임을 안다. 그게 군대고, 세상이다.
세상 모든 '당나라 군대'들이여, 걱정하지 마라. 그렇게 말하던 사람도 언젠가는 그 말을 하게 될 테니.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