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갯마을의 저녁노래

김왕식









갯마을의 저녁노래




정용애







"용림아, 물 빠졌다.
토방 밑에 바구니랑 *조새 있응께, 갱변에 가서 굴도 까고 고동도 잡아오거라, 잉~"

어머니의 목소리가 해풍을 타고 부엌에서부터 마당까지 울려 퍼진다.
나는 익숙한 대답을 내지르며 뛰어나간다.

"야우~! 엄매, 갔다 올라우~!"

짧은 단발머리에 *간단옷구를 입고,
토방 밑에 숨겨둔 바구니와 조새를 챙긴다.
두 손에 바구니를 꼭 쥔 채, 갱변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설레고도 가볍다.
이미 바닷가에는 동무들이 모여 있다.
언니, 오빠들까지 한데 어울려 갯벌은 온통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거친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도 두렵지 않다.
발끝을 적시는 물살에 몸을 맡기고, 크고 작은 돌멩이들을 뒤집는다.
하늘을 향해 엎어진 돌 밑에는 둥글둥글 오가재미 고동,
울퉁불퉁 긴고동, 비틀거리는 고동들이
마치 작은 반상회를 여는 듯 옹기종기 모여 있다.

"고동이다!"
누군가 외치면, 모두가 손을 뻗어 돌 밑을 뒤적인다.

하나둘 주워 담다 보면 바구니 속은 어느새 고동으로 한가득이다.
그래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아, 눈을 크게 뜨고 발밑을 샅샅이 살핀다.
납작 달라붙은 굴을 발견하면 조새로 힘껏 따내어 바구니에 담는다.

파도 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어우러지는 갯벌은,
어릴 적 내게 세상에서 가장 넓고 깊은 놀이터였다.

한참을 뛰놀다 바구니가 묵직해지면,
헐레벌떡 집으로 달려간다.

"오매, 울애기 이렇게 많이 줄도 까고 고동도 잡아부렀냐."

어머니는 활짝 웃으며 내 바구니를 받아드신다.
그 미소는 바닷바람에 엷게 스치는 햇살처럼 따스하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화덕에 불을 지피신다.
마른 나뭇가지와 솔가지를 넣어 화롯불을 지피고,
작은 솥에는 보리밥이 익어가고,
큰 냄비에서는 구수한 된장국이 보글보글 끓는다.

어머니는 내 손에 든 고동을 씻어
간장에 조물조물 무치신다.
소박한 고동반찬이 밥상에 오른다.

"즈그아부지, 어서 잡수이소~"
어머니의 부름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앉으신다.
아버지께 고동을 수저에 올려드리며,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어야 둥둥, 내 새끼. 많이 먹고 어서 커라, 이~"

작은 상 위에 놓인 밥상,
보리밥 한 그릇, 구수한 된장국 한 사발,
그리고 짭조름한 고동반찬.

단출하지만 정겨운 밥상에 네 식구가 둘러앉는다.
아버지, 어머니, 오빠, 그리고 나.
따끈한 밥을 한술 떠 입에 넣으면,
파도 소리와 바람소리가 입안에 스민다.

식사를 마치고 마당에 나서면,
서쪽 하늘은 붉게 물들고 있다.
해님이 방긋 웃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듯,
저 멀리 바다 건너 땅끝마을 서산으로 천천히 넘어간다.

"내일 아침 또 보자."
노을빛이 그렇게 인사하는 듯하다.

어릴 적 나는 몰랐다.
그 단순하고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귀한 순간이었는지.
바구니 가득 고동을 담으며 느꼈던 뿌듯함,
어머니의 따뜻한 웃음과 부드러운 손길,
화덕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보리밥 냄새,
그리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나누던 따끈한 저녁밥.

그 모든 순간이 내 마음속 깊숙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갯벌 위를 달리던 작은 발자국도,
돌을 뒤집어 고동을 잡던 작은 손도,
이제는 기억 속에서만 살아 숨 쉰다.

그러나 어머니의 웃음, 아버지의 다정한 눈빛,
그리고 그날의 붉은 노을은 여전히 마음속에서 찬란하게 빛난다.

파도는 여전히 갯벌을 쓰다듬고,
돌멩이 밑에는 또 다른 고동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겠지.

이제 나는 바구니를 들지 않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고동의 반짝임과 바다의 숨결이 살아있다.

갯마을의 저녁노래는 오늘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잔잔히 울려 퍼진다.




*조새: 굴 따는 도구
*간단옷구: 무릎까지 오는 원피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정용애 작가의 수필 '갯마을의 저녁노래'는 남도의 작은 섬마을에서 보낸 순박한 유년 시절의 풍경을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작가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던 어린 시절의 소박하고 정겨운 일상을 섬세한 언어로 되살려내며, 잊히기 쉬운 일상의 소중함과 가족의 따뜻한 온기를 전하고 있다.

작품은 어머니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시작된다. 해풍을 타고 부엌에서부터 마당까지 울려 퍼지는 어머니의 음성은 가족과 자연이 하나였던 삶의 단면을 상징한다. 작가는 토방 밑에서 바구니와 조새를 챙겨 갯벌로 향하는 모습을 통해 자연과의 친밀한 유대를 그린다. 갯벌에서 동무들과 함께 고동을 잡고 굴을 따는 장면은 자연이 제공하는 놀잇감과 먹거리를 통해 공동체적 삶의 기쁨을 생생히 전한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파도 소리가 어우러진 갯벌은 단순한 공간이 아닌 세상에서 가장 넓고 깊은 놀이터로 묘사되며,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삶의 가치를 일깨운다.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가 활짝 웃으며 바구니를 받아드는 장면은 가족의 사랑과 따뜻함을 고스란히 전한다. 화롯불에 보리밥이 익어가고, 된장국이 끓고, 손수 무친 고동반찬이 밥상에 오르는 모습은 소박하지만 풍성한 삶의 미덕을 상징한다. 특히 “어야 둥둥, 내 새끼. 많이 먹고 어서 커라, 이~”라는 어머니의 말은 자식에 대한 사랑과 바람이 담긴 따스한 응원이자, 자연에서 얻은 소소한 수확이 가족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정용애 작가는 자연과 가족, 그리고 공동체가 만들어내는 일상의 아름다움을 섬세하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돌멩이 밑 고동들의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작은 반상회"라 표현한 부분이나, 바다 건너로 넘어가는 해를 "해님이 방긋 웃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듯" 묘사한 표현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시적인 언어로 풀어낸다. 이는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삶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작가의 미의식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또한, 작가는 잊고 지냈던 일상의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회상하며, 과거의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파도 소리와 바람소리가 입안에 스민다”는 표현은 감각적인 경험을 통해 독자에게 자연의 숨결을 직접 전해준다. 이러한 묘사는 단순한 추억 회상이 아니라, 현재의 삶에서도 자연과 일상의 조화를 통해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삶의 철학을 내포하고 있다.

요컨대, '갯마을의 저녁노래'는 단순한 어린 시절의 추억담을 넘어, 자연과 가족, 그리고 일상 속에서 느끼는 삶의 본질적인 가치를 성찰하게 한다. 정용애 작가는 소박한 자연의 풍경과 가족의 따뜻함을 통해 삶의 참된 풍요로움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화려하지 않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그의 문체는 독자에게 일상 속에서 잊고 지냈던 소중한 가치들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정용애 작가는 삶의 본질적인 아름다움과 자연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깊이 이해하고 이를 섬세하게 풀어내는 작가로 평가할 수 있다.






정용애 작가님께,




작가님의 '갯마을의 저녁노래'를 읽으며 제 마음 깊은 곳에서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조용히 물결치듯 되살아났습니다. 바다 마을에서의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시골 마을에서 보낸 저의 유년 시절과 자연스레 닿아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따뜻한 부름에 뛰어나가던 작가님의 모습은, 마당 한쪽에서 저를 부르시던 저희 어머니의 목소리와 겹쳐졌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면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시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부엌에서 풍겨 나오던 된장국 냄새에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돌리곤 했습니다. 마당 끝 감나무 아래에서 오순도순 둘러앉아 먹던 저녁밥, 고슬고슬한 보리밥과 구수한 된장국, 그리고 어머니가 정성껏 무쳐주신 나물 반찬들이 생각났습니다.

작가님께서 바구니 가득 고동을 담으며 느꼈던 뿌듯함이 저에게는 겨울이면 마당에서 무말랭이를 썰고, 여름이면 손수 따온 오디를 손바닥 가득 물들여 먹던 기억으로 다가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도 단순하고 평범했던 그 순간들이 어찌나 따뜻하고 소중했는지요.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일상들이 얼마나 귀한 순간이었는지를요.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바닷바람을 타고 퍼지던 어머니의 목소리, 갯벌에서 뛰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화롯불에 보리밥이 익어가던 따스한 풍경. 모든 장면이 제 마음에 깊숙이 스며들어 잊고 있던 그리움을 일깨웠습니다.

이제는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지고, 마당 한 켠에서 불어오던 바람조차도 그립습니다. 작가님의 글이 아니었다면 아마 한참을 더 잊고 지냈을 그 시절의 따뜻함을 다시 느낄 수 있어 참으로 감사합니다. 글 속에 담긴 소박하고 따스한 풍경이 저에게도 잔잔한 위로가 되었고, 오늘 하루를 더욱 고마운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작가님의 글을 통해 잊고 지낸 따뜻한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바느질 시인은 2 ㅡ 유숙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