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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떨어진 쪽지와 아이의 눈물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Feb 06. 2025







    바닥에 떨어진 쪽지와 아이의 눈물



                                 이서연






지하철이 덜컹거리며 움직인다.
한 노인이 휠체어에 앉아, 조심스럽게 손글씨로 적은 작은 쪽지를 승객들에게 내민다.
손때가 절어 꾸깃한 쪽지다.

 “살려 주세요. 몸을 다쳐 움직일 수 없어요. 쪼끔만 도와주세요.”

애절한 문구가 적혀 있다. 사람들은 그를 보지 않는 척한다. 어떤 이는 핸드폰 화면을 스크롤하며 시선을 돌리고, 어떤 이는 노인의 앞을 스쳐 지나간다.

노인이 힘없이 쪽지를 건네지만, 그것들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한 장, 두 장, 쪽지들이 흩어진다. 노인은 몸을 숙여 그것을 줍으려 하지만, 손은 공중을 헛돈다. 주름진 손끝이 간절하게 뻗지만, 노쇠한 몸은 그것을 따라주지 않는다. 바닥에 흩어진 쪽지는, 마치 이 사회에 버려진 노인의 처지를 그대로 닮은 듯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쪽지를 밟으며 무심히 지나간다.

그때, 엄마 손을 꼭 잡고 있던 유치원 아이가 그것을 본다. 아이의 눈에는 그 광경이 너무나 낯설다. 왜 아무도 할머니를 돕지 않는 걸까? 아이는 엄마를 올려다보며 조른다. “엄마, 저 할머니 불쌍해. 도와주면 안 돼?” 아이의 작은 손이 엄마를 흔든다.

엄마는 싸늘한 표정을 짓는다. “가만히 있어.” 단호한 목소리로 아이를 제지한다. 그리고 손을 더 세게 잡고, 아이를 다른 칸으로 끌고 간다. 아이는 휘청거리며 엄마를 따라가지만, 계속해서 고개를 돌려 노인을 바라본다. 할머니의 떨리는 손, 바닥에 널린 쪽지, 그리고 아무도 주워주지 않는 그 쓸쓸한 장면이 아이의 가슴속에 각인된다.

지하철 문이 닫히기 직전, 아이는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본다. 바닥에 떨어진 쪽지는 여전히 그대로다. 노인은 여전히 허공을 더듬으며 그것을 주우려 한다.
아무도 손을 내밀어 주지 않는다. 그 순간, 아이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아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왜 할머니를 모른 척하는 걸까? 왜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들은 외면하는 걸까?

어른들은 말한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냉정해져야 해.” “가진 자도, 못 가진 자도 각자 살아가야 해.”
아이의 마음은 다르다.
아이는 아직 그런 세계를 배우지 않았다. 아이의 눈에는 그저 배고프고 힘없는 할머니가 있을 뿐이고, 그분을 도와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가 존재할 뿐이다.
어른들은 그 진리를 외면한다.

어른들의 눈에는 그 노인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보고 싶지 않은 것일까? 사람들은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저런 사람들 다 거짓말이야.”
 “내가 도와준다고 저 사람이 달라지겠어?”
“나라에서 할 일을 우리가 할 필요는 없어.”

그렇게 변명을 쌓아 올리고, 외면하는 것이 익숙해진다. 그렇게 냉정해지는 것이 ‘어른이 된다는 것’이라고 배운다.

아이의 눈에는 아직 그런 논리가 없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느낀다.
 “도와줘야 한다.”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도망치듯 떠난다. 더러운 현실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는 듯이. 아이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가면서도 눈을 떼지 못한다.
그 작은 가슴에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나는 크면 저렇게 될까? 나도 언젠가 저 할머니를 외면하게 될까?’

그날 이후, 아이는 종종 그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바닥에 흩어진 쪽지, 그 쪽지를 줍지 못하는 할머니, 그리고 차가운 얼굴로 떠나버린 엄마의 뒷모습.

 언젠가,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릴 것이다. 어른이 된 자신이 지하철에서 노인을 마주쳤을 때, 그때의 선택이야말로 자신이 어떤 어른이 되었는지를 증명하는 순간이 될 것이다.

어른들은 언제부터 냉정해진 걸까? 어쩌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라, 외면하는 것을 배우고, 합리화하며 길들여진 것은 아닐까?
그 가르침을 또 다른 세대에게 물려주며, 아이들마저 점점 비정해지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적어도 아이의 눈물이 마르기 전에 우리는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우리가 정말로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어른이 될 것인지.






바닥에 떨어진 쪽지와 아이의 눈물
 ㅡ비정한 현실과 순수한 시선의 대립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서연 작가의 이 글은 지하철에서 마주한 한 장면을 통해 노인 복지 문제와 사회의 무관심을 고발하며, 아이의 순수한 시선과 어른들의 냉정한 태도를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서술 속에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현실에 대한 통찰과 비판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특히,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며 독자 스스로가 문제의식을 느끼도록 하는 구성은 돋보인다.

글의 시작은 한 노인이 휠체어를 타고 쪽지를 나눠주는 모습으로 열린다. ‘본인 딱한 처지가 담긴 손글씨 글 쪽지를 돌린다’는 묘사는 시각적이며, 곧이어 ‘그 쪽지들은 바닥으로 날린다’라는 표현을 통해 노인의 처지뿐만 아니라 사회의 냉혹함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바닥에 떨어진 쪽지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버려진 존재의 상징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현실을 단 몇 문장 안에 압축하여 전달한다.

이후의 전개에서는 노인이 숙여 쪽지를 줍으려 하지만 닿지 않는 모습이 등장한다. 여기서 육체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노력이 무의미한 현실, 아무리 애써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강조된다.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으며, 그저 무심히 지나간다. 마치 사회 전체가 이 노인의 존재를 지운 듯한 느낌을 준다.

글이 전환점을 맞이하는 것은 한 유치원 아이의 등장부터다. ‘엄마 손을 잡고 있던’이라는 표현은 아이가 아직 세상의 이치를 다 알지 못하는 순수한 존재임을 암시한다. 아이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믿는 것이다.

엄마의 반응은 싸늘하다.
 “엄마는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의 손을 움켜잡고 다른 칸으로 발걸음을 급히 옮긴다.” 이 부분은 단순한 거절이 아니라, 현실에서 도망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여기서 ‘급히 옮긴다’는 표현은 엄마가 노인의 처지를 직시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상징한다. 도움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런 상황을 피하려 한다는 점에서 더욱 비정하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실천하는 ‘외면’을 극단적으로 형상화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아이의 시선은 여전히 노인을 향하고 있다. ‘목을 되돌려 할머니를 바라본다’라는 문장은 아이의 마음속에 의문과 안타까움이 자리 잡았음을 암시한다.
 결정적으로, ‘그 눈엔 눈물이 촉촉하다.’라는 마지막 문장이 등장한다. 이 장면은 독자의 감정을 한순간에 고조시키며, 이야기의 핵심 메시지를 강조한다.

아이의 눈물은 단순한 연민이 아니다. 그것은 어른들의 세상이 이해되지 않는 데서 오는 혼란과 슬픔이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른들은 그러지 않는다.
그 어른의 모습이 자신의 엄마라는 사실이 아이에게는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장면을 넘어, 도덕과 가치관이 어떻게 사회적 학습을 통해 변화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서연 작가의 글이 가진 가장 큰 힘은 감동과 풍자가 함께 녹아 있다는 점이다. 한 노인의 고단한 현실과 이를 외면하는 사회의 태도를 통해, 우리는 냉정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글이 주는 감동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어른들을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욱 강력하다.

노인이 쪽지를 줍지 못하는 장면은 단순한 신체적 무력감을 넘어,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암시한다.
왜 노인은 이런 처지에 놓였는가?
그를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은 없는가? 우리는 왜 그것을 외면하는가?
이는 노인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점을 시사한다.

반면, 아이의 반응은 순수함 그 자체다. 아이는 도움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어른들은 그 순수함을 억누른다. 그것은 어른이 되면서 ‘사회적 생존’을 위해 무언가를 체득해 나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과연 그것이 올바른가?
이 글은 독자로 이 질문을 곱씹게 만든다.

글의 마지막은 아이의 눈물을 남기며 끝난다. 직접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음으로써, 독자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아이는 앞으로 성장하며 어른이 될 것이다.
언젠가 다시 같은 상황을 마주할 때, 아이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자신이 어릴 때의 순수를 지켜낼 것인가, 아니면 세상에 길들여져 외면하는 어른이 될 것인가?

작가의 이러한 열린 결말은 철학적 여운을 남기며, 독자 스스로가 결론을 내리도록 유도한다. 즉,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며,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있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이러한 점에서, 이 글은 감동을 넘어 강력한 풍자의 힘을 지닌다.

이 글은 짧지만 강렬하다. 몇 가지 장면만으로 사회의 냉혹함과 인간의 본성을 날카롭게 조명한다. 노인의 처지는 현실적인 사회 문제를 반영하며, 아이의 순수한 반응은 우리가 어릴 때 가졌던 인간 본연의 선의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결국, 어른이 되면서 그 선의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또한, 글의 전개 방식이 탁월하다. 설명적이지 않고, 장면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독자는 직접적인 감정을 경험하며 몰입할 수 있다.
특히, 마지막에 아이의 눈물을 강조함으로써 독자가 문제를 직접적으로 느끼게 하는 점이 효과적이다.

요컨대, 이 글은 사회적 풍자와 감동을 절묘하게 엮어낸 작품이다. 단순히 ‘노인을 도와야 한다’는 교훈적 메시지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인간의 본성을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이 짧은 이야기 속에서도 얼마나 강한 울림을 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라 할 수 있다.





이서연 작가님께,




글을 읽고 한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지하철에서 마주친 그 장면이 너무 선명하게 떠올라서, 아니, 어쩌면 저도 비슷한 순간을 여러 번 경험했기에 더 깊이 와닿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쪽지를 줍지 못하는 노인의 손,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승객들, 그리고 엄마의 손에 이끌려 가면서도 끝까지 할머니를 바라보던 아이의 눈. 글 속 그 장면이 마치 제 기억 속 한 페이지처럼 선명하게 박혔습니다.

저는 어릴 적, 아이와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길에서 힘들어 보이는 할아버지를 보면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지 궁금했고, 동전 하나라도 건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제 손을 꼭 잡으며 “괜히 그러지 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왜 도와주면 안 되는지, 왜 어른들은 외면하는지. 시간이 지나면서 저도 점점 그 가르침을 배우고 익혔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누군가의 어려움을 보고도 모른 척하는 것이 더 편했고, 그것이 어른스럽다는 착각 속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잊고 있던 그 어린 날의 감각이 되살아났습니다. 그때는 당연했던 것이, 지금은 왜 어색한 일이 되어버렸을까요? 왜 우리는 점점 무뎌지고, 외면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걸까요?

지하철 속 노인은 단순한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외면하는 수많은 존재들의 상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에서 점점 잊혀가는 노인들,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 그리고 그들에게 무감각해진 우리.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장면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아이의 눈물이었습니다. 세상이 당연하다고 가르친 외면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 눈물이, 어쩌면 우리 사회의 마지막 순수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 가졌던 마음을 지금의 저는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당연했던 것이, 이제는 행동하기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어쩌면 이미 아이가 아닌 엄마 쪽에 서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이 두렵습니다.

이 글을 읽고 나니, 문득 질문이 떠오릅니다. 저는 어떤 어른이 되어가고 있을까요? 노인을 외면하는 승객들처럼, 아이의 손을 붙잡고 도망치는 엄마처럼, 저도 그렇게 변해가고 있는 걸까요?

다음번에 같은 장면을 마주했을 때, 저는 외면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글을 읽고 나서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현실적인 삶’이 정말 옳은 것인지,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감각해지는 것인지, 그리고 이제라도 저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작가님, 좋은 글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번에는, 아이처럼 행동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편지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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