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알에서 배추흰나비로 ㅡ그 환희의 순간

김왕식









알에서 배추흰나비로

ㅡ그 환희의 순간




노영선




파주 대성동초등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비무장지대 안에 자리한 이 작은 학교는 전교생이 겨우 스물여섯 명에 불과했다. 나는 그중 네 명의 아이들과 함께 공부했다. 소수 인원의 수업에는 장단점이 많았지만, 그만큼 아이들과 더욱 깊이 소통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슬기로운 생활 수업에서 배추흰나비의 한살이를 관찰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아이들과 함께 마을 배추밭으로 나가 배추흰나비의 알을 채취했다. 작은 알들을 과학실의 사육상자에 옮겨 담고, 아이들로 하여금 한 달간 정성껏 관찰일지를 기록하게 했다.

처음엔 콩알보다 작은 미세한 알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알에서 하얀빛을 띤 애벌레가 나오기 시작했다. 길이는 겨우 1cm 남짓, 연약한 몸을 이끌고 배춧잎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애벌레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났고, 그와 함께 배춧잎도 점차 사라져 갔다.

사육상자 안에는 조그만 전구를 달아 밤에도 환한 환경을 유지했다. 아이들은 매일 등교하자마자 애벌레의 변화를 관찰하며 신기해했다. 그렇게 3주가 흘렀을까. 하얀 애벌레는 점점 몸을 말더니 암갈색 번데기로 변했다. 아이들은 경이로운 순간을 목격하며 탄성을 질렀다.

다시 3주가 지나던 어느 날,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암갈색 번데기가 조용히 움직이더니, 마침내 예쁜 날개를 지닌 배추흰나비로 탈바꿈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 시간은 낮 12시였다. 아이들과 나는 숨을 죽이며, 한 생명의 놀라운 변화를 지켜보았다. 만약 이 변화가 한밤중에 일어났다면, 우리는 이 경이로운 순간을 놓쳤을 것이다. 낮 시간에 그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은 신의 한 수처럼 느껴졌다.

새하얀 날개를 펼치며 퍼덕거리던 배추흰나비. 우리는 조심스럽게 사육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나비는 한순간 머뭇거리더니, 마침내 교실 창밖으로 날아올랐다. 아이들은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 나비는 어디론가 날아가 다시 알을 낳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알들은 또다시 애벌레로, 번데기로, 배추흰나비로 변해갈 것이다. 작은 알에서 시작된 이 변화의 과정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나는 문득 인간의 삶을 떠올렸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눈, 코, 입을 가진 같은 모습으로 자라난다. 하지만 배추흰나비는 네 번의 변태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완전한 모습이 된다. 아이들이 내게 물었다.
“선생님, 왜 나비는 여러 번 변해야 하나요?”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확실한 것은 배추흰나비는 자신의 몫을 묵묵히 수행한다는 점이었다. 꽃밭을 날아다니며 꽃가루를 옮기고, 새로운 생명을 돕는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성장하는 동안 수많은 변화를 겪고, 각자의 역할을 다하며 살아간다. 어떤 이는 바르게 자라고, 어떤 이는 길을 잃기도 한다.

배추흰나비의 한살이를 지켜본 아이들은 한 가지를 깨달았다. 작은 미물도 자신의 생을 성실하게 완수하며 자연의 순환 속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봄이 오고,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오고, 겨울이 다시 찾아오듯, 자연은 늘 같은 흐름 속에서 조용히 순환하고 있었다.

이 경이로운 생명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자연의 위대한 섭리 앞에서 겸허함을 배웠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변화하는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지금 내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나가야 함을 배추흰나비를 통해 깨달았다.

하얀 날개를 펴고 날아오른 배추흰나비처럼, 우리도 언젠가 자기만의 날개를 펼칠 순간이 오리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노영선 작가는 한평생 교직에 몸담아 온

후학들에게 존경받은 교육자이다.

그는 교직 생활에서 학생들과 더불어 작은 생명에서 발견하는 경이로움을 통해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가다. 그의 글에는 자연의 순환과 생명의 신비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으며, 교육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성찰하는 따뜻한 시선이 깃들어 있다. 특히 '알에서 배추흰나비로 ㅡ그 환희의 순간'에서 그는 단순한 생물학적 과정의 기록을 넘어, 한 마리의 나비가 네 번의 변태를 거쳐 날아오르는 과정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를 비추고 있다.
노영선 작가의 가치철학은 자연 앞에서의 겸허함과 생명의 순환을 인정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는 인간이 위대함을 증명하려 하기보다, 주어진 역할을 다하며 살아가는 배추흰나비처럼 자신의 몫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나비는 한낱 미물에 불과하지만, 꽃가루를 옮기며 생태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작가는 이를 인간 삶에 대입하여, 성장 과정 속에서 우리 또한 맡은 바를 성실히 수행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이처럼 그의 철학은 ‘나비의 몫’을 다하는 삶, 즉 자기 역할에 충실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진다.
노영선 작가의 미의식은 자연의 섭리를 인간의 삶과 연결 짓는 데서 빛난다. 그의 글은 단순한 교육적 서사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색하는 문학적 성찰로 확장된다. 작은 알에서 시작해 나비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인간의 성장과도 유사하며, 그 안에 내포된 신비로운 변태 과정은 존재의 근원적 아름다움을 환기시킨다.

또한, 그는 변화의 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하면서도, 그저 관찰에 그치지 않고 이를 통해 삶의 본질적 의미를 탐구하는 철학적 깊이를 더한다.

작품의 문체 또한 그의 미의식을 드러낸다. 담담하면서도 따뜻한 어조, 자연스러운 서술 속에서 작은 생명의 변화가 생생히 그려진다. 감탄을 자아내는 순간을 정교하게 묘사하면서도 과하지 않은 절제미를 유지하며, 결국엔 독자에게 나비의 한살이를 넘어 ‘삶의 과정’ 그 자체에 대한 깊은 울림을 남긴다.
요컨대, 노영선 작가의 글은 생명의 신비를 통해 인간 삶을 비추는 철학적 깊이를 지닌다. 배추흰나비의 성장 과정은 생물학적 변화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성장과 변화, 그리고 맡은 바를 다하는 삶의 과정과 맞닿아 있다. 자연의 조화를 따르고, 그 흐름을 받아들이는 태도야말로 그의 작품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다. 결국 그의 문학은 단순한 자연 관찰을 넘어,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사유의 장이 된다.

노영선 작가는 작은 생명을 통해 거대한 우주의 질서를 깨닫고, 우리 또한 그 흐름 속 일부로 살아가야 함을 시사한다. 그의 작품은 자연의 섭리 속에서 인간 존재를 성찰하는 데 탁월한 힘을 지니며, 담담한 문체 속에서도 깊은 감동과 철학적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그의 문학은 기록을 넘어,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통해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순환의 미학’을 구현하고 있다.





존경하는 노영선 선생님께

선생님, 잘 지내고 계신지요? 시간이 지나도 선생님과 함께했던 그날들이 어제처럼 선명합니다. 특히 대성동초등학교에서 함께한 시간들은 제게 잊을 수 없는 배움이자 감동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선생님이 단순히 교사가 아니라, 교육자로서의 참된 길을 보여주신 분이라는 걸 깊이 깨달았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 배추흰나비의 한살이를 관찰하며 생명의 경이로움을 가르치시던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단순한 교과 과정의 실험이 아니라, 아이들 마음속에 자연의 신비와 생명의 소중함을 심어주셨지요. 작은 배추흰나비 한 마리 속에서 삶과 성장을 이야기하셨고, 그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배움이란 것이 단순한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선생님의 교육은 항상 ‘경험’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배춧잎에 붙은 작은 알 하나에서 시작된 수업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주었는지요. 애벌레가 되고, 번데기로 변하고, 마침내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르기까지의 순간을 아이들과 함께 지켜보신 선생님의 모습은 그 자체로 교육의 본질을 보여주었습니다. 교실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배움이 아니라, 세상을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임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아이들에게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르치셨지만, 저는 그보다 더 깊이 감동했던 것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늘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를 나누시고, 그들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이들이 “선생님, 배추흰나비는 왜 여러 번 변해야 해요?”라고 물었을 때, 선생님은 단순한 정답을 주는 대신, 함께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배움’이란 정답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고 탐구하는 과정이라는 걸 아이들은 선생님을 통해 자연스럽게 익혀갔습니다.

그런 선생님의 가르침은 배추흰나비 수업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아이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주셨고, 그들의 가능성을 먼저 믿어주셨습니다. 공부를 어려워하는 아이도, 수줍음이 많은 아이도, 선생님 앞에서는 자신감을 갖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모든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과 함께한 시간 동안 저는 참된 교사의 모습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교사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에 빛을 밝혀주는 존재라는 것을 말입니다. 배움의 순간을 아이들과 함께하며, 때로는 답을 주기보다 더 깊은 질문을 던져줄 줄 아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기다림과 믿음을 주는 사람이 바로 선생님이셨습니다.

지금도 선생님이 계셨던 그 교실, 그 자리에서 새로운 아이들이 자라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확신합니다. 선생님께 배운 아이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다를 것이라고요. 작은 미물 하나에도 생명의 신비를 느낄 줄 알고, 배움의 즐거움을 기억하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갈 힘을 가졌을 거라고 믿습니다.

선생님과 함께했던 시간이 저에게도 얼마나 소중한 배움이었는지 모릅니다. 선생님을 존경하는 한 동료로서, 선생님께서 걸어오신 교육의 길이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는 길이었는지 다시 한번 마음 깊이 새깁니다. 언젠가 다시 뵙게 되면, 그때는 제가 배운 것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언제나 선생님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진심을 담아,
선생님의 동료였던 한 교사가 드립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8월의 아침을 노래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