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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저 May 06. 2024

시너지 말고 완충제

우리는 흔히 사람 간의 관계 중 가장 이상적인 관계로 ‘시너지’를 이야기한다. 1+1이 단순 2가 아니듯, 잘 맞는 사람들끼리의 합은 그 이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는 연인관계에도 해당된다. 우리는 늘 그렇듯, ‘나를 더 성장시키는 사람’, ‘나를 더 발전시키는 사람’과의 건설적인 관계를 꿈꾼다.


오늘은 새벽부터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이었다. 해는 보이지 않아 하늘은 온통 잿빛이었고, 5월의 봄날 같지 않은 찬바람이 불었다. 봄비라고 하기엔 다소 차가운, 장마를 준비하는 습기를 가득 머금은 비였다.


나는 평소에도 날씨를 많이 타는데, 이런 비가 오는 날이면 정말이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물 먹은 걸레처럼 바닥에 축 늘어져 있다. 기분도 괜히 신경질적이고, 그나마 기분전환으로 하는 산책도 하지 못하고 하루종일 누워 TV에 나오는 재방송만 보게 된다.


비가 오는 날을 싫어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학창 시절에는 늘 동그란 안경을 썼었는데, 비가 내리면 그 빗물이 후드득하고 안경에 묻어 늘 꼴이 우스꽝스러웠다.


여름 운동화도 통풍을 위해 뚫어 놓은 구멍에 빗물이 들어 양말에서는 꼬질꼬질한 냄새가 났고, 한 손으로는 우산을 들어야 하기에 다른 짐을 들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특별히 비가 오는 날에 대해 트라우마적이라거나, 특별히 불운한 날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늘 비가 오는 날을 싫어했다. 한 마디로 기분파, 날씨파인 것이다.


톡을 하면서 ‘오늘 너무 습하다, 오늘 너무 쳐진다’는 내용이 그에게서 왔다. 그도 이번 연휴를 맞아 주말에 멀리 할머니댁에 다녀온 참이었다. 이제야 자취방에 들어왔다는 그의 말에, 나는 문뜩 그런 상상을 했다.


이렇게 비 오는 날, 집에서 선풍기 하나 틀어놓고 둘 다 편안한 차림으로 비좁은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 창밖에는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와, 털털 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 그렇게 누워있다가 함께 스르르 선잠에 드는 그런 모습.


그런 모습이라면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도 꽤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사람이라면, 이렇게 비가 오는 날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 그와 함께 있으면, 내가 싫어하는 것들도 모두 다 괜찮아질 거라는 생각.


마치 완충제처럼 나의 모든 걸, 나의 약점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너는 내가 이런 생각하는 걸 알까. 가만히 있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멋있다, 기특하다고 해주는 사람이니 너는 나와 시너지를 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과하고 약한 면들을 다듬고 보듬어 주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시너지보다는 완충제 같은 관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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