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상 중년심리 Oct 29. 2024

왕따 당한 어린이는 자존감이 무너진 성인으로 자란다

왕따는 평생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이다

(울릉도 북부, 아름다운 해안선)


왕따를 당한 경험은 평생의 상처로 남아 성인이 되어도 자존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나는 어릴 때 몸이 약해서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다. 특히 중학교 시절, 월요일마다 운동장에서 아침 조회를 했는데, 나는 현기증이 자주 나 그늘에 앉아있곤 했다. 이 때문에 아이들은 나를 ‘현기증’이라고 불렀다.


어린 시절과 중학교 때 남자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체력이다. 운동장에서 활발히 뛰어다니며 친구들을 주도할 수 있으면 자신감이 생기고, 또래 속에서 리더가 된다. 그러나 공부의 중요성이 커지는 고등학교에 들어서야 성적이 주목받는다. 하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체력이 약해 따돌림을 경험하면 자존감이 크게 무너진다. 그리고 이 무너진 자존감은 고등학교 때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온전히 회복되지 않는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친구들로부터 당했던 따돌림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나를 놀리던 아이들의 이름과 상황이 모두 기억에 남아 있다.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던 순간이 떠오를 때면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나의 자존감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때 수학 성적이 뛰어나면서부터였다. 친구들이 수학 문제를 물어오면서 인정받는 경험을 통해 자존감을 되찾기 시작했지만, 어린 시절 무너진 자존감은 평생 나를 짓눌렀다.


자존감이 낮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은 대개 어려운 일을 겪을 때였다. 대학 입시에 실패했을 때 거의 폐인처럼 공황 상태에 빠졌고, 직장에서 승진에서 제외되었을 때도 심하게 마음을 다쳤다. 인생을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기 마련인데, 나는 그럴 때마다 남들보다 큰 충격을 받고 공황 상태에 빠졌다. 이것이 자존감이 낮아서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시절에 따돌림을 당하면 누구에게도 쉽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부모님께 말하면 더 큰 따돌림으로 이어질까 두려웠다. 비참한 상황이 괴롭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 자신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못났으면 친구들이 나를 이렇게 놀릴까 생각했고, 이것이 내 자존감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리고 자존감이 떨어진 대신 자존심만은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다. 대학 시절에는 매일 아침 8시에 도서관에 가서 밤 10시에 집에 돌아오곤 했다. 그 당시에는 친구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그리고 시험에서 실패했던 아픔을 딛고 싶어 더 열심히 공부했다. 직장에서도 신입사원 시절 아침 일찍 출근해 늦은 시간까지 남아 상사로부터 칭찬받으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노른자위 부서인 기획부로 부임한 것도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결과였다.


그러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이러한 노력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을까? 아니다. 겉으로는 내가 잘 지내는 듯했지만, 속으로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마음은 황폐해졌다. 어린 시절 따돌림을 당했던 기억이 나를 평생 쫓아다녔고, 중년이 된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히고 있다. 

오랜 시간 정신분석을 받으며 유년 시절의 왕따 경험이 내 자존감에 미친 영향을 깨달았지만, 문제의 원인을 알았다고 해서 곧바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자존심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친구들을 다시 만난 것이 자존감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 고향을 떠난 뒤 초등학교 동창들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지만, 우연히 초등학교 6학년 반 친구들을 만났다. 몇 차례 만남을 이어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게 되었다. 나는 어린 시절 몸이 약해 힘들었고,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했던 경험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런데 여자 친구들은 내게 예상치 못한 말을 해주었다. “아니야, 너는 공부도 잘하고 핼쑥한 얼굴이 멋있어서 나한테는 왕자 같았어. 그래서 오히려 다가가기 어려웠어.” 


어릴 때 공부를 비교적 잘했기 때문에 공부로 놀림을 당한 적은 없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처럼 항상 따돌림을 당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도회지 고등학교와 서울의 대학에 진학하면서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나 자신을 형편없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을 친구들의 말을 통해 다시 돌아보니 나는 사실 친구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고, 친구들이 나를 좋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경험을 통해 평생 나를 따라다니던 낮은 자존감이 조금은 회복될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서적 여행이 주는 기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