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건 건강과 돈이다. 그러나 삶의 의미도 찾아야 한다
중년기에는 패자부활전이 없다. 돈과 명예를 잃으면 회복할 길이 없다. 그래서 중년, 노년기에는 돈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슬픈 이야기이지만 돈이 있어야 자녀나 손자 손녀도 찾아온다. 친구를 만나서 식사비를 낼 돈이 없으면 친구와 만날 수 없다. 사회적으로 고립된다.
친구들을 보면 40대 후반쯤 임원이 되지 못하면 퇴직을 하게 된다. 퇴직하고 난 뒤 1~2년은 자신에 대한 보상으로 돈을 쓰면서 재미있게 논다. 그런데 갑자기 더는 수입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확 달라진다.
많은 친구는 육체적인 노동은 어려우니 주식으로 돈을 벌려고 집에서 주식 거래를 한다. 종일 모니터를 보며 정보도 얻고 개별 주가를 파악한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주가를 보게 되어 밖에 나가 친구들을 만나 여유가 없다. 한두 해 지나다 보면 친구들과 연락도 끊기고 사회적으로 고립된다.
중년기에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친구 여럿이 암이나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예고 없이 다가온 불행은 삶을 그 자리에서 정지시킨다. 긴병에 효자 없다고 오래 투병하면 친구뿐 아니라 가족과도 연락이 끊긴다.
그러면 돈과 건강이 있다고 그래서 행복한 것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퇴직한 친구들은 처음에는 업무 압박에서 벗어나, 즐겁고 행복하다고 한다. 주중 골프도 치고, 못 가본 해외여행도 떠난다. 그렇게 몇해를 보내고나면 '갑자기 내가 사는 게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사로잡힌다고 한다. "퇴직 후에 못해 본 여행도 하고, 재밌게 놀았는데 몇해가 지내고 나니 무엇인가 답답해……. 이렇게 평생 의미없이 하루하루를 보내야하나?"
인간은 동물과 다르게 삶의 의미를 찾는 동물이다. 삶이 의미가 있어야 하고, 의미를 찾아야 한다.
아내는 11년간의 긴 투병 끝에 하늘나라를 떠났는데, 죽음이 다가왔을 때 겪는 과정이 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는 스위스 출신의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sabeth Kübler-Ross)가 제시한 모델로, 사람들이 죽음이나 큰 상실을 마주했을 때 겪게 되는 심리적 과정을 설명한다. 첫째) 부정하며 둘째) 분노하고 셋째) 합리화하다가 넷째) 우울함에 빠지고 다섯째) 현실을 수용하게 된다.
이러한 5단계 과정은 쉬운 것이 아니다. 인간이 죽음을 어떻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감정의 격동과 폭풍 같은 분노를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아내는 다섯 단계를 겪으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격동의 폭도 좁았고 높이도 낮았다.
내가 암이라는 통보를 받았다면 불안감과 두려움에 아마 거의 밤을 새웠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항암제의 고통도 견디지 못하고 중도에 끊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를 분노와 격동으로 고통받으며, 최악의 상황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지도 모른다. 아내를 병간호하면서 암 요양원이 있었는데, 암 요양원에서 한 달에 한 사람쯤 자살을 했다. 항암의 고통도 견디기 어렵고 정서적으로도 불안해지고 긴 투병에 외로움으로 자살한다. 자살이 발생하면 암 요양원은 며칠 정도 침묵이 감돌고, 서로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15주가 주기인 항암제를 몇 번 맞았다. 피부가 벗겨지는 항암제의 부작용과 척추의 극심한 통증으로 고통을 받으면서 굿굿하게 버텼다. 육제적 정신적 고통을 견딜 수 있는 내면의 힘은 아내가 상담사였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한다. 아내는 오랫동안 상담을 하며 내담자들의 아픔과 삶을 보아 왔다. 상담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삶의 의미와 정체성을 바라보며 자신의 인생에 대한 철학이 명료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된다해서 자동으로 인격이 성숙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기중심적이 되고, 변덕스럽거나 독선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들수록 지혜롭고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인문학 공부는 이에 유용할 수 있다. 인간의 본질과 사회, 삶을 깊이 이해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힘을 기를 수 있다. 또한 자기 성찰을 통해 과거의 경험을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명상이나 일기 쓰기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유연한 사고를 기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취미를 개발하고, 다른 문화를 접하면서 사고의 폭을 넓히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키울 수 있다. 이처럼 유연하고 열린 마음을 가지려는 노력은 변덕스러움 대신 지혜를 쌓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삶의 여정에서 경제적 안정과 건강이 중요하지만, 결국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