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과 성취의 시기는 지나고 소소한 행복을 찾아야 한다.
고등학교 친구 A는 육사를 나오지 않고 군 장교 생활을 시작했다. 군 생활을 하는 동안 육사 출신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차별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좋은 보직은 육사 출신이 채우고 나서, 다른 출신에게 배분된다고 항상 분노했다.
군에서 전역한지 벌써 1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만나면 군 이야기만 한다. 아직도 현역에 있는 군인처럼 육군 총장, 군사령관 인사에 대해 제대로 된 인사라느니 잘못되었다니 군 통수권자처럼 이야기한다. 내가 봤을 때 전방에 있는 대대장 출신 정도면 육군본부나 국방부의 소식을 간접적으로 들을 수는 있어도 직접적으로 소통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국방부나 육군본부에서 고위직에 있던 사람처럼, 군 인사라든지 국방 정책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이런 이야기를 1시간 이상 듣다 보면 짜증이 난다.
친구 B는 대형 유통기업 임원으로 준법감시 직무를 담당했다. 명문대 법대를 나와서 준법감시 업무는 맡았지만, 유통기업의 꽃인 영업같은 핵심 보직에는 갈 수 없었다. B는 똑똑하고 전략적이었지만, 실행력이 부족했고 자만심이 넘쳐서 인간관계가 좋지 않았다. B는 현직에 있을 때도 임원을 하면서도 항상 경영진에 대해서 불만이었고, 자기 자신의 처우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다. 지금도 만나면 내가 같은 직장을 다니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직장 이야기를 너무 자세하게 이야기해서 짜증이 난다. 나하고 전혀 관계가 없는 이야기다.
중년기에 과거 직장에 대해서 마치 현직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의외로 많다. 결국, 과거에 묶여 사는 것이다. 이런 친구들의 특징은 미래에 대해서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현재도 미래도 없고 그저 과거에 갇혀 있는 것이다.
왜 과거에 붙어 있는 것일까? 심리학에서는 이를 '미완결된 과제'라고 부른다. 현직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경험, 채워지지 않았던 욕구가 시간이 지나도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군대에서는 육사가 아니면 제대로 대접받기가 힘든 현실이고, 명문대를 나왔더라도 죽기 살기로 열심히 일하는 친구를 따라잡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정신분석학자 아들러는 열등감이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라고 했다. 문제는 열등감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건강한 사람은 열등감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지만, 어떤 사람들은 열등감에 압도당해 과거에 집착하게 된다. 과거를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그때 받지 못한 인정을 지금이라도 받으려는 시도다. 하지만 과거는 바뀌지 않는다. 그 이야기를 백 번을 해도 당시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열등감이 중년기를 넘어 노년기까지 그 사람의 삶을 붙든다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계속 과거를 이야기하고 과거 속에 묶여 산다.
이러한 열등감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중년기 이후에 현직에 있을 때처럼, 더 이상의 승진이나 사회적인 인정을 얻기는 어렵다. 오히려 중년기부터는 퇴직하거나 현직에서도 중요한 보직에서 물러날 때다. 이제는 남들에게 주목받고 중요한 보직을 맡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결국은 자기 자신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신의 가치관을 바꿔야 한다. 심리학자 융은 인생을 태양의 궤도에 비유했다. 인생의 전반기는 태양이 떠오르는 시기로, 성취와 성공을 추구하는 삶이다. 그런데 인생의 후반기는 태양이 지는 시기로, 인생의 의미를 추구하는 삶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성공과 성취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삶의 중심이 외부에서 내부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취미 생활을 통해 소소한 만족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취미 생활도 쉽지 않다. 취미를 시작했지만,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남에게 인정받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나는 사진을 5년째 공부하고 있는데 처음 1, 2년 정도는 사진기에 대한 기능을 잘 이해 못해서 공부하느라고 바빴다. 남에게 많이 물어봤는데, 그때는 오히려 사진에 대한 재미보다는 잘 모르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런데 3년 정도가 지나고 나니 사진기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고 사진의 구도에 관해서 이야기하게 되어, 초보자들에게 어느 정도 조언해 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이때부터 내가 사진에 대해서 재미를 느끼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찍은 사진의 의미에 대해서 남들이 인정해 줄 때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고 재미가 있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숙달 경험'이라고 부른다.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는 경험, 그것을 통해 작은 성취감을 느끼는 경험. 이것이 쌓이면 과거의 열등감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성취가 과거에 받지 못했던 인정을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영역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인생의 후반기에는 성공과 성취의 삶을 살기 어렵다. 소소한 취미 속에서 자족하고 만족하고 즐기는 것, 과거가 아닌 현재에 존재하는 것, 외부의 인정이 아닌 내면의 평화를 찾는 것. 그것이 후반기의 삶을 성공적으로 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