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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혼자 여행, 보름간 천국이었다

중년기에는 가족과 친구를 떠나서 '나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하다

by 심상 중년심리

배우자나 자녀와 함께 있어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제주에서 보낸 보름간의 여정은 바로 간절했던 '나만의 천국'이었다. 늘 모든 여행 일정을 사전에 계획하고 숙소를 예약했는데, 이번에는 철저하게 자유여행을 하고 싶었다. 몸의 컨디션을 살피며 매일 자유롭게 아침에 그날 걸을 올레길 코스와 숙소를 정했다. 혼자 여행하니 눈치 볼 사람이 없었다.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걷고, 먹고, 머무를 수 있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올레길을 걷기 시작하면 한 시간쯤 후 카페가 나왔다. 카페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와 브런치를 먹을 때 너무 행복해서 이곳이 천국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서너 시간 걸어가면 포구가 나온다. 포구에서 맛집을 찾아 혼자 밥을 먹으며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고 바닷가를 바라보았다. 오후에는 이중섭미술관, 아라리오미술관, 빛의 벙커, 제주도립미술관 등 예술 공간을 둘러보았다. 늦은 오후에는 곶자왈 숲이나 오름을 천천히 걸었다. 저녁에는 시장에 가서 간단히 장을 보아 펜션에 들어와 저녁을 먹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밤이 되어 창문을 열어 놓으면 바닷바람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편안하게 숙면을 취했다.


부부도 생각이 달라 숙소와 가고 싶은 장소가 다를 수 있다. 나이가 들면 서로 양보하지 않게 되는데, 보통은 아내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 그러면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없다. 혼자 여행하니 눈치 볼 사람이 없었다. 매일 숙소와 코스를 정하고, 걷고 싶은 대로 걷고,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천국 같은 제주도 보름이었다.


물론 혼자서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사는 것도 문제다. 그러나 친구나 부부와 모든 것을 함께 하려는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는 집단 문화가 발달해서 사회적 네트워크가 매우 중요하다. 젊었을 때는 직장에서 많은 네트워크를 쌓으려 노력했고, 그 네트워크의 규모가 곧 능력이기도 했다. 그래서 각종 모임이 많다. 이러한 사회적 모임을 통해 정보를 얻고, 내 마음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삶에 큰 도움이 된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지나치게 집단 문화라는 점이다. 나 혼자 있는 시간이 거의 없고, 누군가를 만나야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때로는 혼자 사색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동안 살아온 삶을 돌아보기도 하고, 내가 누구인지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지나치게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면 이런 것을 생각할 시간이 없다. 이번 제주도 보름간의 올레길 걷기를 통해 혼자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그동안 살아온 삶도 되돌아보게 되고,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그렇다고 특별히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번쯤 내 삶을 중간에서 점검해 보고 깊이 고민해 보는 것은 분명 의미 있고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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