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페이스의 달인, 꼬마승무원입니다

EP. 친구일기

by 꼬마승무원

잠시나마 아침에 소나기가 쏟아지던 오늘, 일요일 아침에 이렇게 글을 쓴다. 8월 2일부터 3일, 금요일부터 어제까지 있던 스탠바이 듀티에는 불리지 않았다. 요즘 크루들 수가 안정되어 스탠바이에 잘 안 불린다고 들었는데 정말인 것 같다. 나에겐, 사일 뒤에 또 다른 시험이 스케줄 되어있다. 왜 이리 공부하기가 싫은지 모르겠다. 공부하기에 앞서 얼굴에 꿀팩도 하고 나름 피부관리도 했다. 내일 있는 하노이 턴어라운드 비행에 필요한 것들을 미리 준비하고, 긴 휴가 뒤에 바로 떠날 미국 로스앤젤레스 장비행 짐까지 미리 다 싸두었다. 휴가 다녀오고 나서 짐을 또 싸고, 준비하려면 꽤나 귀찮고 골치 아플 거 같아서 미리 싸두었다. 내 성격이 참 그렇다.

어쩌다 보니 바르셀로나 비행을 다녀오고 나서 6일을 내리 쉬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요즘 꾸준하게 내 생각을 정리하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 뭐, 쉬는 게 좋기는 하다만 너무 쉬면 또 다음날 비행에 가기가 너무나도 귀찮다. 한번 쉬면 계속 쉬고 싶은 사람의 마음이란. 내일 하노이 턴 비행은 새벽 7시경이 리포팅 타임이라 새벽 4시 30분경에는 일어나서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차라리 오버나잇 (야간비행)보다는 이렇게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에 가는 비행이 내 몸에도 그렇고 더 맞는 것 같다. 내가 아침형 인간이라서 그런 것 같다.

나는 한국인 동기 두 명과 함께 살고 있다. 우리 한국인 동기들 모두의 성격과 성향이 비슷해서 한 번도 서로 싸운 적도 없고, 같이 사는 룸메들도 그렇다. 워낙 비행 스케줄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얼굴 보고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얼마 없다. 심지어 룸메 언니하고는 스케줄이 전혀 안 맞아서 같이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넘게 얼굴도 못 보다가 부엌에서 처음으로 마주해서 서로가 '우리 같이 사는 거 맞지?'라고 웃으면서 말을 건넨 일도 있었으니깐. 이렇게 서로가 어쩌다가 쉬는 날이 맞아서 얼굴을 보게 되면, 이제 서로가 있었던 비행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운다. 어제 어디를 갔다 왔는데 엄청 좋았다, 어디 존에서 일했는데 사무장이나 부사무장이 이랬다, 저랬다 등등.

최근에 룸메 언니와 쉬는 날이 맞아서 언니와 거실 식탁에 앉아 그간 있었던 비행에 대해서 말을 나눴다. 물꼬를 틀어준 건 당연히 나의 바르셀로나 비행이었다. 내게 언니는 어땠냐며 좋았지 않냐고 부러워하며 말을 건넸다. 언니는 전직 승무원 출신이었기에, 이미 다른 항공사에서 바셀을 다녀왔던 추억이 있어서 나보다도 더 잘 알고, 더욱 나를 부러워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언니가 최근에 다녀온 비행에 대해 말을 해줬는데, 정말 개진상이었던 승객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럴 때 나 같으면 어떻게 행동했을 것 같냐라며 물어봤다. 언니가 들려주는 상황은 정말 나였어도 말 그대로 '개 화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였어도 언니처럼 행동했을 거라고 말을 했다. 이 진상이란... 하도 비행을 많이 타봐서 어떻게 해야 해당 항공사로부터 이득을 취할 수 있는지 너무나도 자명하게 크루보다도 잘 알고 있던 승객이었다. 해서 분명 언니는 뜨거운 음료를 건네줄 때, 해당 승객에게 흘리거나 쏟은 적도 없는데 본인이 일부러 홱 낚아채고서는 'ouch!'라고 외치곤 너 때문에 내 손에 화상 입었냐느니 그랬다는 거다. 웃긴 건 가서 보니 뭐 크게 쏟거나 그런 흔적도 없었고, 마치 본인의 행동에 대한 시나리오를 각본처럼 잘 짜두었는지 뜨거운 음료를 받은 그 손을 제외하고서는 아주 이불로 꽁꽁 싸매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어이없는 사건뿐만 아니라, 빨리 뒤에 계신 승객들께도 서비스를 나가야 하는데,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딜레이가 되면 음식은 점점 식어가고 뒤에 계신 손님들은 짜증 나고, 다른 복도에서 일하는 크루들이랑 간격차이가 확연하게 나버리니 서비스 속도의 차이가 나게 되어 힘이 들게 된다. 으으으... 말만 들어도 그 상황이 눈에 그려져서 나도 모르게 한숨 쉬면서 너무 고생했다고 말을 건넸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상황에 대해서 언니는 부사무장에게 말을 했고, 이래저래 해결방안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결국 손님은 본인이 원하는 걸 얻어냈고, 마지막에 언니가 사과하러 가니 너무나도 행복하게 웃으면서 괜찮다고 했단다. 더욱더 어이가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본인을 아프게 하고 화나게 했다면 마지막에 그렇게 웃으면서 얼굴을 마주하고 괜찮다고 할 수가 있을는지....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면서 언니는 종종 비행에 있는 이야기도 함께 했는데, 요즈음 본인도 많이 지치고 힘들어서 그런지 누군가가 귀찮게 굴거나 요구사항이 많아지면 표정관리가 안된다고 말을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이럴 경우 나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물어봤다. 내 대답을 듣고 언니는 말했다.

"나는 네 성격이 참 부럽다. 대단하다. 나도 너처럼 calm(차분)하고 그럴려니 하고 넘겨야 하는데 말이야. 근데 그거 알아? 나처럼 눈에 기분이 보이는 사람보다 너처럼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감정의 업다운이 심하지 않은 사람이 정말 무서운 거."

하하. 그렇냐면서 언니에게 말하곤, 사실 나도 그렇게 짜증 나는 일 있으면 겉으로는 티를 안내지만 조용히 화장실 체크하고 간다고 하고 화장실 청소하면서 온갖 욕은 다 하고, 그러고 나와서는 선배들에게 웃으면서 따봉 날리면서 '토일렛 첵 ^^" 한다고 하니 언니가 깔깔 웃으면서 그거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사실 종종 크루들에게도 그렇고 듣는 말이 되게 차분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 간혹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도 들었는데, 그만큼 나는 내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도 않는다. 굉장히 당황스럽거나하면 드러나긴 하지만, 웬만하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감정의 업다운이 심하지 않아서인 것 같은데, 생각해 보면 살면서 굉장히 크게 화를 낸 적도 없었다. 뭔가 나는 화가 나거나 실망하면 눈물이 먼저 나오는 스타일이긴 하다만... 이런 부분이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하는 승무원의 직장환경에는 뭐 괜찮게 적용되는 부분인 듯하다. 누가 내게 꾸짖어도, 그냥 아, 내가 후배고 배워야 하는 사람이니까 네, 죄송합니다. 제가 더 나아지겠습니다 하고 넘기고. 비행 끝나면 기분은 나빠도 그냥 넘겨버리고. 그렇다. 그러고 시간 지나면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했는지 이해도 되고 말이다. 그냥 그렇게 넘겨버리려고 한다. 저 사람도 한 가정의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고 연인이고, 인연일 텐데.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하고 그냥 넘겨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나도 안다. 내가 정말 화가 나면 나 스스로도 무서울 정도로 칼 같아지고 무섭다는 걸. 이전에 중학생 때, 한 일진이 내가 힘들게 반을 위해서 만든 스케줄을 가지고 뭐라고 비꼰 적이 있었다. 너무나도 화가 나 주체가 안되어서 참다 참다가 폭발했었는데, 반 전체가 있는 앞에서 쌍욕을 박았던 기억이 있다. 평소 같았으면 조용했을 나인데, 그게 안되었는지 쌍욕은 물론 큰 목소리로 따박따박 말을 하니 애들이 다 놀라서 황당하였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친구들이 정말 무섭다고 말을 건넸었는데, 그 일진도 나를 만만하게 보지도 않았던 추억이 있다. 그러고 그 친구는 내 인생에서 아웃이었다. 내 앞에 있건 말건 없는 사람, 투명인간 취급했다. 성인이 된 지금은 그런 일이 있다면, 누구시냐면서 존댓말로 응대했을 것이다. 그만큼 내 인생에 있어선 없는 사람이 되는 거기 때문에 어쩌면 내가 나 스스로를 잘 알아서 감정 컨트롤을 잘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너무 포커페이스를 하는 것도 어쩌면 나 스스로의 감정을 숨겨야 하는 부분이기에, 마음에 묵혀두어 쌓이면 결국 독이 될 수도 있다. 그걸 잘 아는 나는, 혼자 방에 있을 때, 울고 싶으면 그냥 펑펑 울고, 웃고 싶으면 재밌는 영상을 보고 웃는다. 아픈 과거의 기억이나 힘든 기억이 떠오르면, 아, 떠오르는구나 하고 내버려둔다. 오늘은 적적한 날이구나 오늘은 나도 모르게 나 스스로가 힘든 날인가 보구나, 나 스스로가 생각이 많은 날이구나 한다. 그게 어쩌면 나 스스로를 더 감싸주고 사랑해 주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일을 함에 있어서 포커페이스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우리처럼 사람을 대하는 서비스직에서는 말이다. 언젠가 내게 큰 아픔이 찾아오거나, 가족이 아프거나, 가족을 잃거나 하는 등의 힘든 날이 다가온다면, 그럴 때도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하는 일을 했을 때 슬프다고 결코 티를 내서는 안될 것이다. 저번에 한 유명한 미국 여자 가수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 관련 영상을 봤다. 투어를 도는 도중에 남편한테서 이혼통보를 받아서 정말로 힘들어하고 울었는데 본인을 위해 아무것도 모르고 기다리는 팬들을 위해, 무대 리프트가 올라가기 전에 심호흡을 하고 방긋 웃는 얼굴로 대기하는 모습의 내용이었다. 참 프로페셔널하면서도 그 심정을 잘 알기 때문에 마음이 찡하고 아팠다.

프로페셔널한 포커페이스, 웃는 얼굴 뒤에 숨겨진 나만의 감정과 나만의 스토리는 그 아무도 모르겠지. 하지만 그것이 결국 내게 필요한 부분이라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보여줘야만 한다. 서비스직이란... 포커페이스가 다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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