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지코에서 가을을

ep.25

by 추설

지난 화 마지막:


"이거 봐요, 혜은 씨. 이렇게 하루키를 좋아해 주는 사람한테 어떻게 제가 하루키는 잘 살고 있으니 신경 끄라고 말하겠어요. 이럴 때는 보통 남자가 연락하는 게 맞는데, 걔가 뭐 보통 애인가요."

흐르는 눈물 사이에서도 웃음이 터졌다. 하긴 그 사람 보통 사람이 아니었지.

유미는 너무 고마운 사람이었다. 당시 아무 생각 없이 교환한 SNS 계정이 이렇게 시간이 지나 연을 만들어주다니.

"정말 고마워요, 유미 씨. 하긴 그 인간이 저한테 먼저 연락할 사람이 아니죠. 근데 유미 씨는 왜 이렇게 저한테 잘해 주세요?"

"그건 앞서 말한 대로 혜은 씨는 좋은 사람이니까요. 하루키도 물론이고. 그리고 제 친구 카렌도 그걸 바랄 거고요."


카렌...?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지금은 하루키와 어떻게 된 걸까.


ep.25


"고마워요, 유미 씨."

"이거요. 등록해요. 꼭!"

유미는 나에게 하루키 연락처를 주고는 꼭 하루키를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일본에 또 여행을 오게 되면 그때는 꼭 술을 같이 먹자고 하고 헤어졌다.

재일교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재일교포라니. 하긴 10대 때부터 유학을 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

말도 어눌했고 친구도 없고. 공항 길이나 유창한 일본어, 설마 그래서 포장마차도 몰랐던 걸까?

그래서… 이름에 트라우마가 있다고 한 걸까..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그가 과거를 그렇게까지 감추지 않아도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생각이 났다.

'비밀. txt'

그곳에 하루키의 비밀이 있다.

결국 비밀. txt를 열었다.


『이 글을 읽고 나면 쓸데없이 울고 그러진 말아요. 위로받으려고 쓴 글은 아닙니다. 그냥 내기가 생각나서 쓴 거예요.』


맨 윗 문장을 보니 다시 까칠한 그 인간이 돌아온 것 같아서 웃음이 났다. 그가 그립다.


『이제서야 밝히지만 전 유학생이 아니에요. 전 재일교포입니다. 아라이 하루키. 이게 제 일본 이름이에요.

뭐부터 얘기를 해야 할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 저는 부모님이 안 계신다고 한 거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저는 재일교포인 아버지, 한국인인 어머니가 계셨어요 두 분은 제가 다섯 살쯤 한국으로 간다는 말을 두고 사라지셨고요. 그 덕분에 저는 한국어를 못 하는 할머니 밑에서 자라왔습니다. 할머니는 일본 분이세요. 조금 복잡하죠. 그러니까 저희 친할아버지가 재일교포셨고, 일본인인 할머니를 만나신 거예요. 할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으니까 저도 잘은 몰라요.

여기까지는 그냥 그런 얘기죠.

할머니가 몸이 많이 편찮으셨거든요. 치매도 오시고. 그러다 보니 일본어를 어릴 때 제대로 알려주시지 못했는데, 그 와중에 또 한국어는 꼭 배워야 한다고 엄청 혼내셨어요. 그래서 열심히 하려고는 했어요. 정말 귀찮은 일이었죠. 어차피 나는 일본에서 살아갈 텐데, 제대로 기억도 안나는 부모님 덕분에 내가 한국인이기도 하라나 뭐라나.

뭐 여기까지는 남들도 다 있을 수 있는 얘기입니다.』


아니, 남들도 다 있을 수 있는 얘기라니? 이 인간은 정말 끝까지 나를 당황시키는구나.


『여기부터는 조금 어두운 얘기를 해야 해요. 제가 사람을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니까요.

어쨌든 저는 위에서 쓴 내용과 함께 이런저런 이유로 학창 시절을 대부분 혼자 지내왔습니다. 친구 없이.

그러던 중 고등학교에서 처음으로 친구를 만났어요.


저와 다르게 인기가 아주 많은 친구였습니다. 늘 혼자였던 저에게 동아리를 권유한 친구였어요. 사진 동아리였죠. 아주 작은 동아리. 부원이 모자라다고 해서 반강제로 가입한 동아리였지만, 당시에는 정말 좋은 추억들을 만들었어요. 작은 대회지만 공모전에서 상도 타보고, 밥도 같이 먹으러 가보고. 카페도 가보고 처음으로 친구라는 존재를 느꼈거든요.


늘 저를 기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일하게 당시에는 외롭지 않았어요.


뭐, 조금 시끄러운 유미가 (아, 유미는 그때 시모노세키에서 본 여자애예요) 나랑 그 친구 사이를 질투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셋이 즐거운 시간을 1년 반 정도 보냈던 것 같아요.


저는 그 사이 그 친구를 많이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둘이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다행히 유미는 눈치가 빠른 친구여서 그런지 대학교 입학을 준비한다며 공부에 몰두했죠.

어느 날 그 친구는 저보고 사람을 찍어본 적이 없으니 사람을 찍어보는 건 어떠냐고, 본인의 예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저는 어느새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설렘을 느끼고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

체육 수업이 끝나고 급수대에서 물을 먹고 있는 그 친구의 사진을 찍었어요. 그 친구의 사진을 모아 다가오는 졸업식 때 선물로 줄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에 사진을 찍는 모습을 같은 반 타케시가 휴대폰으로 찍었습니다.

아, '타케시'는 우리가 시모노세키와 텐진에서 본 그 애예요.

타케시는 그 사진을 SNS에 올렸고, 저는 수많은 욕과 멸시를 받게 됐어요. 더군다나 저와 같은 재일교포까지 인터넷상에서 욕을 먹게 했고요. 아마도 현재까지도 인터넷에서는 당시 게시물이 꽤 있을 거예요.


나중에 알게 됐지만, 타케시는 오랫동안 그 친구를 좋아했고 여러 번 고백을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하더군요.

어느 날은 제 가방이 책상에 엎어져 있었어요. 그동안 찍은 그 친구의 사진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죠.

순식간에 학교와 지역에서 저는 증거가 있는 저질 도촬범이 되어 있었습니다. 당시는 미성년자라 훈방으로 끝났지만요.

물론 제가 좋아했던 그 친구는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해명했어요. 하지만 돌아온 건, 그 친구 또한 저질과 어울리는 여자애가 되어버린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친구의 얼굴은 저와 다르게 늘 밝은 얼굴이었어요.

그 밝은 미소를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SNS에 몰래 찍었다고 썼고, 그 친구는 더 이상 욕을 듣지 않아도 됐습니다.

당시에 저를 괴롭혔던 사람들은 할머니가 계시는 우리 집까지 찾아와 낙서와 온갖 오물들을 던져댔고, 저는 수많은 욕을 들어야 했죠. 재일교포 조차들도 저 때문에 욕을 먹고 있다며 저를 핍박했습니다.

그 시기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그 후 그 친구는 얼굴에서 서서히 빛을 잃기 시작했고, 결국 전학을 가게 됐습니다.

유일하게 버팀목이었던 그 친구가 사라지자, 제 마음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어요. 그런다 해도 바람이 있다면 그 친구가 어디선가 잘 지내길 바랄 뿐이겠네요.

그 후 저는 일본 사회에 경멸을 느꼈고, '그래 나를 버린 부모님이라도 찾아가자, 그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해보자'라는 어린 생각으로 한국을 건너왔습니다.

그런데 한국 또한 별반 다를 게 없었어요.

힘들게 수소문해 찾은 부모님은 이미 새로운 가정을 꾸린 지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있었어요.

그 행복해 보이는 한 가정을 내가 나타남으로써 파괴하는 일은 제 성격과는 맞지 않는 건 잘 아실 거예요.

저는 분명히 한국 여권을 들고 있지만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공모전에 등록조차 되지 않았던 적도 있고, 식당에서 휴대폰을 보고 일본어로 중얼거리자 밥맛이 떨어진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시는 노인분도 계셨고요.

당연하게도 고등학교 졸업 후 한국에 온 제가 친구를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만들기도 싫었고요.

저는 그렇게 제 신분을 숨긴 채로 활동하는 익명의 사진작가가 됐습니다.

처음에는 물론 어려웠지만 운이 좋게도 나중에 와서는 경제적으로는 나름 풍요롭게 지냈던 것 같아요. 그쪽에게 말은 안 했지만, 저는 업계에서는 나름 인지도가 있는 사람이니까요. 내 이름은 쓸 수가 없는 데다가 신상이 필요한 전시회나 공모전은 여전히 참여할 수 없지만.

경제적인 풍요로움이 제 마음의 벽은 쉽게 허물어주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곳에서도 제가 자리 잡을 곳은 없으니까요.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가정에서도, 심지어 같은 재일교포들조차도 저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니... 이런 아픔을 가지고 있던 사람에게 나는 도촬범이라고 했던 걸까..

이 사람.. 싫은 티 한번 내지 않았는데..


『그쪽은 제가 어릴 때 만난 그 친구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더 잘 갔나 봐요.

끊임없이 밀어내도 저에게 늘 와주던 그 모습이 제 마음의 벽을 허물고 있었어요.

저는 그게 무서웠습니다.


그쪽도 이런 제 나약한 사실을 알까 봐.

그쪽도 이렇게 내가 사실을 말했을 때, 사람을 만나지 않는 이유를 말했을 때, 내가 꾸며낸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떠날까 봐요.

세상과 부딪히는 게 부럽다고 했었죠?

아뇨,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오히려 세상에 무참히 짓밟히고 도망간 그런 나약한 사람이에요.

다만 그쪽이 그 여행의 마지막 날 밤에 나한테 한 얘기.

‘과거를 잊거나 부딪혀 보거나 해요’

오그라들지만 저도 한번 해보려고요.

가서 과거와 부딪힐게요.

그러니까 그쪽은 세상과 부딪히세요.

이 글이 전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쪽은 저를 유일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 사람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그쪽을 여행의 끝에 좋아하게 됐습니다.

제가 그날 신사에서 빈 소원은 '부디 이 사람은 이 밝은 미소를 끝까지 가지면 좋겠습니다'였어요.

비록 다음 날 밤에 제가 그 미소를 잃게 했지만…

아무튼 제 비밀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많이 미안했고요.

얼굴을 한 번 보면 좋았을 텐데. 늦은 거겠죠. 이미 저를 많이 미워할 테니.

잘 지내세요.

- 박하루』

『p.s. 이 파일 말고 다른 파일은 또 다른 제 마지막 선물입니다. 필요할 때 꼭 쓰세요. 그래도 그쪽은 제가 여기 머물렀다는 유일한 증거니까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박하루, 아라이 하루키. 그의 이름.

"이렇게 예쁜 이름을 왜 안 알려준 거야."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슬플 수가 있을까.



writer: 추설

Instagram id: sc28z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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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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