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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성호 Cha sungho Jul 22. 2023

낡은 신발장을 정리하다가

   - 아내의 등산화와 빨간 농구화 -

그 지겨운 무더위도 물러가고 선선한 가을냄새가 아침 마당을 들락거리자, 난 그동안 벼뤄왔던 창고 정리를 하기로 했습니다. 모처럼 시간이 날 때 날을 잡아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연중 행사니 까요.

추운 겨울이 어느새 들이닥칠지 모르니 얼른 서둘러야 좋지요.  면장갑을 끼고 장화까지 신고 먼지가 잔뜩 앉은 창고에 들어섰습니다. 일 년 내내 여기저기 어질러놓은 농기구며 농촌 생활에 필요한 잡다한 물건들을 선별해서 버릴 건 버리고 쓸건 잘 챙겨놔야 합니다. 그런데 처음엔 과감하게 몽땅 버리고 말끔하게 치워놔야지 하며 덤벼들었다가 막상 손을 걷어붙이면 그게 아닙니다. 여기서 내 성격이 나타나는 셈인데 모든 게 왜 그리 아까운지 버릴 게 별로 없는 겁니다. 하다 못해 빈음료수랑 빈캔을 모아놓은 자루도 고물장수 만나면 줄려고 창고 한쪽 구석에 다시 자리 잡습니다. 혹시 아나요? 옛날 어릴 때처럼 세탁비누 몇 장이라도 줄런지요.

아내가 몇 번 버리려고 시도했던 헌 옷들도 나의 엄격한 검열에 걸려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지요. 그것 때문에 신혼 초엔 참 많이 다투기도 했는데 이제는 아내가 거의 포기하거나 아니면 나 몰래 버리는 식으로 작전을 바꾸더군요. 아내는 구질구질한 살림살이는 그냥 못 보는 성격이라 좀 후줄근하다 싶은 옷가지나 잡지 등은 사라지기 일쑤지요.

이번에는 창고 정리를 하면서 아내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요량으로 나도 두 눈 딱 감고 과감하게 정리 좀 하리라 다짐을 했는데 막상 일을 시작하자, 창고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 다시 창고 한쪽 구석으로 들여놓는 물건이 더 많아지는 겁니다.


이번 창고 정리의 핵심은 몇 년 동안 거들떠보지 않았던 낡은 신발장입니다. 이 신발장은 그런대로 의미심장한 물건입니다. 신혼 초에 셋방살이할 적에 가구점의 비싼 신발장은 차마 못 사고 합판 한 장 사다가 손수 직접 만든 것이었습니다. 디자인은 볼 품 없었지만 오직 신발 넣는 기능만 강조한 작품이었지요. 그래도 이 신발장이 십 년이 넘도록 우릴 따라다녔던 것입니다. 사실 아내가 벌써 몇 번이나 버리려고 시도했었습니다.

난 이 신발장을 정리하려고 섰다가 그만 모든 행동이 멈추고 말았습니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칸칸이 놓여있는 우리 가족의 오래된 신발들을 보며 난 그만 지나간 시간 속으로 가는 타임머신을 타고 만 것이었습니다.

신발장 칸마다 놓인 우리 가족 네 명의 신발들이 어쩜 모두 그렇게 하나같이 재미있고 애틋한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는지 신기했습니다. 이제 결혼한 지 13년째, 처음엔 나와 아내 두 사람의 신발만으로 단촐했던 신발장이 이제 두 아이들의 신발까지 불어서 신발장이 가득 차 버렸습니다. 거기엔 아내가 처녀 시절 신고 다녔던 등산화며 빨간 농구화가 아직도 그 젊음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그 등산화를 보니 지난날이 생각났습니다. 결혼하던 그 해 삼일절 공휴일 날 결혼을 한 달 여 앞두고 우린 마산에서 강원도 태백시의 두타산까지 겨울 등반을 갔더랬습니다. 삼일절 전 날 밤늦게 출발하는 전세 버스 안에서 새우잠을 자고 다음 날 새벽 두타산 자락에 도착한 우리는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 덮인 두타산을 갖은 고생을 하며 올랐습니다. 평소 낚시가 취미인 나는 등산이 취미인 아내에게 점수 좀 따려고 선뜻 따라나섰던 그 산행이 내 평생에 가장 힘들었던 산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 두타산 눈 속에서 두 발이 꽁꽁 언 채 둘이서 찍었던 사진이 지금 우리 침실 머리맡 액자 속에 있지요. 그 당시 아내는 산을 참 잘 탔습니다. 오히려 경험 없던 내가 끌려가다시피 했는데 지금은 아내가 영 아닙니다.

가까운 지리산 천왕봉도 못 가서 중턱에서 그만 주저앉는 아낙네가 되고 말았지요. 그래도 지금껏 남아있는 등산화만이 그 전설을 얘기해 주는군요.

그리고 빨간 농구화. 아내가 나와 연애할 때 처음 야외로 데이트 갔던 날, 그 농구화를 신었더랬습니다.

창원 불모산 자락에 있는 성주사라는 사찰이었습니다.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핀 성주사 길을 함께 걸어가며 우린 서로 재미난 얘기를 주고받으며 까르르 웃기도 하며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지요. 뒷얘기지만 아내는 그때 저의 코를 꿰기로 결심했다나요? 아무튼 빨간 농구화는 우리 부부에게 각별한 추억을 주는 신발입니다. 다른 물건은 잘도 버리는 아내가 이 등산화와 빨간 농구화를 아직도 챙겨놓은 걸 보면 그 옛 추억이 그립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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