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부터 10세까지 한라산 등 50여 회 동반 등반한 이야기
남편과 셋이 갈 때는 남편이 업고 가고, 남편과 함께 갈 수 없을 때는 내가 아이를 업고 올랐다.
아이가 걷기 시작할 때는 손을 잡고 올랐다.
가장 어린 나이에 가장 힘든 산을 올랐던 때가 월악산이었다.
아이가 4살 때 같이 노래를 부르며 올랐다.
나도 어릴 때 산을 좋아했다.
가족들과 주말이면 산에 오르는 일이 일상이다.
그때는 그냥 부모님 따라 올랐다.
좋다, 싫다 그런 것도 없었고, 그냥 올랐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서부터 산의 맛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가 생기면 꼭 산을 함께 오르리라 맘먹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데에는 제가 산을 좋아하는 개인 취향도 있었지만,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무등산은 정말 100번쯤은 올랐을 것이다.
그때는 등산 가방도 없이 생수통과 이어폰만 들고 올랐는데, 그때 내가 산에 오른 이유는 한 가지였다.
"사는 것이 너무 힘이 들었다는 것'
어떻게 살아야 할지, 뭘 하며 살아야 할지, 졸업하고 취업은 할 수 있을지, 누구와 대화를 해도 해소가 안 되고, 무슨 말을 들어도 그게 곧이곧대로 안 들렸다.
스스로한테 자신은 없고, 정말 힘들었다.
그때 부모님께 배운 산이 떠올랐다.
대학생이라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도 않았고, 혼자 오로지 생각에 잠기며 몸을 쓸 공간은 산었다.
산을 다니며 생각도 많이 하고 몸을 쓰니깐, 잡생각도 안 들고, 자연을 보니 생각도 좀 트였다.
정상에 오르며 성취감도 들었다.
"사람은 자신이 있는 공간과 생각의 크기가 같아진다."
산에 오르면 여하튼 공간은 말할 것도 없으니 확실히 생각이 커졌다.
그래서 그 시간들을 극복해 냈던 것 같다.
나는 영화 '리틀포레스트'를 정말 좋아한다.
영화에서 혜원의 엄마가 혜원이 크기 전까지 시골을 떠나지 않은 이유를 말한다.
"엄마는 너를 여기에 심어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게 하고 싶었어.
영화 <리틀포레스트> 중에서"
나처럼 힘든 일이 생기거나 고민이 있을 때 산을 통해 그 시간들을 겪어냈으면 했다.
한 곳의 산이라도 오를 때마다 감흥이 달라진다.
다양한 공간을 원한다면 우리나라는 산이 많으니 갈 수 있는 곳도 많다.
또 돈이 안 들어서, 망설일 필요가 없다.
가까운 동산이라도 오르면 한결 나아짐을 몸소 느껴왔다.
최근 지리산을 오를 때, 아이는 정상을 오르며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마지막에는 너무 힘들어서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정상에 닿을 거라는 믿음 하나로 발걸음을 옮겼고, 최근 관심 가는 아이돌 노래를 흥얼거리는 데에만 집중했다고..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딱 내가 바랬던 고난을 마주하는 삶의 자세를 아이가 깨우친 듯했다.
고난의 상황에서는 그저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며, 순간의 즐거움에 집중하자는...
과한 해석인가....;;;;;
그리고 그 가장 좋은 방편은 산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와 산에 오르다 보면 아이는 산을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원 없이 많은 사랑받게 된다.
지나가는 등산객들은 아이를 보며 끊임없이 좋은 말들을 해 준다.
"큰 사람 될 거다.
기특하다.
대단하다."
아이는 언젠가부터 지나가는 등산객을 마주칠 때마다 먼저 큰 소리로 인사를 하게 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아이는 산속의 사람들과 에너지를 주고받는 데에 익숙해져 있었다.
아이가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인사를 받은 어른들은 기특해하며, 인사도 잘한다고 한껏 좋은 말씀과 에너지를 주신다.
그러면 아이가 또 신이 나서 인사를 한다.
그렇게 선순환과 성장이 이루어진다.
지금은 우리 아이가 나나 신랑보다 훨씬 산을 더 잘 탄다.
그래서 한참을 앞질러가는 아이의 인사하는 목소리가 뒤에서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곤 한다.
이제는 뒤이어 나와 남편도 덩달아 열심히 인사를 하게 되며 아이 덕분에 좋은 에너지를 나눠 받게 되었다.
아이와 산에 다니며, 어느새 아이의 생각이 단단해진 듯하다.
특히 한라산 백록담을 올랐을 때는 아이의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한라산 정상을 다녀온 후로 무슨 일만 있으면,
"나는 한라산 정상도 다녀온 사람이니깐."이라고 말하면서 어려워 보이는 일도 자신 있게 도전한다.
그리고 다른 산들도 겁을 내 하지 않게 되어 등산을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
올랐던 산 리스트를 적으며 아이는 무엇보다 뿌듯해한다.
또래에서 한라산, 지리산을 정상까지 오른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라면 스스로를 기특해한다.
산에 오르는 시간만 순수하게 잡아도 짧게는 왕복 4시간 정도이고, 길게는 10시간이 될 때도 있다.
그 시간 동안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간다.
10시간 산행을 할 때는 정말 귀에서 피가 나려고 했다.
나는 아이가 자연을 살피며, 관심을 가지도록 “다람쥐 찾기”미션을 준다.
산에 다니며 다람쥐를 보면 500원씩 용돈을 주는 것이다.
최근에 지리산을 올랐는데, 10마리를 찾아서 5천 원을 벌었다.
아이가 눈에 불을 켜고 다람쥐를 찾았다.
산에 오를 때에는 아이의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된다.
최근에 흥미를 가진 일이나 친구들과 하는 놀이 같은 것도 많이 이야기한다.
어떤 날은 어떤 일 때문에 억울했고, 또 어떤 상황은 좋아하지 않고, 어떤 친구가 맘을 상하게 했는지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알게 된다.
밝기만 한 우리 아이가 이런 속앓이도 했었구나.. 생각하며 아이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고는 한다.
그리고 함께 산을 다니다 보니 추억이 쌓여서 할 이야기들이 많아진다.
" 다음에 또 달마산 가자~!!
산 위에서 먹는 라면만 한 것이 없다.
설악산 갈 때가 생각보다 재미있었지."
이런 이야기는 아이가 성인이 되고, 나이를 먹어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귀한 공감대 주제 일 것 같아서 든든한 느낌마저 든다.
아이가 좀 더 어릴 때는 산을 다니며 다리가 아프다고 힘들어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산을 타서 산을 오르내릴 때는 다리가 아프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아이가 신기하다고 했었다.
물론 산을 다녀와서 근육통 같은 후유증은 있다.
그런데 확실히 체력이 좋아졌다.
아이가 많이 먹는 스타일은 아니고, 입도 짧은 편인데, 반에서 키가 세 번째로 큰 정도라서 키도 잘 크고 하는 게 다 산 덕분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다.
지리산 대피소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일출을 보러 가는데, 아이가 제일 먼저 일어나서 준비를 했다.
산을 오르내릴 때 지금은 아이가 제일 빠르게 오른다.
우리가 한참 뒤처져있으면 지나가는 어르신들이 아들 저기 대피소 입구에 있다고 말해주시고는 한다.
먼저 가서 “엄마 조심해”하고 주의를 주기도 한다.
요즘엔 장비다 등산복이다 좋은 아이템들 많이 나오긴 하던데, 뭐 그건 상황에 맞춰서 하면 될 일이고, 기본적으로는 돈이 별로 안 든다.
산에 가도 그냥 컵라면에 김밥만 먹어도 맛있다.
혹시나 지방에 있는 산이면, 산 근처에 휴양림들이 또 많고, 저렴하다.
휴양림에서 일박하고, 아침부터 산에 오르면 이동시간 부담도 안 되고, 경제적으로도 부담 안 된다.
우리나라는 정말 산이 많아서 너무 좋다.
아직도 못 가본 산이 너무 많아서, 부지런히 다니려고 계획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나이를 먹을수록 산에 오르면 더 좋다.
나는 아이가 커서도 아이의 아이와 함께 산을 오를 생각이다.
지금은 우리 엄마처럼..
요즘 산 좋아하시는 분들 정말 많다.
산이 부담이 되신 분들은 가볍게 산책하듯 트래킹부터 시작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