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의 고통이 이런 것일까
첫 셀프 인테리어 도전기(2)
셀프 인테리어의 꽃, 페인트칠
화장실 공사를 완료하고 페인트칠을 시작했다. 페인트칠은 정말 힘들었지만 한편으론 가장 재미난 작업이기도 했다. 주변에선 약값이 더 나올 거라고 전문가에게 맡기라고 했지만 업체에 맡긴 화장실 페인트칠 퀄리티를 보고 직접 칠하기로 마음먹었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 읽으며 방법을 익히고 필요한 준비물을 구입했다. 욕심부리지 않고 하루에 한 면씩만 칠하기로 다짐했다. 낯선 페인트칠이지만 얇고 뭉치지 않게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펴 바른다는 기분으로 하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무념무상 단순 노동이 주는 명상의 효과까지 덤으로 얻었다.
페인트는 색상 선택이 꽤 어렵다. 색상표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미세한 단위로 톤이 달라 마음이 갈팡질팡 했다. 어렵게 색을 골라 막상 칠했는데 원했던 톤보다 더 밝아 보였다. 리콘은 전면이 유리로 되어있어 채광이 좋다 보니 나타난 결과였다. 페인트 색상을 선택할 때는 공간의 빛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 빛의 세기 그리고 조명의 색온도 등도 계산한다면 더욱 섬세한 선택이 가능하다.
예상과는 조금 다른 결과가 나왔지만 생각했던 톤으로 했다면 공간이 작고 낡아서 오히려 답답하고 칙칙해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다행이다 싶었다. 덕분에 밝고 화사한 카스테라 색의 리콘이 완성됐다. 오는 분들마다 색이 참 예쁘다고 칭찬을 많이 들어 계획대로 되지 않음에? 감사했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우리는 흔히 실패했다 생각한다. 그러나 애초에 세운 계획이 최선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때론 계획 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기도 한다. 그래서 이제는 무언가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을 때면 스트레스받기보다 하늘이 또 어떤 선물을 주시려고 그러는 걸까 은근히 기대하곤 한다.
화장실과 수도 공사를 진행했던 업체 사장님이 셀프 인테리어를 할 거란 얘기를 듣고 본인이 목공을 할 줄 아니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하루에 모아서 처리해 주겠다 해서 외관의 낡은 문 프레임과, 오븐대 겸 수납합, 입간판, 벤치 등을 묶어서 비교적 저렴하게 제작했다. 덕분에 멀고 험난한 셀프 인테리어의 길이 한결 수월해졌다.
이제 조명을 달 시간. 을지로 조명 거리에서 발품을 팔고 인터넷으로 손품을 팔아 원하는 디자인의 조명과 전선, 콘센트 박스, 조광기 등을 구입한 뒤 전기 기사를 불러 전선 작업과 함께 설치를 마쳤다.
조명을 구입할 때 가장 큰 고민은 LED등과 백열등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였다. 언젠가 이태원 뒷골목에서 백열전구 불빛이 매력적인 공간에 마음을 빼앗긴 기억이 있어 경제적인 LED등을 포기하고 낭만을 택했다. 대신 화장실과 뒤편 창고로 사용하는 공간은 LED등을 달았다. 수년간 사용해 보니 백열전구는 교체도 잦고 열이 많이 발생하는 불편함이 있어, 다음에는 LED등을 구입할 거 같다. 요즘에는 LED등도 백열전구색으로 잘 나와서 충분히 예쁘다.
글로 쓰니 간단해 보이지만 작은 공간을 고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인테리어를 시작할 무렵 동네 입구에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건물이 하나 올라가는 것과 맞먹는 시간이 걸렸다. 주변에선 빨리 열어 돈 벌 생각을 해야지 굼뜬 나를 의아해했을 것이다. 첫 달 임대료를 내지 않아도 되었고 월세가 저렴한 공간이니 해볼 만한 선택이었다.
한 땀 한 땀 바느질 하듯 나만의 공간이 탄생했고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고 들인 돈 보다 훨씬 더 멋진 공간이 만들어진 거 같아 뿌듯했다. 전문가의 힘을 빌렸다면 더욱 빨리 편리하게 완성할 수 있었겠지만 '나다운' 느낌이 덜했을 것이다.
임신과 출산을 겪어보진 않았지만 아이를 낳는다면 이런 기분과 비슷하지 않을까. 몸이 으스러질 만큼 고통과 스트레스의 시간이지만 나를 닮은 사랑스러운 존재를 보며 모든 걸 잊고 그래서 둘째를 낳고 나는 또 셀프 인테리어를 할지도...
내가 담긴 공간에서 먹고 일하고 쉬며 삶을 채워가는 일은 그 고통을 잊게 할 만큼 큰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