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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혜 Jul 08. 2023

슬리퍼 신고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다

첫 셀프 인테리어 도전기(1)

 '리틀콘크리트'를 시작하겠어, 마음먹자마자 벽에 가로막혔다. 부동산을 찾아가고 관련 사이트를 뒤져 보아도 도무지 내가 감당 가능한 예산 내에서 괜찮은 공간을 찾기 어려웠다. 마치 슬리퍼를 신고 에베레스트산을 등반하는 것처럼 막막하고 처절했다. 하지만 십여 년의 서울 자취 생활로 단련될 만큼 단련된 자로서 완벽한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포기할 수 없는 것과 포기해도 좋은 것들을 정리해 보았다. 중요하다 생각하는 지점을 만족시키는 공간이 있다면 다소 아쉬운 부분들은 눈 질끈 감고 계약해야 한다.


  공간이라는 것이 지내다 보면 생각지 못한 장점을 발견하기도 하고 예측하지 못한 단점에 괴로운 법, 결국 플러스 마이너스 따져보면 손에 쥐는 결과는 비슷하다. 그래서 가장 좋은 곳을 찾으려 하기보다 지금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비단 공간뿐일까. 배우자도 일도 회사도 우리가 선택하는 모든 것에 적용되는 원칙이다. 


  지금의 공간을 계약한 가장 큰 이유는 저렴한 임대료다. 물론 저렴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외진 주택가 골목에 있어 유동 인구가 굉장히 적고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그에 따른 이득 또한 얻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러나 호주머니가 가벼운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리콘은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있다. 서울의 한 복판이다. 유동 인구를 기반으로 하는 상권에 큰 영향을 받는 비즈니스 모델이 아닌 나와 취향과 가치관이 맞는 고객들이 찾아오는 공간으로 꾸려가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동서남북 어느 곳에서나 접근이 편리하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아, 그리고 실내에 단독 화장실이 있다는 것도 훌륭했다.  


  보기엔 엉망이었지만 큰 공사를 진행할 필요가 없어 보였고 들어서자마자 새하얀 스케치북처럼 어렴풋이 그림이 그려지는 공간이었다. 열 평 남짓한 크기로 작지만 층고가 높아 답답해 보이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공간을 알아볼 때 철거 여부도 꼭 고려해야 한다. 철거 비용 또한 만만치 않고 고생스럽기 때문에 배보다 배꼽이 커질 수 있다.








  2017년 상가 계약 직후 리콘 모습이다. 한숨이 절로 나오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했다. 세상 살이 돈이 가장 중요한 건 아니지만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근심과 걱정, 고생도 많다. 공간의 남루함을 해결하기엔 나의 돈은 충분치 않았다. 결국 이 근심과 걱정을 해결해야 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대체로 나의 인생이 그래왔듯 대체로 우리 모두가 그런 삶을 살듯.


  셀프 인테리어를  진행하기로 한건 당연히 예산의 문제가 컸다. 나의 예산으로 감각 있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일한다는 건 그 또는 그녀가 자비로운 자선가 마인드가 아니라면 불가능해 보였다. 미적인 요소가 들어간 분야는 기술적으로 훌륭한 것도 중요하지만 고객이 원하는 감성을 구현해 내기 위해서 디자이너의 소통 능력과 감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산에 맞춰 대충 선택한 인테리어 업체와 진행하면 비용은 비용대로 들고 마음고생은 고생대로 할거 같았다. 그럴 바에야 돈이라도 아끼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언젠가 인테리어 업체와 일을 하더라도 a부터 Z까지 스스로 알고 있다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번에는 공부하는 마음으로 직접 부딪쳐 보기로 했다. 경험이야말로 최고의 학습이니까.


  앞서 이 공간을 계약한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실내에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 때문이라 밝힌 바 있다. 가게를 운영해 본 경험이 있는 지인이 예산 내에서 공간을 구하다 보면 굉장히 낡은 공용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했다. 위생이나 안전 등의 문제로 주민센터와 가까운 곳을 구해 그곳의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도 추천한다고 했다. 그래서 사실 화장실은 반포기 상태였는데 다행스럽게도 화장실이 따로 있는 곳을 찾게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7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 상가였던 터라 아직까지 동양식 변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업체를 찾아 서양식 변기로 교체하고 깔끔하게 개선하는 정도로 화장실 공사를 진행했다. 동시에 내부 공간에 수도를 연결하는 공사도 함께 진행했다. 약간의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가장 큰 문제였던 화장실 공사를 마치니 막막했던 마음에 한줄기 빛이 보였다.


이전 01화 '리틀 포레스트' 아니고 ‘리틀 콘크리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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