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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혜 Nov 14. 2024

웃어? 웃어!

웃음에 관한 단상

  

걷기와 자전거 타기, 요가를 좋아해 나름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지만 한 번씩 땀이 쭉 나도록 격렬한 운동도 해야 할 거 같아 다시 러닝을 시작했다. 늘 집 주변 공원을 달리다 오늘은 모처럼 리콘과 가까운 한강을 달렸다.


요즘 한강이 완전 공사판인데 오랜만에 가보니 새 단장을 마친 곳들이 눈에 띄었다. 새로 정비된 데크길 위에 할머니 할아버지인지 늦둥이 부모님인지 모를 부부와 아가가 뛰뛰를 타고 산책 중이었다. 부부는 심각하게 얘기 중이었고 아기 혼자 지루해 보이길래 옆을 지나가며 씨익 웃어보았다. 과연 아기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하며!


2~3초간의 정적(아마도 저 여자 뭐지?) 뒤 아가의 얼굴에선 물음표는 옅어지고 나를 따라 천천히 웃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나는 더 큰 미소를 지었다.


웃는 사람을 보곤 웃음이 따라 그려지고 우는 사람을 보면 뜻 모를 눈물이 나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어쩜 우린 똑똑한 지능보다 공감 능력으로 종의 번성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항상 마음을 곱게 쓰고 긍정적인 사람을 곁에 두려 한다. 알게 모르게 서로를 닮아가니까.


태생적으로 나는 웃음이 참 많은 사람이다. 흥이 많아서이기도 하고 심각해지기 쉬운 만만치 않은 세상 살이, 웃는 게 남는 거란 계산도 있다. 또 어찌할 바 모르는 난감한 순간이 오면 늘 버릇처럼 헛웃음이 나와서기도하다. 아가랑 마주 보며 웃다 보니 웃음 부자로 살며 겪은 두 가지 일화가 떠올랐다.


중학생 시절, 지금도 참 납득하기 어려운 규칙이 갑자기 생겨났다. 학생들은 중앙 계단을 사용할 수없고 오직 교직원들만 통행 가능하다는 것이다. 복도 끝쪽에 자리한 반이야 큰 불편이 없겠지만 중앙에 위치한 반 학생들에겐 꽤나 불편한 규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쉬는 시간에 담임 선생님의 심부름을 하나 맡았다. 당시 나는 중간에 위치한 반이었고 심부름의 장소는 바로 아래층 중앙에 위치한 반이었다. 10분이라는 짧은 휴식 시간 공무를 위해 삥 둘러가긴 다소 억울했다. 나는 과감하게 중앙계단을 다다다다 뛰어 내려가 볼일을 마치고 올라오다 당시 불곰이라 불리던 무시무시한 학생주임 선생님에게 걸리고 말았다.


교무실에 끌려가니 나처럼 중앙계단을 이용하다 발각된 스무 명 남짓의 학생들이 고개를 숙이고 서있었다. 쭈뼛쭈뼛 무리에 합류했지만 이 좌불안석인 상황에 멋쩍은 웃음이 자꾸만 새어 나왔다. 그때 불곰 선생이 나를 보더니 갑자기 맥이 풀린 듯 웃음을 지으며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저렇게 웃고 있는데 혼을 못 내겠네.” 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무리를 향해 니들도 좀 웃어! 소리치며 그냥 돌려보내 주었다. 나는 생각 없이 웃다가 졸지에 영웅이 되어버렸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다. 당시 학교의 최고 인기 동아리는 방송반과 연극동아리 그리고 내가 들어간 교지 편집부였다. 대외적으로는 1년에 한 번씩 발간되는 교지를 제작하는 일을 했고, 자체적으로는 분기마다 시를 써 문집도 발간하고 합평도 하는 문예 동아리기도 했다. 이름도 참 어여쁜 ‘얘깃골’. 굉장히 높은 경쟁률을 자랑하는 동아리에 나는 당당히 ‘예기꼴’이라고 잘못된 이름을 지원서에 써놓고도 합격했다. 들어가고 싶은 굴뚝 같은 마음을 담아 대형 책으로 정성껏 꾸며 낸 지원서를 내밀 때 꼴장 언니의 반 친구들이 우와 하며 박수를 쳐줘서 선배 언니의 어깨뽕을 한껏 높여준 덕분일까. 아무튼 어이없는 실수에도 운이 좋게 합격했다. 역시 인생은 기세여 기세!


전통만큼 군기도 센 동아리였다. 학기 초반 별거 아닌 일로도 기수가 단체로 혼이 나는 일이 많았다. 학교 운동장 조회대 아래 창고 같은 공간이 동아리방이었는데 우리는 골방 또는 꼴방으로 불렀다. 그날도 일렬로 주르륵 서서 맞은편에 삐딱하게 앉은 윗기수 선배들에게 잡도리를 당하는 중이었다.


모두가 그런지 모르겠는데 나에겐 행동하는 1인칭 주인공시점의 자아와 그런 나를 관찰하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의 자아가 공존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억지스러운 상황에 3인칭 관찰자시점의 자아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나 보다. 나도 모르게 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순간 선배의 날카로움 외침 “웃어?” 대역 죄인이 되어 더 혼이 났다.


웃어! 와 웃어? 그 사이에서 오늘도 난 몇 번이나 뜻 모를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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