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 카사노바
가까이 사는 선배가 리콘에 놀러 왔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레시피 테스트를 위해 만든 케이크로 티타임을 갖기로 했다. 선배는 집 근처에서 사 온 떡볶이와 김밥의 포장을 펼치며 물었다.
"나는 쌀떡 좋아하거든. 여기 쌀떡이라 가끔 사 먹어. 너는 밀떡이랑 쌀떡 중에 뭐 좋아해?"
나는 이런 류의 질문을 받을 때면 머릿속이 일시 정지된다. 처음엔 내가 우유부단해서 그런가 생각했지만 나에게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어서였다. 두 가지 선택지에서 한 가지를 좋아한다 말하는 건 선택에서 제외된 다른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덜 좋아하는 것이라 인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이것은 이것대로 맛있고 저것은 저것대로 매력 있기 때문에 무얼 하나 고르기 어렵다.
그런 이유로 나는 탕수육 부먹파도 찍먹파도 아니다. 대체로 찍먹으로 시작해 부먹으로 끝낸다. 먼저 고기에 약간의 소스를 부어놓은 뒤 그 옆의 아무것도 묻지 않은 고기 튀김을 남은 소스에 푹 찍어 바삭함을 즐긴다. 고기와 소스가 따로 노는 것이 지겨워지면, 촉촉이 소스가 배어든 부먹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지나치게 흐물거리는 탕수육은 사절, 소스를 조금씩 끼얹어가며 적당한 타이밍에 먹는 것이 좋다.
이러한 규칙은 튀김과 떡볶이 세트를 먹을 때도 적용된다. 바삭한 튀김을 떡볶이 소스에 찍어먹다 나머지는 양념에 퐁당 빠트려, 매콤 달짝한 소스가 촉촉이 스며든 부드러운 튀김을 즐긴다. 바삭파와 눅눅파로 나뉘는 시리얼도 마찬가지다. 바삭하게 시작해 눅눅하게 끝낸다. 마지막으로 달달 고소해진 우유를 남김없이 마시는 것도 빠트려선 안된다.
많은 한국인처럼 떡볶이는 나의 소울 푸드 가운데 하나다. 객지 생활을 하는 딸이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을 때면 어머니는 먹고 싶은 것이 없냐며 특별한 음식을 해주고 싶어 하신다. 떡볶이라는 나의 대답에 엄마는 고작 그거냐는 표정으로 피식 웃으며 냉장고에서 떡을 꺼내신다. 엄마표 집떡볶이는 사 먹는 떡볶이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케첩을 넣어 새콤달콤한 맛에 풍성한 채소 그리고 마지막에 참기름을 두르고 통깨까지 솔솔 뿌리면 간식이라기보다 정성스러운 요리에 가깝다.
나는 밀떡 쌀떡이 중요치 않을 만큼 모든 떡볶이를 사랑한다. 밀떡은 밀떡대로 부드러운 식감이 매력 있고 특히 국물 떡볶이에 잘 어울린다. 반면 소스가 걸쭉한 떡볶이에는 쫀득하고 구수한 쌀떡이 더 매력 있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당기는 떡볶이가 다를 뿐 어떤 떡볶이를 더 좋아한다 말하긴 힘들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맛없게 조리된 떡볶이일 뿐, 맛있다면 그것이 밀떡이든 쌀떡이든 즉석 떡볶이든 포장마차 떡볶이든 중요치 않다.
희대의 바람둥이 카사노바, 그가 사랑을 나눈 여성의 수보다 더욱 놀라운 건 모든 여성에게서 기꺼이 매력을 발견하고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열정이다. 나는 남자는 됐고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기회가 닿는 대로 세상의 모든 맛있는 떡볶이를 먹어보고 싶은 열망이 있다. 나는 떡볶이 카사노바요, 모험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