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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이재용, 부富의 비밀

[ 보다, 김영하, 문학동네 ]


[ 보다, 김영하, 문학동네 ]

 

 10여 년 전, 내가 더욱 꼬꼬마일 시절에 다녔었던 학원이 있다. 어머니의 억센 손에 이끌려 간 학원의 이름은 '뇌호흡' 학원. 아무리 사교육이 판치는 세상이라지만 지금 생각해도 평범하지는 않은, 아이의 창의력을 키워준다는 학원이었다. 그곳에서는 명상, 호흡법, 일기 쓰기 등의 다양한 수업을 했었는데, 그중에는 '속독법'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이들의 책 읽는 속도를 향상시켜 국어 입시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하는 것이 그 수업의 최종 목표였다. 한 권에 2~3백 페이지 가량 되는 책을 30분 안에 읽었어야 했는데, 내 기억으로 나는 딱히 훌륭한 학생은 아니었다. 30분 안에 완독은커녕, 백 페이지도 읽지 못했으니. 그렇게 빨리 읽어야 한다는 강박감 아래 읽었던 책들은 다시는 내 손에 잡히지 않았고, 나는 끝내 속독법을 '마스터'하지 못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의문이 든다. 내가 만일 속독을 익혀 그 책들을 순식간에 해치워버렸다면, 그 책들은 내 머리가 아닌 '가슴'에 아직도 남아있을까? 글쎄, 그 책들의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아 아마도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나는 진정으로 그 책들을 '보았다'라고 할 수 있을까.

 학원에서 내가 책들을 대한 자세는, 경쟁 사회가 독서의 영역마저 오염시킨 것을 보여준다. 사회가 어떤 것의 의미를 찾기보다는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만을 외쳐댔으니 이제는 어린아이의 책 읽기에서마저 능률을 찾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책을 온전히 보는 것이 아닌, 활자를 빨리 읽는 데에만 전문가가 되었다. 


 김영하의 산문집 [ 보다 ]는 이러한 사례와 같이 '본다'라는 것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의 책 제목 [ 보다 ]는 단순히 '어떤 대상이 내뿜는 빛을 안구를 통해 감지한다'가 아닌, '어떤 대상에 대한 사고와 감상'까지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가 4년의 외국 생활 끝에 돌아와서 바라본 한국 사회의 모습들은 그에게 왜 이런 사회가 나타나게 되었는지,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그가 전체적으로 느낀 한국의 색깔은 '공장의 회색'이었다. 사람들은 책을 들기보다 모두 스마트폰에 머리를 박고 있고, 여유보다는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듯했다. 부자들은 가난한 이들을 더 잔인하게, 더 교활하게 짓밟고 올라가는 반면에 가난한 이들은 그들의 재산을 뺏기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또 사회는 '남들이 다 하는 것들'을 같이 따라 하지 않는 사람에게 돌연변이, 왕따 취급을 해댔다. 


 그 과정에서 김영하 작가는 한국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나'를 잃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사회라는 거대한 장막에 눈이 가려진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을 바라볼 여유조차 스스로 없애버리고 있는 것이다. 한 예로 그는 오늘날 사람들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스마트폰을 '시간 도둑'이라 부르며 이렇게 말한다.

 '이제 가난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자기 시간을 헌납하면서 돈까지 낸다. 비싼 스마트폰 값과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 부자들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제공한 시간과 돈을 거둬들인다. 어떻게? 애플과 삼성 같은 글로벌 IT기업의 주식을 사는 것이다. 그들은 클릭 한 번으로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시간을 헐값으로 사들일 수 있다.'


 여기서 그는 과거에는 시간이라는 자원은 유일하게 모두에게 공평한 자원이었지만, 이제는 이마저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러한 불평등의 절반은 가난한 이들이 '스스로'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 보다 ]에서는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모든 것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그중에는 죽음을 앞둔 이들의 입장과 같이 심오한 주제도 있지만, 김영하 작가는 위트 있는 문체를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독자의 흥미를 지속적으로 이끌어낸다. 


 또 [ 보다 ]는 읽는 이 모두에게 꼭 '정면'이 아니더라도 왼쪽, 오른쪽, 위, 아래 등 다양한 시각을 통해서 어떤 생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스스로만의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을 통해서만 그 대상을 '진실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지금에 이르러 책은 내 생활의 떼어놓을 수 없는 일부가 되었고, 가끔 그 시절에 속독을 배웠다면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아주 가끔 한다. 하지만 잠깐의 고민 끝에 나올 내 대답은, 여전히 '아니오'이다. 


 내가 지금 만나는 모든 책들은 종류와 상관없이 나름의 가치가 있고, 배울 점이 있다. 그들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며, 미처 알지 못했던 감각을 깨닫는 즐거움은 앞으로도 절대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 보다 ]는 내가 천천히 그들을 바라볼 수 있을 때만이 나 역시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것, 이것을 가르쳐준 고마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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