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은 목적을 잊고 싶어 한다
일을 잘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공허함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팀도 열심히고, 일정도 잘 맞고, 결과도 나쁘지 않은데 이걸 왜 하고 있는지 애매해지는 순간.
그럴 땐 시스템 안에서 형식이 목적을 삼킨 상태일 가능성이 큽니다.
어떤 일도 처음엔 명확한 목적에서 출발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자”, “이 고객을 만족시키자”, “이 흐름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자.”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목적은 점점 배경으로 밀려납니다.
남는 건 ‘보고서 작성 완료’, ‘캘린더 일정 소화’, ‘회의 시간 소진’ 같은 형식적 성과의 흔적들입니다.
시스템은 형식을 남기고, 목적은 지우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왜냐면 형식은 반복할 수 있고 기록에 남고 측정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형식은 안전하고, 목적은 흐릿하니까요.
익숙한 패턴일수록 반복이 쉬운 형식일수록 시스템은 그 방향으로 기울어집니다.
결국 일하는 사람은 반복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생각보다 보고서를 잘 쓰는 사람이 되며, 이유보다 증거를 잘 만드는 사람이 됩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시스템은 목적을 잊는 걸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빈자리를 비슷한 뭔가로 ‘복제’합니다.
고객 만족 → 만족도 점수 관리
문제 해결 → 보고서 양식 충실히 작성
의사결정 효율화 → 회의 체크리스트 정리
처음엔 중간 지표였던 것들이 점점 본래의 목적처럼 자리 잡습니다.
이른바 '목적의 복제본'입니다.
이 복제본은 더 간편하고 명확해서 사람들이 따르기 쉬운 구조를 만듭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복제된 목적에는 감정도, 공감도, 몰입도 없습니다.
그저 ‘잘 작동하는 구조’만 남습니다.
복제된 목적은 시스템을 흐르게는 하지만 사람을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효율은 유지되는데 에너지는 고갈되고, 이상하게 피로만 남는 구조가 형성됩니다.
일이 무겁다기보다 의미가 희미한 느낌이 드는 이유입니다.
복제된 목적 구조의 루프 예시:
[초기 목적 잊힘] → [형식 강화] → [지표 중심 반복] → [실질 가치 퇴색]
복제된 목적 구조를 바꾸지 못하고 지연까지 발생했을 경우:
[초기 목적 잊힘] → 지연 → [의미 감각 저하] → [동기 약화]
시간이 지나면 시스템은 효율만 남기고 이유를 지웁니다.
흐름은 유지되는데 방향은 사라집니다.
1. 1일 1 문장 회의 전 리마인드
회의 시작 전, 각자 오늘의 주된 작업 하나에 대해 “이건 지금 누구를 위해, 어떤 결과를 만들고자 하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목적은 말로 꺼낼 때 선명해집니다.
2. 프로젝트 전 ‘원래 목적 문장’만 모아 보기
프로젝트 초기 문서, 보고서 초안, 이메일 대화에서 ‘처음 목적이 뭐였는가’를 문장으로 추출합니다.
복잡한 전략보다 목적을 되짚는 과정이 방향을 되찾아줍니다.
3. 업무 중간 ‘목적 트래킹 루틴’ 삽입하기
일정 점검 시간마다 “이 흐름은 지금 본래 목적에 기여하고 있는가?”를 되묻는 단순 반복 질문을 삽입합니다.
목적을 잊는 흐름에 빠졌을 때 목적을 되살리는 마이크로 루틴입니다.
이런 루틴은 거창할 필요 없습니다.
단 한 문장의 질문만으로도 다시 목적을 감각할 수 있습니다.
무뎌진 방향 감각을 회복하는 데는 복잡한 도구보다 단순한 자극이 더 효과적입니다.
시스템은 반복을 사랑합니다.
형식을 좋아하고 지표를 남기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원래 왜 시작했는가’는 점점 잊힙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기적으로 구조 속에서 목적을 꺼내야 합니다.
다시 말로 꺼내고 흐름 위에 올려야 합니다.
목적은 설명이 아니라 감각으로 복원돼야 합니다.
형식이 모든 걸 차지하기 전에.
다음 편 예고: 일이 아니라 구조가 피곤한 것이다
피로의 정체는 일이 아니라 그 일을 감싸고 있는 구조에서 옵니다.
다음 편에서는 ‘왜 일을 줄여도 피곤한가’에 대한 시스템적 해석을 풀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