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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호 Mar 24. 2024

<미움을 안고 살아가는 법>

더 이상 이렇게 살 순 없어

오랫동안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그다지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보냈다. 무언가 하고픈 열정도, 기대도, 설렘도 사라진 지 꽤 되었다. 남들은 반짝이지는 않더라도 다들 자기만의 색을 내는데 나는 언제부턴가 무색, 무취, 무맛 인간이 되어있었다. 어떻게 그간 살아오면서 말할 말한 취향도 신념도 고집도 하나 없을까. 살기 싫다고 말하면서 죽지도 못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용감하지만 대개는 비겁하다. 세상에는 실용적이고 영혼을 살찌우는 글들이 가득한데 인터넷 세상에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데다 데이터 낭비다. 나는 나로 인해 소모된 데이터에게 사과하고 싶다. 지난 시간 나를 거쳐 간 모두에게 몇 번이고 사과하고 싶다.  

     

누군가에게도 자세히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내가 싫다. 나는 나빴다. 그때 그랬으면 안 되었다. 나는 내 걸음걸이가 싫다. 인상을 쓰는 습관이 싫다. 천박한 머릿속 생각과 수준이 싫다. 잘 모르는 사람을 멋대로 평가하는 저질스러움이 싫다, 잘 알지도 못하는 것을 아는 척 떠드는 그 얄팍한 속내가 싫다. 멋져 보이고 싶어서 폼을 잡는 게 싫다. 별로 해준 것도 없으면서 생색내는 모습이 싫다. 읽지도 않을 책을 사는 게 싫다. 지키지 못할 계획을 짜는 내가 싫다. 화내야 할 때 웃고 웃어야 할 때 미묘한 표정을 짓는 내가 싫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진동하는 어색함과 쭈뼛거림이 싫다. 무식한 내가 싫다. 보이스 피싱을 당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놓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싫다. 하나부터 열까지 싫다. 미워죽겠다.      


나는 미운 존재와 한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남편이 너무 싫은 아내가 매일 교회에 찾아가 신에게 두 손을 모아 남편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는 이야기를 예전에 TV에서 본 적이 있다. 여자는 수없이 많은 기도 끝내 어느 순간 정말 남편이 예쁘게 보이더란다. 나도 그렇게 하면 될까. “나는 네 아빠 사랑하지 않아” 엄마는 자주 말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엄마는 누구보다 아빠에게 사랑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아빠가 보낸 다정한 문자를 내게 몇 번이나 보여주고 아빠의 마음을 생각하다 울기도 하니까. 나는 안다. 그리고 엄마도 아빠를 사랑한다. 너무 사랑하면 그 사랑을 모르기도,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어지기도 하는 법이다. 내가 나를 이렇게도 미워하는 까닭도 어쩌면 나를 사랑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참 지독하고 한결같은 사랑이다.     

 

분명 삶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 나를 살리는 것들이 있다. 가령 소파에 누워서 책을 읽으며 내는 아빠의 콧노래나 엄마의 빨간 볼과 웃음소리, 피자빵을 보면 정신없이 달려들었던 슈의 코, 제주도에 살 때 동생이 나에게 보내온 드라마 선덕여왕 줄거리 요약 메일, 공짜 공기와 공짜 햇빛, 친구가 적어준 손 편지, 알록달록한 색깔, 노영심의 그리움만 쌓이네, 모르는 사람이 툭 던진 칭찬, 커다란 로봇에 관한 이야기, 엄마의 두부조림은 나를 더 살게 한다. 나는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었다.      

     



‘브런치에 기분 좋고 유쾌한 글을 적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마음이 괴롭습니다. 괴롭다고 써놓고 밥도 잘 먹고 영화나 보고 누워 지내서 참 양심에 찔립니다. 삶 속에서 밝은 이야기를 찾아 이야기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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