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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호 Feb 25. 2024

<나를 닮은 나보다 어린 그 청년의 마음이 궁금하다>

아빠와 나는 무서울 정도로 서로 닮았다. 단지 유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닮았다. 저벅저벅 소리를 내며 느리게 걷는 팔자걸음, 나이가 들어도 달고 짠 것만 좋아하는 음식 취향이며 이것저것 만들고 그리기 좋아하는 거며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쏙 닮아있다. 내가 대학교 때쯤 아빠가 거리에 쓰러진 새끼 새를 데려와서 물을 먹이고 조심스럽게 며칠간 보살폈던 모습을 보고 나는 꽤 놀랐다. 새는 결국 다시 날지 못했고 아빠는 그 일이 마음이 아파 눈시울이 벌게져서는 우리에게 며칠이나 그 이야기를 했다. 나는 처음 보는 아빠의 얼굴을 한참이나 쳐다봤다.     


아빠: 사람들이랑 라이브 카페 갔었다?

나: 신청곡 써서 내면 노래 불러주고 그래요?

아빠: 아니 누가 불러주긴 내가 부르는 건데

동생: 아빠는 사람들 많은 데서 노래 부르면 안 떨려?

아빠: 무진장 떨리지     


며칠 전 밥을 먹다 아빠가 꺼낸 라이브 카페 도전기에 나랑 동생은 웃음이 터졌다. 나는 무진장 떨리는 아버지가 아무렇지 않은 척 눈을 감고 몸을 흔들거리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보인다. 안 봐도 알 수 있다. 나의 수줍음은 아빠에게서 왔다. 사람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겠다는 내 고민에 아빠는 그럼 귀를 봐. 아빠도 젊었을 때 그래서 거울 보고 연습 많이 했어, 귀를 보면 아무도 눈치 못 챈다며 알려주었다. 아빠와 나는 중국 무협 드라마를 재밌어하고 미스터리한 사건이나 외계인 음모론에 관심이 많다. 라면은 면보다는 국물을 좋아하고 소파에 누워서 읽었던 책을 또 읽는 것을 좋아한다. 아빠의 좁은 3자 이마와 툭 튀어나온 눈썹뼈, 처진 입꼬리, 가만히 있어도 슬퍼 보이는 표정을 나는 빼다 박았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 내 얼굴이 어떨지 훤히 보인다. 나는 아빠처럼 늙어갈 거다.      


젊은 시절 아빠는 내가 자신을 너무 닮은 것이 무서웠다고 했다. 모난 부분까지 그대로 닮아서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그대로 할 것 같아 겁이 났다고 했다. 아빠는 24살에 나를 낳아 안경점과 분식집을 거쳐 오락실을 차렸으나 모두 잘되지 않았다. 우리는 오락실에 달린 작은 방에서 지냈는데 하루는 아빠가 어디서 뭘 듣고 왔는지 "나 이제 노가다할 거야! 노가다가 하면 지금보다 돈 많이 벌 수 있대" 엄마 말로는 아빠는 신나서 말했다고 했다. 아빠는 평생 노가다로 나를 키웠다. 나를 더 나은 세상에 보내려고 아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다.      


아빠는 우리 형편에 도저히 배울 수 없는 바이올린도 개인 선생님을 붙여가며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1 때까지 가르쳐줬다. 좋은 음악을 많이 들어야 좋은 연주도 할 수 있다면서 르카프에 가서 그 비싼 cd 플레이어도 사줬지만 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지 못했다. 4년 동안 대학 학비를 지원해 주었지만 나는 변호사도 법원직 공무원도 되지 못했다. 나는 아빠의 청춘을 먹으면서 자랐다. 아빠 자신처럼 되지 말라고 무던히 노력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노가다를 할 거라고 웃으면서 말했던 그때의 아빠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버렸다.      

가끔 나를 닮은 나보다 어린 그 청년의 마음이 궁금하다. 무섭지는 않았을까.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을까. 


아빠의 그 마음들이 내 뒤에서 부지런히 등을 떠민다. 더 살라고, 괜찮으니깐 더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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