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등장
나뭇가지처럼 가는 다리에 반바지를 입고 멍든 오른쪽뺨을 매만지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피멍이든 러셀은 집을 지나쳐 한참을 더 걸었다.
케일의 집에 도착했다.
‘오늘도 맞았어?’
‘아니야’
뺨이 너무 부어서 눈을 뜨기 힘들다.
‘게임이나 하자’
케일을 따라 거실로 들어가자 큰 화면에 게임기가 이미 연결되어 있었다.
‘너 이거 할 줄 알아?’
‘당연하지’
거짓말이다. 러셀은 이런 게임을 구경도 못해봤다.
케일을 따라 조이스틱을 조작했지만 마음같이 되지 않았다.
캐릭터는 허공에 수많은 공격을 하고 캐릭터의 움직임에 몸도 같은 방향으로 기울었다.
반면 케일은 반은 구겨져 앉아서 최소한의 조작으로 승리하고 있었다.
‘에이 안 할래!’
‘화낼 거면 집에 가’
부은 눈으로 케일의 눈치를 보다가 일어난다.
자리를 떠나던 러셀이 화난 표정으로 한번 돌아보고 집을 나선다.
’화 안내면 가르쳐줄게 빨리 와 ‘
문닫기직전에 메이슨의 목소리에 러셀은 신나서 뛰어들어갔다.
’ 자 이건 점프고 이건..‘
러셀은 일어나서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와!! 이겼다.‘
초인종이 울렸다. 게임을 하는 케일을 대신해 러셀이 문을 열었다.
문 앞엔 리나가 서 있었다.
‘엄마가 빨리 오래. 여기서 뭐 해’
리나가 동생인 러셀을 찾아온 것이다.
‘누나 안녕하세요’
케일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인사를 한다.
‘안녕, 러셀이 귀찮게 안 했어?’
‘아니에요. 같이 게임했어요’
‘고마워, 야 너 빨리 나와’
리나가 러셀의 귀를 잡아당기고 끌고 나간다.
’아! 아프다고 이마녀야!‘
러셀이 뿌리치자 재빨리 끌어안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버둥대는 러셀을 안고 케일에게 인사를 했다.
지켜보던 케일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그들은 많은 시간을 케일집에서 지냈다.
친구가 많지 않은 러셀을 챙겨주는 고마움에 음식선물을 전달하다 저녁까지 먹기 일쑤였다.
케일의 부모님은 아이들을 좋아하고 북적이는 집안분위기를 좋아했다.
금융투자가인 아버지와 어머니는 왕족의 피가 흐르는 귀족이었다.
워킹클래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러셀의 가족은 케일에게 귀감이 되었다.
특히 열심히 일해서 가족을 먹여 살리는 성실함을 높이 샀다.
러셀은 유약했지만 착한 아이였다.
리나는 똑똑하고 키도 크며 제법 성숙했다.
’ 리나야 학교에서 공부하는 게 재밌니?‘
부인의 질문에 리나는 들었던 포크를 내려놓고 고개를 저었다.
’ 부인, 너무 재미없고 의미가 없어요. 저는 집에 가서 동생도 봐야 하고
숙제도 해야 하고 너무 바빠요. 원래 인생이 이렇게 바쁜가요?‘
귀여운 질문에 부인이 미소를 지었다.
’ 리나야 너무 힘들겠군 하지만 곧 러셀도 자라고 너만의 시간이 생길 거야.
미래에 네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니?‘
’ 저는 좀 쉬고 싶어요!‘
식탁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 케일, 시간 있어?‘
’ 누나?‘
케일이 반갑게 문을 열었다.
‘며칠만 너희 창고에 지내도 될까?’
’ 창고에?‘
’ 엄마랑 싸워서 며칠만 있다 갈게’
‘그.. 그래’
리나가 창고 열쇠를 받아 들고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추울 텐데’
케일방 창문에서 창고가 보인다.
며칠새 비가 와서 바닥이 온 밭이 진흙탕이다.
부츠에 얇은 원피스에 카디건차림에 책가방하나뿐이다.
건네준 키로 창고 문을 열더니 문을 닫고 한동안 조용하다.
며칠 후엔 주말이다.
주말아침에 교회를 가는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하고 창고에 갈 생각이었다.
주말 아침 꾀병에도 교회를 빠질 수는 없었다.
오늘은 새 옷을 사는 날이라 더 빠질 수 없었다.
고급진 바지, 셔츠, 소가죽으로 된 신발까지 샀다.
새로 산 옷을 입고 거울에 비춰보고 있었다.
창너머 창고 주위에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방에서 지켜보다 기괴한 소리에 창고로 뛰어내려 갔다.
가늘게 오기 시작하는 비 비린내가 나기 시작했다.
진흙으로 더럽혀지는 신발을 신경 쓸 수 없었다.
진한 피비린내가 나고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리나는 창고 안에 없었다.
그녀의 책가방과 부츠가 피범벅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마침 놀러 온 러셀이 케일의 모습에 놀랐다.
'너희 누나 어디 있는지 알아?'
'아니? 너희 집에 없어?'
케일은 러셀과 인근 숲을 뒤지기 시작했다.
숲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을까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진흙투성이 옷과 피범벅인 손이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근처에서 진한 피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혹시 몰라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마구 휘둘렀다.
그들이 발견한 모습은 처참했다.
리나는 이미 숨이 끊어져있고 사체는 야생동물에 의해 만신창이였다.
끝까지 아이를 지키려던 리나의 품엔 아이가 울고 있었다.
‘못생긴 괴물만 남았네’
러셀은 아이의 피 묻은 얼굴을 푹 찔렀다.
누나와 너무 다른 금발의 창백하다 못해 핏줄이 보이는 찌그러진 얼굴이 기괴했다.
역겹다고 느낀 러셀은 참지 못하고 구토를 한다.
‘내가 이렇게 만들었어’
창고에 머물게 했던 케일은 죄책감에 멍해졌다.
리나의 눈을 감겨주며 그녀 품의 아이를 안아 든다.
'미안해 누나'
작게나마 숨을 쉬고 있다.
’ 그놈을 왜 데려가 ‘
뒤따라오던 러셀이 케일을 막아섰다.
’그냥 두면 죽을 거야 ‘
’ 괴물 같은 놈 죽게 내버려 두고 가자!‘
’ 너희 누나의 아이야‘
냉정한 표정으로 아이를 안고 나섰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한참을 걸어 집에 도착했고 케일을 발견한 집사가 화들짝 놀랐다.
‘숲에 한 짓은 묻지 않을 테니 고아원까지 나를 태워줘요’
어두운 표정의 집사가 운전석에 앉았다.
‘도련님’
‘일이 커지길 원하지 않아요. 그냥 빨리 가주세요’
한참을 달려 도착한 시간은 자정이 넘었고 어두운 구름에 보름달이 크게 떠있었다.
‘미안해, 널 찾으러 올게’
케일은 자신의 재킷을 감싸 고아원 앞에 아이를 내려놓았다.
그날 이후 러셀과 케일은 멀어졌다.
러셀은 그날의 트라우마로 피냄새가 나는 음식을 보면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은 엄마의 크바스였다.
엄마와 사이가 멀어지며 오직 맥주로 생명을 연장하게 된다.
‘목사 됐다고 너무 힘주지 말라고’
러셀이 케일의 손을 뿌리친다.
‘삼촌!’
이반이 케일을 반긴다.
케일이 밝은 미소로 포옹을 한다.
‘이반 너 왜 이렇게 말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