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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e Cactus Jul 19. 2024

17화 사건의 전말

히어로? 악당?




러셀이 플라스틱병을 들고 흔든다.


‘엄마 이거랑 한 병밖에 안 남았네 더 안 만들어줄 거야?‘


낯빛이 어두운 엄마는 웃음 짓는다.


‘더 만들어줄게 호밀빵 내일 사 올래?’


주머니를 뒤져 지폐를 식탁에 내려놓자 러셀이 낚아챈다.


‘남은 돈은 점심 사 먹고 호밀빵도 꼭 사 와야 한다.‘


‘당연하지 이젠 내가 엄마보다 독일어 잘한다고’


일자 앞머리에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엄마에게 소리친다.


급히 옷을 갈아입은 엄마는 도마를 꺼내 당근과 양배추를 꺼내 썰기 시작한다.


턱에 얼굴을 괴고 도마질을 하는 엄마를 바라본다.


심심했는지 무릎 위까지 오는 양말을 끌어당기며 흥얼거린다.


‘Hänschen klein ging allein in die weite Welt hinein.

Stock und Hut steht ihm gut ist gar wohlgemut.‘


’무슨 뜻이야?’


병째로 마시려는 아들의 행동에 천장에서 컵을 꺼내준다.


러셀은 받아 든 컵에 크바스를 따르며 노래를 이어나간다.


‘Aber Mutter weinet sehr, hat ja nun kein Hänschen mehr.

Wünsch dir Glück", sagt ihr Blick, „kehr nur bald zurück’


‘엄마가 많이 보고 싶어 ‘


검은 얼굴이 러셀의 눈앞에 바싹 다가온다.


화들짝 놀라 눈을 번쩍 뜬다.


식은땀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있다.


혼미한 정신이 돌아오며 귓가엔 비행기 착륙안내문이 들려온다.


옆자리 나이가 지긋한 부인이 놀라 러셀을 살핀다.


‘부인 걱정 마세요 전 괜찮답니다.’


‘아.. 네‘


‘부인, 괜찮으시면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겠어요?‘


부인이 다소 언짢아하자 러셀은 울상을 지었다.


‘제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만나러 가는데 늦은 건 아니겠죠?’


굵은 진주목걸이 사이에 크로스를 매만지며 러셀의 손을 잡았다.


‘어머 어쩌다가‘


‘저희 어머님은 의사를 하시고 봉사활동으로 아프리카에서 여생을 다 보내셨어요. 수많은 아이들을 구해내시고 병에 걸리셨죠’


‘저런‘


부인이 발밑가방에서 성경책을 꺼내 자신의 무릎에 올려놓는다.


러셀의 손을 끌어다 포개고 눈을 감는다.


‘어머님이 훌륭하신 일을 하셨네요. 분명 좋은 곳으로 가실 겁니다. 종교가 있으셨나요?‘


‘네, 독실한 크리스천이셨습니다.‘


부인이 눈을 떠 러셀을 바라봤다.


’왜 그러시죠?’


당황하는 표정의 부인이 대답 없이 러셀의 손을 거둔다.


기내 안내문이 흘러나오고 부인은 대답도 눈길도 주지 않았다.


착륙 시 느껴지던 압력이 줄어들며 비행기는 서서히 멈추었다.


‘제가 뭘 잘못했나요?‘


러셀의 싸늘한 시선에 부인은 재빨리 일어나 짐을 챙겼다.


‘아니… 아니에요 제가 빨리 나가야 해서’







‘그 노인네가 내 거짓말을 눈치챘을까?’


러셀은 운전자에게 질문을 한다.


우버 운전자는 시선을 도로에 고정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글쎄요’


왜소한 남자가 웃으며 핸드폰 속 내비게이션을 따라 차선을 변경했다.


‘난 젊은 사람들이 좋아. 노인네들은 눈치가 빨라서 싫단 말이야.‘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와이퍼가 정신없이 흔들린다.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결제는 직접결제 설정하셨는데 어떻게’


러셀은 알이 굵은 진주목걸이와 크로스 목걸이를 보여준다.


운전자는 러셀과 목걸이를 번갈아보다 한숨을 쉰다.


‘그냥 달러로 좀 주실래요?’


‘유로밖에 없어’


‘유로는 안 돼요 ‘


순간 침묵에 러셀을 올려다보던 운전자가 멈칫한다.


‘그.. 그럼 유로라도 주세요 ‘


주머니 속 아무렇게나 구겨진 지폐 몇 장을 건네고 차에서 내린다.





‘난 일하고 올게 오늘은 꼭 잔디 깎아놔 삼촌’


이반이 소파에서 자는 러셀을 깨운다.


‘어…어’


엄마의 사망으로 방문한 러셀은 수일째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머물고 있다.


게으르고 돈도 없는 삼촌을 내쫓을 수는 없으니 집안일이라도 시켜야 했다.


식기세척기에 접시를 넣거나 빨래를 돌린 후 건조기에 넣는 일을 가르쳤다.


오늘은 잔디 깎기를 시키기로 했다.


러셀은 먹고 싶었던 미국 시리얼을 우유에 가득 먹고 누워있는다.


티브이는 채널이 몇 개 없고 핸드폰도 재미가 없다.


러셀은 하는 수없이 지하의 창고로 내려가 잔디 깎기 기계를 찾는다.


먼지며 거미줄이 가득했다.


’ 찾았다’


기다란 봉에 손잡이가 보인다.


얼른 꺼내보지만 잔디 깎기 기계가 아니다.


‘금속… 탐지기?‘


집 앞에서 잡쓰레기와 동전을 몇 개 발견했다.


‘아!‘


‘엄마 안녕’


러셀은 금속탐지기를 묘지 위로 가져갔다.


삐비 삑


강렬한 소리에 러셀은 흥분해 땅을 파기 시작했다.


‘내가 엄마 이럴 줄 알았다니깐 죽을 때 같이 갖고 죽으면 어떻게 해’




‘나왔어 ‘


문 앞에 들어선 바닥은 진흙발자국에 더럽혀져 있다.


화가 나서 코로 숨을 한껏 내뱉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부엌엔 엉망이 된 바닥끝에 러셀이 서있다.


’ 너 이거 설명해라’


러셀은 샷건을 들고 이반을 맞이했다.


‘뭐? 뭐야??? 웬 총?’


‘이게 왜 우리 엄마랑 같이 묻혀있냐는 말이야‘


‘뭐? 할머니랑 같이 묻혀있었다고?‘


러셀의 행색을 보니 정말로 무덤을 파헤친 것 같았다.


하지만 확인해야 했다.


’ 삼촌 설마 할머니 묘지를 파헤쳤어?‘


‘당연하지, 우리 엄마가 나에게 남긴 마지막 재산이니깐 ‘


‘할머니는 삼촌에게 어떠한 재산도 남기지 않았어. 이 총은 할머니께 아니야 ‘


이반은 총을 찬찬히 살폈다.


뭔가 깨달은 표정의 이반, 러셀이 윽박지른다.


‘그럼 이건 네가 한 짓이야?‘


‘이건.. 내 전 여자친구 총이야’


‘너 여자친구도 있어?‘


‘지금은 헤어졌어.‘


‘왜‘


’ 할머니 장례식장 프러포즈했거든 ‘


‘미친놈 아니야. 헤어질만하네’


이반은 수심에 찬얼굴로 벽에 몸을 기댔다.


’ 너 설마 아직도 그 여자 좋아해?’


‘그걸 왜 물어봐?‘


‘가자‘


’ 어딜?’


‘네 여자친구한테’


러셀에게 끌려가 차문 앞에 섰다.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 ‘


‘이러니깐 네가 여자랑 못 사귀는 거야 빨리 시동 걸어 ‘


러셀이 뒷좌석에 총을 싣고 앞자리에 앉았다.


이반은 시동을 걸었고 한참을 달렸다.


오랜만에 오는 길이 익숙하고 평온했다.


하지만 여자가 문전박대할 것 같아  불안했다.


’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건 없어. 일단 얘기를 해봐’


말도 안 되는 러셀의 말에 괜스레 기대가 됐다.


탕!


이건 총소리다.


순간 놀란 둘의 눈이 매서워지며 차를 세운다.


몸을 낮추고 여자의 집으로 다가갔다.


창문사이로 보이는 여자는 피범벅인 얼굴로 괴로움에 울부짖고 있었다.


살집이 있는 남자


‘저 남자는‘


이반은 여자의 전남자친구를 알아봤다.


러셀이 마당 쪽으로 들어가 뒷문을 열었다.


‘니 다리를 둘 다 못쓰게 만들어줄게’


몸을 못 가누는 여자에게 총구를 가져다 댔다.


러셀은 거의 전남자친구 등 뒤에 위치해 있다.


열쇠가 있는 이반이 정문을 열고 들어가자 인기척에 전남자친구가 몸을 튼다.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방아쇠를 당겼다.


귀를 찢는 파괴음과 함께 전남자친구 몸을 통과했다.


큰 아픔에 미처 지르지 못했던 남자는 이내 동물에 가까운 비명소리를 내질렀다.


이반은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어가는 여자를 안았다.


’이.. 이반..’


‘여자를 병원에 데려다줘 ‘


러셀이 말했다.


‘이 사람을 죽이면 어떻게 해!’


이반이 울부짖었다.


‘내가 알아서 할게 걱정하지 마’


이반은 여자를 안아서 자신의 차로 데려갔다.


여자는 의식을 잃었고 차는 피범벅이 되기 시작했다.


자신의 옷을 찢어 다리를 동여맸다.


여자를 눕히고 시동을 걸었다.


가장 가까운 병원은 최소 1시간이 소요된다.


이반의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제발 죽지 마 ‘




‘?’


여자의 놀란 표정에 이반이 러셀을 소개한다.


‘우리 삼촌이야’


초췌한 얼굴의 여자가 인사를 했다.


’ 반가워요 러셀이라고 해요 ‘


쉰소리로 여자는 어렵게 인사를 한다.


‘물 좀 갖다 줄까?‘


여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반이 미소 지으며 여자의 머리에 입을 맞춘다.


이반이 병실을 떠나자 러셀이 다가온다


‘당신의 전남자친구와 샷건은 제가 잘 처리했으니 걱정 마세요’


러셀의 음흉한 웃음에 여자는 움찔한다.


’가.. 감사합니다.’


전남자친구의 생사여부나 총을 찾은 과정은 물어보지 않기로 한다.


진심을 알수록 여자는 힘들어질 것을 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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