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le Cactus Aug 02. 2024

19화 절단식

하늘의 부름


러셀은 불만의 찬 얼굴로 이반을 뒤쫓는다.

두 번째 카트를 밀고 있는 이반은 순정의 뒤를 따르고 있다.

넓은 마트를 휘저으며 각종 물품을 들었다 놨다 카트 실었다가 뺐다가 정신이 없었다.

‘우리 딸이 이걸 좋아하는데’

말을 더 잊지 못하고 냉동식품 하나를 들고 서 있는다.

이반 어깨를 잡고 머리에 입을 맞춘다.

이반을 올려다본 순정은 안쓰러운 미소를 지으며 눈을 꼭 감았다.

이에 불편한 러셀은 카트를 밀고 지나쳐갔다.

이반은 러셀을 불러 세우고 물건을 마저 담았다 한숨을 푹 쉬던 러셀은 한마디 하려다 참는다.

양속 가득한 포장지를 내려놓았다.

급히 마련한 응접실에 의자와 책상들은 엉망이다.

첫 번째로 들어온 순정은 의자를 꺼내 나란히 나열한다.

물건을 가득 들고 온 러셀은 불만 가족 가득한 표정으로 봉지를 내려놓고 나간다.

곧 따라 들어온 이반은 봉지에서 물건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몇 번을 반복했을까.

정리할 것이 없는 순정은 넋을 잃고 서 있는다.

의자를 가져온 이반은 봉지 하나를 쥐어 준다.

봉지 안에 풍선 포장지를 뜯어 바람을 넣기 시작한다.

순정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풍선을  분다.


’이게 마지막이야’

숨이 턱 끝까지 찬 러셀이  마지막 봉지를 내려놓는다.

순정은 기다렸다는 듯이  풍선을 내려놓고 봉투에서  물건들을 꺼낸다.

이반이 순정을 막아선다.

순정은 의자에 앉았다가 환자실로 향한다.

‘삼촌 여기 정리 좀’

이반이 급히 순정을 따라간다.


의식이 돌아온 여자는 힘겹게 미소를 짓는다.

이반은 휠체어를 침대 가까이 붙인다.

허리를 일으켜 세우고 다리를 손으로 옮겨 침대 가장자리로 앉는다.

이반이  도와주려고 하자 여자가 고개를  젓는다.  

위태롭게 몸은 움직이던 여자, 손이 쏙 들어와 휠체어에 앉힌다.

러셀이었다.

‘시간 없는데 빨리빨리 하자고’

이반은 러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의 말이  맞았다.





응접실은 처음에 봤던 모습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다만 순정이 쉴 수 없이 풀었던 풍선과 싸구려 크리스마스 장식이 조화를 이루었다.

중앙에는 케이크와 쿠키 냉동식품 초콜릿 등이 있었다.

’무슨 일이야?‘

이유를 알 수 없는 여자는 엄마를 바라봤다.

순정은 대답했다.

’ 절단식이야, 니 다리를 절단해야 네가 산대‘

순간 여자의 표정은 굳었다.

단 몇 초였지만 여자의 절망은 모두 느낄 수 있었다.

‘네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준비했어’

음식이 눈에 들어 올리가 없었다.

여자는 자신의 허벅지를 조용히 매만졌다.

진통제 때문에 느낄 순 없지만 뭔가 잘못된 것은 알고 있었다.

‘설마.... 다리를 절단해야 하다니’

진통제 때문인지 하루 종일 누워서 며칠을 지나서인지 정신은 더  혼미해졌다.

순정은 케이크 정중앙에 긴 초 두 개를 꼽았다.

누구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초를 부는 시늉을 하고 여자는 케이크를 들고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맛있네’

순정은 엉망이 된 얼굴을 손으로 닦아주고 꼭 안았다.

이반은 둘을 차례로 쓰다듬었다.

멀리 떨어져 있던 러셀은 과자를 하나 뜯어먹었다.

환자복을 입은 환자들과 간호사들이 응접실에 모였다.

‘잠깐만’

순정이 들어오는 사람들을 맞이했다.

바깥 음식이 흔치 않은 병원에서는 이런 파티를 좋아했다.

하지만 아무도 이것이 절단식이라는 것을 알 수 없었다.

간단한  다과회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자신이 갖고 있던 과일이나 읽던 책과 뜨개질도 가져왔다.

어느새 응접실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사람들을 응대하던 순정은  눈물 날 새 없이 바빠졌다.

러셀은 재킷에서 꺼낸 힙플라스크를 열어 과일 펀치에 넣기 시작했다.

내용물을 비워내자 이반이 여자에게 줄 펀치를 가지러 온다.

컵을 받아 든 여자는 빠르게 컵을 비운다.

의외로 잘 마시는 여자를 위해 과일 펀치 쪽으로 다시 간다.

웬일인지 긴 줄이 이반을 기다리고 있었다.

‘절단식  축하해’

여자의 시선이 옆으로 갔다.

‘ 내가 줄 건 없고  좋은 소식을 하나 가르쳐 줄게’

러셀을 올려다봤다.

‘니 전 남자 친구말이야.’

여자의 눈이 커지며 속이 울렁거렸다.

‘아직 살아있어'

러셀의 말에 여자는 헛구역질이 났다.

사람들 사이에 있던 순정은 재빨리 봉지를 집었다.

얼른 봉지를 열어 쉴 새 없이 구토를 했다.

‘무리하면 안 되겠다 돌아가자.’

순정은  휠체어를 끌고 응접실을 떠났다.

러셀은 눈알을 굴리며 컵에 남은 펀치를 마저 마셨다.

손에 들고 있던 펀치를 내려놓고 이반은 순정을 따라간다.





수술실 앞 의자에서 꾸벅꾸벅 졸던 순정이 삐끗한다.

좌석이 없어 뒤늦게 병원을 찾은 카이는 그녀의 손을 꼭 잡는다.

하지만 10시간이 넘는 대수술은 모두를 지치게 만들었다.

땀범벅의 의사가 마스크만 겨우 벗고 대기실로 들어온다.

순정이 돌진하자 의사가 진정시킨다.

‘따님은 무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다리는?’

‘저희 예상보다 괴사가 덜 진행되어 살릴 수 있었습니다.’

‘정말요?’

‘기다리지 않고 일찍 열어본 게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참았던 눈물이 앞을 가리는 순정은 주저앉아버린다.

다가가지 못하고 듣고 있던 이반이 안도의 표정을 짓는다.

러셀은 웃으며 사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

순간 자신을 압도하는 덩치의 남성이 순정에게 다가갔다.

남자는 인자한 미소로 순정을 일으켜 세웠다.

'우리 교회의 목사님이야'

카이가 소개를 한다.
깔끔한 정장에 황소같이 커다란 몸이 어울리 않았다.

‘케일입니다. 제 기도가 이곳에 닿았길 바랍니다.’

순정은 두 손으로 메이슨을 잡았다가 꼭 안고 울기시작했다.

사과를 먹던 러셀이 케일을 자세히보다 화들짝 놀라 자리를 피한다.

‘러셀, 오랜만이야’

천천히 뒤를 돌아서자 케일이 웃으며 악수를 청한다.

'실실 대지 마'

미소를 살짝 거둔 케일이 러셀의 어깨를 두들긴다.

'병원이야. 힘 빼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