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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e Cactus Jul 12. 2024

16화 피멍 든 얼굴

삼촌의 등장


다리의 부상으로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어가는 여자를 이반이 부추긴다.

샷건을 들고 있는 남자는 이반이 아니다.

’ 누구?‘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 이반을 바라본다.

’ 내 삼촌이야‘

이반의 키가 무색하게 육중한 몸의 중년이 서있었다.



러셀, 여느 러시아 남자아이처럼 나뭇가지처럼 말랐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커다란 눈을 치켜뜨면 무엇이든 얻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독일에서 이민자의 아이로 크는 것은 쉽지 않았다.


현지의 아이들은 문제가 아니었다.


러셀을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아이들은 난민의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몸집이 한참 작은 아이들이 여럿이 몰려다니며 러셀을 발로 차고 머리를 밀어댔다.


참지 못한 러셀은 맞서 싸웠지만 역부족이었다.


간간히 얼굴의 피멍이 물들어올 때가 있었다.


어머니는 사진첩을 꺼내와 러셀을 앉혔다.


‘너희 할아버지는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셨어. 우리 가족은 영웅의 피가 흐르고 있지 ‘

흑백의 사진 속 건장한 남자는 이를 반짝이며 웃고 있었다.


러셀의 눈빛이 조금 반짝거렸다.


‘맞지만 말고 정식으로 배워서 싸우는 게 어떠니?‘

러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운동을 시작한 러셀은 훈련 외엔 잠을 자거나 먹기만 했다.


음식을 먹어대는 속도에 엄마는 진을 뺐다.


혼자서 식빵 한 팩을 잼에 발라먹고 우유는 2리터에 고기도 매 끼니 빼놓지 않고 먹었다.


그 결과 전봇대 같던 몸은 20cm가 크고 몸무게는 30kg이 늘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돌아온 교실에선 비명이 쏟아졌다.


’ 어떻게 한 거야?’


아는 척도 안 하던 아이들이 러셀의 이름을 부르며 질문공세를 퍼부었다.


소문은 교사사이에도 퍼지기 시작했다.


교실로 찾아온 체육선생님이 러셀을 불러냈다.


‘미식축구해 볼래? 덩치가 딱 좋아 ‘


고민을 할 것이 없었다.


예비선수로 트레이닝을 하며 대학진학을 준비했다.


훈련은 만만치 않았고 파티를 다니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트레이닝 중 부상을 입었지만 파티는 계속 됐다.


부상이 치유되기도 전에 술만 마시니 후유증이 심각했다.


술독에 빠진 러셀의 대학진학은 무산되었다.


부모님과 선생님은 그를 포기했다.


그의 옆에서 힘이 되어주었던 친구들도 대학에 진학하거나 유학을 가며 흩어졌다.


홀로 남은 러셀은 친구들을 탓하며 술을 마셨다.


’Bishops’ 바에서 바텐더를 마주 보는 첫 번째 자리가 러셀의 자리이다.


그는 문 열 때 들어와서 문 닫을 때까지 머물렀다


그렇게 독일의 어두인 겨울이 내려앉은 어느 날


심한 곱슬머리에 뿔테를 쓴 여자가 러셀에게 다가갔다.


술이 한껏 취한 러셀은 포옹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해바라기 원피스가 예쁘다는 말에 머리 매만졌다.


바에서 자주 만나며 사귀던 둘은 멀지 않은 곳에 집을 계약하며 동거를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나고 여자친구는 임신을 했고 러셀은 낙태를 원했다.


여자는 러셀을 떠났다. 낙태종용이 아니더라도 떠날 이유가 많았다.


간간히 파트타임 일을 하는 것 외엔 돈 버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며칠씩 집에 안 들어오는 러셀을 찾으러 바에 가면 피멍 든 러셀을 소파에 있었다.


술값내고 집에 데려오면 똑같은 짓을 일주일 내내 했다.


아이가 생기면 바뀔 거라는 여자의 기대는 무너졌고 포기하기로 한다.


러셀의 인생은 40대 중반까지 변하지 않았다.


여자친구는 물론 남자친구도 사귀었다.


인종은 다양했다. 러시아인, 흑인, 백인, 남미인, 아시아인등 다양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와 오래 지내지 않았다. 아니 지낼 수 없었다.


누구도 위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그는 결국 그들이 제 발로 떠나게 만들었다.


이제는 동네에 소문이 날 때로 나서 아무도 러셀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제 막 술을 마시기시작한 어린애들을 제외하곤 말이다.


아무도 자신을 상대해주지 않자 어린 티를 이제 벗은 아이들에게 접근해 술을 사주며 호감을 샀다.


기초수급을 받으며 사는 러셀은 허름해 보였지만 비건을 지지한다며  환한 미소를 보이면 누구든 빠져들었다.


중저음의 목소리로 농담을 할 때면 같이 스포츠를 보던 남자들도 그의 집에 쫓아가곤 했다.


러셀의 원하면 누구든 사귀고 같이 살 수 있었다.


나이가 어리다고 안된 적은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 임신인가 봐 ‘ 후드티에 긴 머리를 한 여자가 말한다.


‘피임을 안 한 거야?’


러셀은 놀라서 여자를 어깨를 잡으며 얼굴을 본다.


17살이 된 여자는 그 전의 여자처럼 조용히 그를 떠나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 삼촌, 오빠, 친구들이 그의 집에 들이닥쳤다.


며칠 째 피멍이 든 얼굴로 일어난 러셀이다.


소녀의 노트북을 사진 찍고 페이스북을 연다.


‘09.04.xxxx 사랑하는 안젤라‘

러셀은 잠시 굳는다.

마켓탭을 눌러 노트북사진을 올린다.

집안을 둘러보다 페트병과 캔을 모으기 시작한다.

’ 띵똥‘

구매메시지가 울린다.


백팩을 어깨에 메고 안내를 기다린다.

’ 여기 있습니다 ‘

인쇄되는 비행기티켓을 여권에 끼워 넣는다.

’ 미국아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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