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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 courage Dec 19. 2023

우리 아버지

내가 알고 있는 한 아버지는 타인에 의해 한 번도 정확히 읽혀지지 않은 텍스트였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모독이었고 또한 아버지의 불행이었다.
               『모순』 양귀자, 쓰다

 어릴 적 아버지는 절대권력을 가진 황제였다. 엄마는 끼니 때마다 아버지 입맛에 맞춰 상을 차렸다. 돈까스나 소세지를 먹고 싶을 나이에 대구탕이나 버섯전골을 먹어야 했고 안 먹으면 벼락같은 호통이 날아왔다. 시험에서 1등을 놓친 날에는 아버지의 한숨과 "나한테서 어떻게 저런게 나왔지."하는 혼잣말이 두려워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동네를 빙빙 돌곤 했다.

'왜 아버진 항상 제일 잘해야 하고 이겨야 할까?' 어려서는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이가 들어 어릴 적 아버지와 같은 나이가 되자 아버지 안에 있는 상처받은 아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쩌면 조금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할머니는 아버지를 낳다가 산고로 돌아가셨다. 날 때부터 엄마가 없었던 아버지는 계모 밑에서 의붓동생들과 자라야 했다. 왠만큼 잘해서는 살아남기 어려웠고 늘 최고로 잘해야 그나마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살아온 아버지에게 나의 환경은 너무 훌륭했고 이 상황에서도 최고가 되지 못하는 나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몇 달 지났을 때였다. 아이가 할아버지께 안부전화를 했다. 아버지 목소리가 들리자 신이 나서 재잘재잘 한참을 통화하고 끊기 전 인사를 건네자 아버지가 큰소리로 얘기했다. "우리 손녀, 일등해라!"
어리둥절한 아이를 보다 전화를 바꿔 "아부지, 이제 초등학교는 시험도 없어요."라고 말했지만 아버진 더 큰소리로 "그래도 일등해라."고 한다.

이젠 그냥 좀 재미있고 웃겼다.
'역시 우리 아부지 일등 사랑은 여전하네.'

아이에겐 "할아버지가 학교에서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신거야."라고 통역해줬다.

여전히 고집불통 아버지이지만 어쩐지 좀 사랑스러워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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