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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체유심조 Feb 08. 2024

우리마을 뒷산 산행기

  오랜만에 주먹밥을 만들었다. 겨울철 산행에서 빠질 수 없는 컵라면도 꼭 챙겨야하는 필수 식품이다. 마을 뒷산을 오르는 일이라 될 수 있으면 배낭을 가볍게 보온물통에 뜨거운 물로 마무리 한다.    

 

  이웃사촌이 때로는 피를 나눈 형제보다는 낫다는 말이 있다. 요즘 산골생활을 하면서 절실하게 와 닿는 말이다. 몇 달 전부터 벼르던 마을 뒷산 산행을 하기로 의기투합하고 지난 토요일로 날을 잡았다. 목적지인 마근담봉과 감투봉은 해발 900m가 넘는 오르기 쉽지 않은 코스다. 코스는 마근담봉을 먼저 오르고 척추처럼 길게 뻗어있는 능선을따라 걸으면 감투봉에 도착이 된다고 한다. 총 4시간을 예상하고 마을에서 여섯사람이 모여 출발을 했다. 해발 500m고지인 마을에서 출발을 하게 되니 높이에 비해 힘이 많이 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모두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을 했다.      

  먼저 2대의 차를 가지고 한 대는 출발지에 두고 또 한 대는 도착점에 차를 세워놓고 산을 올랐다. 등산로 입구는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곳이라 처음 오는 사람들은 조금 난감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한 사람이 다녀온 적이 있어서 등산로가 닦여져 있지 않아도 산길을 오르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겨울 산이라 쌓인 낙엽으로 산길을 오르기에는 난감한 일이 더러 있었다. 쌓인 낙엽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기도 하고 무심코 디딘 땅에 얼음이 깨지면서 발이 빠지기도 했다. 알려진 산행코스가 아니라 그런지 사람들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자연이 살아있는 산속이라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닌 등산로는 산을 오르내리기에는 편할지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면서 오르내려야하는 불편함이 있어도 발밑에 닿는 흙의 부드러움을 온몸으로 느끼며 걷는 걸음은 오히려 가벼워좋다. 문득 우리집 화단에 포슬포슬한 흙을 갖다 뿌려놓으면 화초들이 얼마나 좋아할까하는 생각에 쓴웃음을 흘려보낸다. 다들 조심조심 노래를 부르며 올라가기를 40분쯤 지나니 마근담봉에 닿았다. 기쁨도 잠시 나무에 조그맣게 걸려있는 ‘마근담봉 926m’표지판에 급 실망했다. 작은 표지석이 딱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쉬움을 뒤로하고 무사히 올라온 것에 감사하며 인증샷을 찍고 감투봉을 향해 능선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능선을 따라 걷다보니 우뚝 솟은 지리산 천왕봉이 눈앞에 쫙 펼쳐진다. 천왕봉 앞으로 능선과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진 한폭의 멋진 그림이었다. 산으로 겹겹이 둘러쌓인 우리 마을이 어미닭이 알을 품고 있는 듯 포근하고 따스한 모습이었다. 이런 곳에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들뜬 마음으로 능선을 따라 걷고 또 걷다보니 누군가가 따고 남긴 듯한 영지버섯이 눈에 띄였다. 내가 “심봤다”며 좋아하니 옆에 있던 이웃분이 웃으면서 작지만 “집에 가지고 가서 말리라”며 떼 주었다. 혹시라도 흘릴까봐 비닐에 고이 넣어 배낭에 집어넣었다.

  감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꽤나 길었다. 가는 길에 각자 준비해온 점심과 먹을거리로 배를 채운 후 도착 한 감투봉은 더욱 실망스러웠다. 누군가가 벽돌에 나뭇가지로 긁어서 쓴 듯한 ‘감투봉 768m’는 표식이 겨우 눈에 들어왔다. 그것도 눈을 씻고 찾아야 겨우 식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 중 한 사람이 “산청군에 표지석 만들어달라고 민원 넣자”라는 말에 다들 박수를 치며 인증샷이라도 남기자며 웃으며 내려왔다.  

두 번째 목적지인 감투봉을 보고 하산하는 길이 생각보다 급경사였다. 등산에서 가장 힘든 것이 하산길인데 경사가 급하고 쌓인 낙엽 때문에 미끄러지듯 겨우 내려왔다. 다행히 하산길이 길지가 않아 무리없이 차를 세워놓았던 곳에 도착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예상했던 4시간의 산행시간이었다. 

매달 한 달에 한 번 산행하기로 한 후 해단식을 했다. 집으로 내려오는 내내 다리는 후들거렸지만 마음은 따뜻하고 즐거웠다. 귀촌한 후 큰 숙제였던 뒷산 오르기를 해결했다는 후련함과 멋진 산이 어우러진 우리 마을의 모습에 가슴이 벅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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