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무식하고 싶다
나는 한 자산운용사에서 약 1년 2개월여 동안 근무 후 권고퇴직으로 27살의 나이에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내가 있던 부서는 대체투자 중 부동산 투자 팀으로 금융에서 근무 부서를 나누는 기준인 프론트-미들-백 중 프론트였고, 회사는 설립된 지 3년도 되지 않은 신생회사였다. 면접을 보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전혀 관련이 없는 과 출신인데 왜 이쪽으로 오고 싶어요?"였고, 자산운용사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하자 친구들 또한 "너가?왜?"라며 되물었다. 회사에 들어가서도 소위 말하는 업계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한 것은 어떻게 아무 관련 경험 없이 자산운용사 프론트를 커리어 첫 시작으로 끊을 수 있었는지였고, 그 속에는 아주 약간의 질투와 시기도 들어있었던 것 같다.
그만큼 난 아무것도 몰랐다. 자산운용사는 말 그대로 자산운용의 총체적인 책임을 지는 곳이니만큼 보통 부동산 운용의 세부분야를 담당하는 부서나 회사에서 일을 배운 후 오는 것이 조금은 더 일반적인 커리어이고,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금융계 첫 커리어를 자산운용사 프론트로 시작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는 일련의 사실들 말이다. 만약 내가 부동산 커리어 단톡방에 들어가서 흐름을 알게 되었다거나 여러 사람의 말을 들었다면 조금 더 현실에 순응하여 다양한 분야의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당시 듣고 있던 커리어 관련 수업의 멘토님 단 한 사람의 말만 들었고, 취직에 간절했지 금융계에 뜻이 있던 사람도 아니었다.
그래서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멘토님께 배운 것이 부동산이고 멘토님이 자산운용사 현직 팀장님이셨으니 나도 자산운용사에 가겠다고 생각했고, 원래 오고 싶었던 업계도 아니니 그 중에 제일 멋있어 보이는 프론트가 아니면 굳이 올 필요가 없다는 일종의 반항심도 작용했다. 그래, 난 원래 배우가 되고 싶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슴 속에 품고만 사는 어떤 것들에는 별별 변명 또는 합리적인 이유 사이의 어떤 것이 껌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나는 배우가 되기로 선택했을 때 가정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배우가 못될 거라면 차라리 아예 정반대의 직업을 가져보기로 했다. 예술 분야 어딘가의 언저리에서 일한다면 닿지 못한 꿈이 계속 아른거릴 것만 같았다. 가장 착취하기 좋은 사람이 한 가지에 너무 간절한 사람이라던데, 반대로 그 한 가지 외에는 다 무심해질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너무 감성에만 치우친 불균형적인 사람이 된 것 같고, 이러다가 자기 연민의 구렁텅이에 빠질 것 같고, 누구나 돈을 벌었던 코로나 시기에 돈을 벌지 못한 한 사람으로서 인생을 재정적으로 꾸려나갈 수도 있어야겠다는 필요성도 느끼게 되면서 겸사겸사 나는 커리어 관련 수업을 약 2개월 동안 듣고 또 2개월 간 이력서를 자산운용사에만 뿌린 후에 한 곳의 투자 팀에 입사하게 되었다.
때로는 내가 여러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었던 건지, 어려울 거라는 말을 들어서 사실은 이미 포기로 저울이 기운 내 마음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었던 건지 모를 때가 있다. 배우 외에 안될 거라고 생각한 직업은 없었다. 필요 이상의 사람들에게 물어보거나 불안할 필요 또한 없었다. 배우라는 직업에도 그렇게 무식하게 돌진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되지 않았다. 그 무식함의 위대한 힘을 빌려 관련 지식 하나 없던 나는 자산운용사에 취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