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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언덕길

by 캐서린의 뜰


서울역 근처에 볼 일이 있어 다녀왔다. 수십 개의 철로가 놓여있는 역사 안은 떠나가고 되돌아오는 사람의 열기로 훈훈하다.


대학시절 금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서울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출발하면 꼬박 세 시간 반이 걸려 고향에 도착했는데 이제는 ktx를 타면 두 시간이면 도착하는 풍요 속에 살고 있다. 경부선이 서울역을 중심으로 정차하다 보니 전라, 호남선을 이용하는 나는 서울역에 올 일이 없었다. 그 사이 서울역은 출구가 15번이 넘는,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이라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거대한 역사로 탈바꿈해 있었다.


일행과 헤어지고 서울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모교 캠퍼스까지 걸어가 보았다. 한낮인데도 내부가 컴컴한 인쇄소, 먼지가 내려앉은 도색된 트로피와 한자로 각인된 명패들이 뿌연 유리창 안으로 진열되었던 도장가게, 빛바랜 선팅지가 붙어있던 식당, 녹슨 쇠붙이들이 인도 밖으로 나와있던 철물점등이 뜨문뜨문 있던 곳이었는데. 삭막한 도심의 뒷길 같던 느낌은 온 데 간 데 없고 보도블록은 깨끗하게 정비되어 환한 느낌을 주었다. 그 시절 바람이 적당해 더 걷고 싶은 날이면 혼자 서울역까지 무작정 걷곤 했다. 그러나 서울역까지 가는 그 길은 오후 서너 시에도 한 번씩 뒤를 돌아보며 걸음을 재촉하던 곳이기도 했다. 특히 그 짧은 굴다리 밑은.


패닉의 달팽이란 노랫말을 속으로 읊조리며 서울역에서 광역 버스를 타고 다시 마을버스를 갈아타고 어둑어둑 해 질 무렵 집에 도착하면 오후의 차가운 그늘이 자취방에 가득 메워져 있었고 퇴근하는 언니를 기다리다 깜박 졸곤 했었지. 싸늘한 냉기가 도는 방에 웅크리고 잠이 들었지만 꿈이 있었고 그 꿈에 기필코 닿을거라 믿던 시절이었다.


모처럼 오랜만에 대학 캠퍼스로 향하는 언덕길을 오르려는데 언덕 초입부터 밀려오는 울컥한 감정들로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낯선 간판이 주는 어색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덕길을 내려오는 초가을의 햇살 같은 대학생들의 환한 모습 때문만도 아니었다. 끓어오르던 무언가를 간신히 삼키고 언덕길을 걸어 올라갔다. 그 시절 매일같이 오르내리던 언덕 중턱에 자리하던 좁은 입구의 책방은 사라진 지 오래고, 두꺼운 전공 서적과 사전을 들고서 가쁜 호흡으로 그 푸른 언덕을 오르던 내가 아득하기만 하다. 초저녁 어스름이 일찍 내려앉은 언덕길을 내려 하교하는 길에는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꼼지락대며 로즈버드 카페모카 한 잔을 사 마실까, 이삭 토스트를 하나 사 먹을까 고심하던 날이 때론 있었고, 저 멀리 앞산에서 보라, 초록, 자줏빛으로 어둠을 밝혀주는 남산 타워의 불빛을 보며 허기짐을 안고 그저 터덜터덜 언덕을 내려오던 날이 더 많았다. 금남의 구역같은 교정 안을 들어오지 못하고 교문 앞에 서 있기 위해 폭 좁은 인도를 쑥스러운 듯 꽃다발을 들고 거슬러 올라가는, 나를 스치는 또래의 남학생은 나와는 무관한 행인이었고 그럴 때면 지금쯤 어느 대학 도서관에서 열심히 책을 보고 있을 나의 그를 상상하며 언덕길을 내려오는 일은 실없는 위안이기도 했다.


그때 꾸었던 꿈을 굳이 떠올리지 않은 채 이십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포기한 선택지, 영영 알 수 없을 또 다른 길을 이제와 더듬어 보는 것은 부질없음에도 그 푸르른 언덕을 오르다 보니 돌이켜 보게 되는 상념들 앞에서 쓴웃음을 짓고 마는 나.


삶은 숱한 선택의 기로 앞에 내가 고른 선택의 총합으로 점점이 채워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후회하는 대신 크고 작은 선택으로 다져온 이 길을 앞으로도 호기심과 설렘을 갖고 걸어 나가보는 수밖에. 각각의 선택에 따른 행복의 농도차는 있겠지만 수묵담채화 같은 맑은 농담으로 남은 길이 채워질 수만 있다면…이라고 고른 숨을 내쉬며 올랐던 언덕을 느릿느릿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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