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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이 멈춰진 곳에서

by 캐서린의 뜰


한 삼사 년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인 채 운전을 하다 이제는 운전대를 잡지 않는다. 앞으로 운전할 일은 없겠지만 혹 이 차의 차주가 된다면 도로 위에서 내 척추를 곧추 세우게 하고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게 만드는 그 모든 두려움과 미숙함을 극복하고 다시 운전석에 앉을 용기를 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미니 쿠퍼를 소유한다면 말이다.

해 질 무렵 산책 길에 나서는데 아파트 주차장에 이 자동차가 인도 옆에 일렬 주차되어 있었다. 카키와 그레이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그 색깔마저 멋지네 하고 찬탄하며 지나가다 인도 안쪽 화단에 늦은 오후의 누런 햇살을 받으며 산들거리는 산국을 보았다. 빛바랜 그 노란 꽃이 작고 어여뻐서 걸음을 멈추고 사진첩에 담았다.

산책을 마치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와 어둑해진 인도 위를 걸었다. 그때였다. 어떤 차 한 대가 화단을 향해 후방 주차를 하려고 불빛을 비추었다. 눈부신 차의 불빛은 마침 아까 보았던 산국을 어둠속에서 비추었고, 산국의 그림자는 다름 아닌 그 미니쿠퍼 위에 그림자극의 배경처럼 아련하게 번져있는 게 아닌가.

아, 짧은 외마디 감탄사와 함께 운전도 못하면서, 다달이 차량 유지비와 보험료도 낼 수 없으면서도 저 차는 그리도 탐이 나더라.


하루는 초등학교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길게 옐로 카펫이 깔리더니

다음 날은 이차로의 중앙선이 한 겹 덧 칠해져 있다.

지켜져야 하는 것들은 노랑이다. 낭랑한 그 이름처럼.

중앙선, 어린이 보호구역의 횡단보도, 학생 탑승 차량

그리고 해를 거듭할수록 바래지는 그리움까지도.

그리움도 노랗게 물들다 떨구어 버리는 은행잎 그 정도에 머물면 좋겠다.

시뻘겋게 타들어가는 단풍잎은 너무 서럽다.


택배 상자에 붙어 우리 집 현관까지 들어온 은행잎 하나

문지방을 넘듯 그렇게 계절은 가을에서 겨울로 소리 없이 넘어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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