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오래 머무는 곳은 일찌감치 누레지고 붉어지더니 밤사이 바닥에 쌓인 낙엽이 수북하다. 베란다에 서면 놀이터 둘레의 나뭇잎에 가려 등교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사라지곤 했던 게 지난주였는데. 길 모퉁이까지 두 손 잡고 걸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한 걸음도 놓치지 않게 되었다.
그 길 언저리, 경비아저씨의 정갈한 비질 소리가 퍽 듣기 좋은데 그 앞을 지나가면 조금 죄스러운 계절이 도래했다.
손끝에 온 한기가 모여 자꾸만 한 손으로 다른 한 손을 주무르게 된다. 친구가 선물해 준 국화차를 우려내본다. 차가워진 두 손으로 컵을 감싸 안는다. 투명한 컵에 누렇게 번져가는 찻색이 거실을 한 바닥 파고드는 열 시의 가을볕처럼 포근하다.
지지난 주말 고향에 다녀왔다. 캐리어 가득 그곳의 가을을 담아왔다. 연한 흙색의 생강에서 주황의 단감, 갈색의 대추, 대추의 붉은 갈색보다 더 짙어진 고동색의 밤까지 가을 웜톤의 그라데이션을, 깊어가는 계절의 풍요로움을 두 눈으로 마주하는 일 년 중 지금이 참 좋다. 내가 농사지어 수확한 것들이 아닌데도 때가 되면 자연이 우리에게 넉넉히 내어주는 이 계절의 결실은 나를 숙연케 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대가 없이 무언가를 내어 줄 수 있는 존재인가. 하교한 아이에게 삶아놓은 밤껍데기를 까서 실한 한 알을 그저 아이 입에 넣어줄 뿐.
아이들이 아빠와 함께 놀이공원에 간 주말, 나는 평일보다 더 긴 고요한 시간을 누린다. 며칠째 진도가 나가지 않던 소설의 마지막 장을 겨우 넘기며 시월의 달력을 넘겼다. 가을과 겨울의 교차로 같은 십일월, 이맘때 나는 벽돌색으로 온통 물들어버린 메타세콰이어 우듬지에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스산한 계절의 공허 앞에 한 번씩 무너져 내리곤 했다. 어느 해엔가 아버지는 내게 아등바등 살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진작 좀 일러주시지.
차가워진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어본다. 공허한 공기를.
십일월에는 나뭇가지에 지어진 새둥지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여름 내내 무성했던 잎을 솨르르 떨궈낸 나무 가지 끝에 위태로워 보이지만 견고히 지어진 둥지들. 지붕이 사라진 집에서 새들은 어떻게 추운 겨울을 나나 문득 궁금해졌다.
저녁 상을 물리고 겉옷의 지퍼를 목 끝까지 올리고 산책길에 나선다. 구름도 서쪽 하늘을 향해 합장하는 시간, 땅거미 소리 없이 내려앉은 지상의 실루엣 위로 감빛 광휘가 잠시 포개어지면 철로 위 육교를 지나던 걸음을 멈추고 잠시 나는 우두커니 서 있는다. 믿지 않는다 해서 기도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 용문행 지하철이 저 멀리 붉은 등을 비추며 경적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