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맞이한 수많은 봄 중에,
이렇게 향기로운 봄이 있었던가 싶다.
온 세상이 라일락 향으로 가득했던 봄이었다.
그해 여름 방학에는 비가 참 많이 내렸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분명 밥을 먹으러 갈 때는 날씨가 좋았기에 우산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 속으로 저번 정월대보름 때 잔뜩 물을 마신 나를 원망했다. 달리 방법이 없으니 나는, 얼른 뛰어가자고 말하며 풀린 신발끈을 묶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옆에서 그 아이가 가방을 뒤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쓰고 가자!!"
고개를 천천히 들었더니, 그 아이가 우산을 쓰고 나에게 살짝 미소 지으며 서 있었다.
그 아이는 얼른 들어오라는 듯이 내 앞쪽으로 우산을 기울였다. 처음 느껴보는 내 몸을 감싸는 정체 모를 소름에 순간 숨이 쉬어지지 않아 잠시 주춤했다. 그러다 퍼뜩 그 아이의 가방이 젖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우산 속으로 들어갔다.
픽사베이 비가 거세게 내리며 이는 바람에 비냄새와 섞여 느껴지는 그 아이의 향이 실려 나를 스쳐 지나갔다.
옷에 밴 아까 먹은 라면 냄새 끝에 난 그 묵직하면서도 설렜던 향.
솔직히 아직까지 그 향의 정체가 스킨인지, 향수인지, 섬유유연제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맡은 향 때문에 내 심장이 엄청 뛰었던 것은 확실히 기억한다. 꼭 붙은 팔을 타고 미친 듯이 뛰던 나의 심장 박동이 그 아이에게 전해질까 봐 안절부절못할 정도로 쿵쾅거렸으니까.
'나, 얘를 좋아했던 거구나, 라일락이 아니라..'
나는 그 아이의 노란 우산 안에서 비로소 깨달았다.
처음 그가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그 노란 우산 안에서 말이다.
픽사베이 한동안은 그 아이만 보면 떨리는 심장을 들키지 않기 위해, 그저 친구들과 떠들다가 간간이 마주치는 눈 맞춤으로 만족해야 했다. 항상 그 아이보다 빠르게 싸던 가방도 최대한 느리게 느리게 쌌다.
마음의 준비가 된 날에는 얼른 그 아이를 붙잡아서 같이 가고,
마음이 진정이 안 된 날에는 한참 뒤에 나와 원래 가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빙 돌아 혼자 집으로 갔다.
혼자 빙 돌아가는 날이 더 많던 여름이 지나고,
같이 가는 날이 더 많아지던 가을이 지나고,
더 이상 그 아이와 같이 가는 날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