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원서를 쓰던 중, 중학교 시절의 끄적이던 아이디어 노트를 발견했다. 한 장씩 찬찬히 읽어보다가 , 한 페이지에서 멈추었다. 그 페이지에는<러브 액츄얼리>를 첫 관람하고 쓴 메모가 적혀있었다.
'공항에서 일하고 싶다. 공항이 사람들이 사랑을 확인하는 로맨틱한 곳일 줄이야!'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에서 왜 공항 이야기를 적었나 의아해서 다시 영화를 찾아봤다. 맨 처음과 맨 마지막 장면 모두 사람들이 공항에서 포옹을 하며 기쁨의 재회를 하는 장면이었다.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감동을 받은 그때의 내가 참 어이가 없다가도 새삼 귀여웠다. 그래서 한 번쯤은 기꺼이 그 꿈을 이뤄주고 싶어졌다. 바로 항공경영과에 지원서를 썼다.
주변의 우려에 흔들리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저 낭만으로 한 선택이 올바른지에 대한 의구심이 계속 피어올랐으니까. 그래도 나의 선택을 번복하기 싫었기 때문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대학 이야기를 주변에 하지 않기로 했다.
대학교 생활을 하다 보니 나의 선택이 참으로 뿌듯했다. 항공경영과는 항공서비스 관련 수업뿐만 아니라 공항, 안보, 물류 등 광범위하게 공부를 할 수 있다.
그래서 공항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이룰 수 있는, 출입국 관리직 공무원에 대해 알게 되었다.
“스페인어 하고 싶다고? 영어도 못하면서 무슨.”이란 말에 조용히 마음을 접었던 스페인어 공부도 시작했다. 언어가 중요한 학과이기 때문에 영어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도 하는 것이 좋다고 정당화하면서 말이다.
전공 필수 학점을 다 채운 덕분에 다른 학과의 수업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프로그래밍 수업을 들었다. 직장 다니는 친구들은 학원에서 배우는 반면, 나는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그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만약 내가 "나잇값"이란 말에 얽매여 다른 과에 진학했더라면, 이렇게 즐거웠을까?
"나잇값"이라는 건,
어떤 면에선 중요하지만 어떤 면에선 중요하지 않는 것 같다.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감, 상대방에 대한 예의, 준법정신, 인내심, 도덕력 등등.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태도를 지키는 것을 "나잇값"이라 한다면, 그건 꼭 지켜야 하는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누가 정했는지 모르는 그 나이대에만 해야 하는 하는 것을 "나잇값"라고 한다면, 그건 굳이 지킬 필요는 중요하지 않는 것이다.
꿈, 로망, 사랑 등등 하고 싶은 것이 뒤늦게 생겼는데 나이가 많다고 그저 헛된 생각이라며 포기하기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