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은 참으로 신기한 지역이다.
다른 지역에만 가면 가슴에 돌덩이를 얹은 듯이 무거운 숨을 쉬는 내가, 인천에 들어서기만 하면 신기하게도 숨이 가벼워진다. 귀신같이 인천에 왔음을 알아차리고 가벼운 숨을 쉰다.
그런데 20대 초반 친구들과 기차 여행을 할 때였다. 마지막 일정으로 도착한 통영에서 인천에 온 듯한 가벼운 숨을 내쉬는 나를 발견했다. 그때 얼마나 당혹스러웠는지 모른다. 그 이유를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 꼭 통영에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통영으로 가는 날이 되었다.
통영으로 가기 전 마지막,
알람 없이 아침을 맞이하였다. 저번엔 오전 5시 30분에 깨었지만 이번엔 6시에 깨어졌다.
아쉽지만 '아침을 먹지 않고 아침잠을 자겠다'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한 채 대구를 떠나게 되었다.
호텔방에서 보이는 풍경통영으로 가기 전, 마지막 식사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비빔냉면을 먹기로 한다.
비빔냉면은 언제나 맛있기 때문에 마지막 식사로 완벽한 선택이었다.
삼락원그리고 후식으로는 크루아상을 먹으러 갔다.
나의 몸뚱이를 보면 냉면 한 그릇과 크루아상 1개는 무슨 5개도 거뜬하게 먹을 것처럼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몸에 비해 먹는 양이 적다. 크루아상이 너무 맛있었는데, 배가 부른 관계로 반쪽 밖에 먹지 못하였다. 아쉬운 마음에 통영으로 가는 길 내내 남긴 반쪽 크루아상이 계속 떠올랐다.
통영으로 가는 길 생긴 비상 상황
버스 창가 자리에 앉아 마지막으로 대구의 무더운 날을 눈에 담아본다. 그 풍경은 '무계획으로 와서 이 정도면 알차게 즐겼다'라는 뿌듯한 자평과 함께 마음 가장 따뜻한 곳에 넣어둔다.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배터리 30%'
이럴 때를 대비해서 동생에게 강탈해 온 보조배터리를 연결해 두고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한다. 대구 서부 정류장에서 통영종합버스터미널까진 2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통영 가는 길에 핸드폰 화면보다 바깥 풍경을 더 많이 보고 싶었다. 노래를 고르기 위해 핸드폰 화면을 켜는 횟수조차 줄이기 위해 고심해서 노래들의 순서까지 배치해 만든 3시간짜리 플레이 리스트다.
1시간 정도 지났을 때였다. 핸드폰 알림이 또 울린다.
'배터리 15프로'
....?
나는 지금 보조 배터리로 충전을 하고 있는.....ㄷ.. 데....??
미쳤다. 보조배터리가 충전이 안되어 있던 것이다.
이 와중에 예약한 통영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 언제쯤 도착할 거 같냐는 메시지가 왔다.
15프로로 남은 1시간 40분을 버티고,
통영 게스트하우스까지 무사히 도착해야 한다.
얼른 음악을 끄고, 초절전모드로 설정했다.
고요함 속의 불안함은 나를 더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었다.
남쪽 지방의 무더운 햇빛 필터에 씐 여름 풍경을 구경할 여력이 되지 않았다.
언제나 나의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던 경상도 사투리도 더 이상 나의 호기심 대상이 아니었다.
이런 신기한 시설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불안함 속에 드디어 도착한 통영시외버스터미널,
나의 핸드폰 배터리는 6프로였다.
아까 검색해 본 게스트하우스 가기 위해 타야 하는 버스가 오는 정류장에 갔다.
도착 예정인 버스가 한 대도 없고, 운행 중인 버스도 없다고?
망했다! 그럼 어떻게 하지..? 게스트하우스까지 어떻게 가야 하지?
택시 타자!!
손을 바들바들 떨며 카카오 택시를 불렀다.
다행히 택시는 바로 도착을 했고, 나는 무사히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였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 보니
나의 핸드폰 배터리는 2프로였다.
여기 앉아 불안해했던 것을 회상하며 한컷아까 사장님께서 도착하면 문자를 보내라고 하신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바로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냈다.
'핸드폰이 꺼지기 전에 답장이 와야 하는데...'
연석에 앉아 평소에 떨지도 않는 다리를 어찌나 떨었는지 모른다.
1프로 남았을 때 사장님께 들어오라는 답장을 받았고,
내가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자마자 핸드폰은 꺼졌다.
사장님께 게스트하우스 시설 이용 설명을 듣고 나는 그대로 뻗었다.
나는 나의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보았다.
학교 다닐 때는 늘 준비물을 두 번, 세 번 확인하며 대체로 준비되어 있는 상태로 다니던 학생이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본 나는 이렇게 허술할 수가 없다.
핸드폰 보조배터리는 챙겼으면서 보조배터리를 충전할 생각을 못한 내가 너무나도 어이없다.
지금까지 홀로 긴박한 상황에 놓인 적이 없었기에, 이런 상황에 닥치면 나는 우왕좌왕하며 아무것도 못하고 주저앉는 사람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홀로 긴박한 상황에 놓인 나는, 우왕좌왕은 하지만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애쓰면서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는 타입의 사람이었다.
(내가 이날 겪은 일은 당황한 순간이라고 치기엔 너무 아무것도 아닌가....?
그래도 내가 당황했으니 당황한 순간이라고 하자. 하하.)
여행은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