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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Nov 13. 2023

충족될 수 없는 욕망

 해가 갈수록 갈망하는 것이 줄어든다.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이 불분명해지고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든 나는 존재하고 살아간다. 삶은 갈수록 건조해진다. 쓸쓸해지는 기분에 가장 크게 가졌던 욕망에 대해 곱씹는다.


 나는 너를 자주 접했지만(그것은 자의도, 완전한 타의도 아니었다.) 아주 우연히, 필연적으로 빠졌다. 무시하고 있던 나를 치고 지나갔다. 머리를 ! 하고 세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의 흔적을 좇기 시작한다. 너는 곳곳에서 찾을  있었고 양은 방대하였으며 나는 그것을 모두 알아야만 했다.


첫 번째 오류 : 모든 것의 범위란?

두 번째 오류 : 과거를 통해 현재를 판단하기

가장 큰 오류 : 사랑이 곧 앎이라고 생각하기


 우리가 처음 마주한 건 타국이었다. 궁금했다. (나에게 호기심은 시작, 갈림길이라는 것을 글을 쓰며 깨달았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떤 성향을 가졌으며 어떠한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는지. 오늘은 무엇을 먹었고 내일의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정말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의 미래보다 너의 내일이 더 궁금했다. 아마도 나는 이때 유일하게 물리적인 시간과 나란했을 것이다. 너를 놓치지 않으려면 시간과 대등해야만 했다.


 내가 놓친 그를 발견할 때마다 괴로웠다. 어째서 우리가 만난 이후로, 내가 모르는 당신이 존재할 수 있어? 분개 혹은 자괴감. 아는 감정을 모조리 톺아보지만 그것을 설명할 단어는 떠오르질 않는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알고자 했다. 여기엔 또 다른 오류가 있다. 무엇보다 가변성이 뛰어난 인간이라는 존재를 알고자 했다는 점이다. 너는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하고, 한때 매서운 파도 위를 부유하기도 했다. 휩쓸리지 않도록 지켜보며 위험으로부터 구제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너는 내 생각대로 행동하고 예측대로 반응해야만 했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가 통제에서 벗어날 때마다 큰 애정을 느꼈다. 아니 나는 한 번도 너를 통제한 적이 없다. 결코 할 수 없었기에 갈구했다. 끝맺음에 가까워지고서야, 모든 오류를 인정하고서야 진정으로 사랑했다.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너의 곁에서 나의 사랑은 계속 변해왔다.


 너를 알았다고 착각했던 시점에는 너를 우상화했다. 갖고 싶었던 단단함이 있었고 시간을 버틸 힘도 있었으며 너는 어느 것도 내색하지 않았다. 이상적인 모습을 한 너는 어느 날 조용히 무너졌다고 생각했겠으나, 나는 알아차리고 말았다. 너무나 익숙하게 닮아있어서. 나의 사랑은 애처로움이나 안쓰러움과 같은 이상적인 사랑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는 감정을 무조건적으로 포함한다. 결핍이 보이면 끌어안고만 싶다. 나의 고약한 버릇.


 너를 아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 될 수 없다. 알 수 없기에 사랑이 될 수 없다. 나는 너를 이미 알고 있지만 그 이상은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마주하는 감정은 사랑이 아닌가? 그럴 리가 없다. 나는 사랑을 자각할 수 있다. 이것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 한 번도 나를 향한 사랑을 몰랐던 적이 없다. 무시하거나 뒤늦게 깨닫거나 혹은 의심하거나. 당신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착각한다 여전히. 나도 여전히. 이 사랑은 먼저의 것과 다르지만 내 사랑의 근원은 하나이기에 결국은 똑같다. 나는 너를 모르는 채로 사랑할 수 있다고. 앞으로는 그럴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발현되는 버릇은 무섭다. 여전히 누군가를  궁금해하고 알고자 하고. 수집가처럼 집요하게. 다시금 당신을 떠올리며 말한다. 모르는 상태로 사랑할 수 있다고.


 소리 없이 하곤 했다. 처음의 너는, 말과 행동을 전부 동원하고도 전하지 못한  마음을 알아차렸다. 나는   있는 마음을 다했고 대부분은 소멸했지만 아직도 미약하게나마 애정한다. 너는 이런 나를 고마워하지만 말하지 않는다. 나는 알아차릴  있다. 나는 너를 닮았고 당신은 여전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수년이 지난 지금, 그의 대부분을 잃어버렸다. 잊은 게 아니다. 나는 언제든 너를 떠올릴 수 있다. 매일 쓰는 카드를 1년 사이에 3번이나 재발급받은 나는 너를 잃어버렸다. 슬프지도 아쉽지도 않다. 잃은 채로도 애정할 수 있기에.


 몇 년 만에 그의 가족들을 뵈러 간다. 만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내가 만나고자 하기에 그 만남은 성사될 것이다. 나는 꽤나 지독한 부분이 있다. 모처럼 빠르게 무언가를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그때의 나를 만나러 간다.




B에게.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번도 너를 제대로 마주했다 느낀 적 없었고 내 고개는 항상 바닥을 향했어. 너를 보고 있지만 볼 수 없었고, 부끄러웠고, 그럼에도 계속 보고 싶었어. 정신이 아득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그래서 나는 겨우 사랑만 했어. 마주하지 않는 순간들에 더욱. 내가 모르는 곳에서도 나를 보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 법을 몰랐어. 너는 보여지는 사랑을 말했고 나는.. 이게 전부라는 말만 되풀이했어. 그럼에도 너는 내가 사랑하는 걸 알았지. 그래서 괴로웠고.

 지금의 나는 너로 이루어져 있어. 너의 흔적은 스며들어 내가 되고,  다른 너를 만나서 실패를 반복하며 배우고 있어. 나는 단언하는 버릇이 있는데(이건 다른 너를 통해 알게  )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있는 기억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야. 아쉬움은 언제고 나를 괴롭히지만. 그때도 줄곧 이렇게 마음을 전했으니까.

 아마도 이미 들었겠지만, 우리가 보지 않은 이후로 너는 종종 가족들을 통해  근황을 듣곤 했잖아. 얼마  누나를 만났어. 그녀는 나에게 여전히 같은 향수를 쓰네요.라고 말했어. 마지막으로   3 전인데, 나는 그때 향수를 쓰지 않았어. 하지만 그럴 수밖에. 이건 너의 향수이기도 했으니까. 익숙함은 무서운 거야. 이해할  있을까. 너는 나와 함께.


 너의 취향은 곧 나의 취향이 되곤 하니까. 나에게서 너를 보았다면 너 또한 사랑일까 의심해 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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