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누군가에겐 불편한 연필깎기
미술로 예중·예고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플라스틱 연필 캐리어에는 연필이 몇십 자루씩 들어 있다.
나도 처음에는“연필이 이렇게까지 많이 필요한가?”싶어 고개를 갸웃한 적이 있다.
그것도 하나같이 끝이 뾰족하고 날카롭고 섬세하게 심을 깎아낸 연필들.
자세히 보면 아무나 깎을 수 없는 거의 예술의 경지다.
얼마 전, 한 학부모가 쓰레드에 예중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의 연필을 한 보따리 깎아놓은 사진을 올렸다.
그저 “나도 아이도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어요”라는 가벼운 하소연과 응원을 기대하며 올린 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댓글에는 날 선 반응들이 쏟아졌다.
“과잉보호 아닌가요?”
“연필도 못 깎게 하면 학교는 어떻게 보내요?”
“마마걸 만드는 거 아닌가요?”
글 기반 채널 특성상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길게 의견을 남기면서 그 학부모는 순식간에 ‘과잉보호 부모’가 되어버렸다.
나 역시 미대를 준비했던 사람이다.
그 시절 우리는 연필 한 자루로 모든 그림을 그렸고 몽땅연필이 되면 깍지를 끼워 쓰기도 했다.
그림을 그리다 힘들면 잠깐 연필을 깎으며 허리를 펴고 숨을 고르기도 했다.
그때도 열심히 했지만 지금처럼 치열한 구조는 아니었다. 물론 우리도 늦게까지 그림을 그렸다.
통금이 없던 시기라 밤 12시까지 그림을 그리다 돌아간 적도 많았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고등학교에 가서야 미술 진로를 선택하는 줄 알았다.
예중이 있는지도 예고가 있는지도 몰랐다. 대학에 가서야 예고 출신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으니
내가 알고 있던 세계는 그 정도였다.
어린 나이부터 미술이라는 꿈을 가지고 준비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이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이 “연필 깎아주는 건 과잉이다”라고 말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 문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예중·예고 입시는 차원이 다른 세계라는 것.
준비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부모가 극성이라서 연필을 깎아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지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나 역시 언니 그리미를 처음 예고 입시반에 보낼 때 아무런 가이드 없이 톰보우 4B 연필 몇 자루를
칼로 대충 깎아 보내곤 했다. 중학생이니 그림을 그리다 무뎌지면 스스로 깎아서 쓰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는 어느 날 선생님께 이런 말을 듣고 왔다.
“어머니 미술 전공하셨다면서?”그 말을 듣고 얼마나 민망했던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예고 입시를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나의 불찰이었다.
요즘 미술학원에서는 연필을 집에서 깎아오게 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첫째, 예중 준비생들은 아직 어린 초등학생이다.
미술용 칼은 매우 날카로워 손을 크게 다칠 위험이 있다.
둘째, 연필 가루는 조금만 방심해도 교실 바닥을 금세 더럽힌다. 미관 문제뿐 아니라 환기가 어려운 공간에서는 건강에도 좋지 않다.
셋째, 연필을 깎기 위해 자주 자리를 뜨는 것은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넷째,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연필을 섬세하게 깎아야 정교한 그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의 그림이라고 해서 단순한 수준이 아니다. 실제로 보면 일반적인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 부모의 마음이다.
아이들은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실기를 하고 돌아온다. 씻고, 숙제하고, 잠들기에도 시간이 빠듯하다.
그 짧은 시간이라도 조금 더 쉬게 해주고 싶은 마음.
그래서 연필 깎기는 자연스럽게 부모의 몫이 된다.
저녁에 돌아와 넉다운이 되어버린 아이를 보면 무엇이라도 대신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연필이라도 깎아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주말에도 늦잠 한 번 못 자고 실기 수업을 가야 하는 아이를 보며 ‘이게 맞는 걸까’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으며
연필을 깎는다. 어쩌면 부모에게는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이에게는 휴식이 되고부모에게는 묵묵한 수행 같은 시간이다.
한 번은 예체능 커뮤니티에서 연필을 기가 막히게 깎는 공대 출신 아버지의 글을 본 적이 있다.
연필깎기 상자에 나름의 기계적인 아이디어가 기발하면서도 그 정성에 미소가 지어졌고 같은 마음이라는 연대감이 느껴졌다. 대부분 엄마의 몫으로 여겨지는 일을 아버지가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공감을 얻었다. 같은 장면을 보고도 누군가는 과잉이라 하고 누군가는 공감한다.
이 차이는 결국 ‘그 과정을 경험했는가’의 차이다.
나 역시 미술 진로를 늦게 선택한 것을 아쉬워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예중·예고 입시를 지켜보며 하나 알게 된 것이 있다.
최상위권은 어릴 때부터 치열하게 준비한 아이들의 몫이라는 것.
누군가에게는 연필 깎는 일이 하찮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길을 함께 걷는 부모라면 안다.
그 시간은 힘든 실기 과정을 버텨내는 아이를 위해 조용히 함께 견디는 시간이라는 것을.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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