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INNER SPARK 05화

오답연습

by INNER SPARK

검사, 변호사로 살아보니, 세상에 정답은 없다는 말을 심감하게 됐다. 난 분명히 정답에 체크했는데 채점자가 그것을 오답 처리한다. 그렇다고 이의제기도 못하는 게 세상살이다.


‘세상일에 정답은 없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 법정에서도 가장 유능한 판사, 검사, 변호사는 가장 멍청한 질문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나는 사건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다’라는 전제하에 질문을 많이 날려야 뭐라도 건진다.


‘변호사가 돼가지고 저런 것도 몰라? 사건기록도 안 봤어?’라는 비난을 받을까 봐 질문을 날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건을 전혀 모른다는 전제하에 날리는 질문에 각종 정답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주위를 보면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완벽을 추구하게 되면 일을 시작하기 어렵게 된다. 일이 잘못됐을 때 이런저런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실패할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자기 검열이 엄청나다.


완벽주의자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다른 사람들은 뭔가 완벽해 보인다. 다른 사람들은 완벽하게 시작해서 완벽하게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나도 완벽하게 시작하려고 한다.

무엇보다도 완벽한 것을 상상하고 계획하면서 시작이라는 결단을 못한다. 그러면 인생의 변화를 일으키기 힘들어진다.


완벽을 기한다는 것은 손에 뭔가를 힘주어 쥐고 있는 것과 같다. 손에 물과 흙을 쥐고 힘을 주면 다 빠져나가 버린다. 나한테 오는 것을 막는 결과가 된다. 원하는 것을 소망하고도 현실세계에 끌어당기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내가 몇 년 전만 해도 그런 완벽주의자였다. 머릿속에서 완벽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면 입을 열거나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결정장애도 있었다. 내 인생에 중요한 일인데 차라리 남이 결정해주었으면 하는 것도 있었다.

한 번 결정하는데 너무 큰 에너지가 소모된다. 어렵게 시작해 놓고 그것을 감시하느라 정신이 없다. 회의감은 계속된다. 약간의 비난만 받아도, 계획에 조금만 어긋나도 실패로 단정하고 중단해 버린다.

인생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어렵게 된다. 정답주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세상에 정답은 하나인데, 그것을 맞추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을 가진다.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에 정답은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변호사로서 몇 년 생활해 보니, 검사, 판사, 변호사는 세상의 많은 답들 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것을 찾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슨 일을 하든지 여지를 두는 게 중요하다. 어떤 직업이든 정답만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정답을 맞혀야 한다는 그 두려움은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


두려움은 사실 실체가 없다.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존재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서운 거다. 따라서 내가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지 글로 써보는 게 중요하다. 글로 써보면 실체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글로 쓰인 두려움이란 놈은 내 앞에서 오히려 하찮게 느껴진다.

그리고 내가 시작하려는 일에 대한 결과를 상상해 보는 것이다. 최선일 때와 최악일 때를 상상해 본다. 그리고 최악일 때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써본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 ‘내가 책임진다’라고 쓴다. 그러면 두려움은 더 이상 존재의미를 상실한다.


법무법인과 스타트업에서 80여 명의 생계를 책임지는 나로서도 어느 순간 두려움이 밀려오는 때가 있다. 세상에 나와서 처음 겪는 험한 일들도 많다. 내가 두려움에 공황상태에 빠지면 여러 사람의 인생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그래서 나는 노트를 갖고 다닌다. 그곳에 나만의 솔직한 감정을 적는 공간이 있다. 내가 느끼는 두려움을 쓴다. 아주 자세히 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사람에 대한 두려움 등 갖가지 두려움을 가감 없이 쓴다.


두려움에 대해서 자세히 쓰면 맨 마지막에는 자동으로 이런 말이 써진다.


‘별거 없다. 내가 책임지면 그만이다.’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면, 머릿속이 시원해지면서 공간감이 느껴진다.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던 무언가가 자리를 내준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수많은 시간을 겪어보니, 내가 두려워했던 그런 나쁜 결말은 열에 하나도 안 일어난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정답을 많이 맞혔기 때문에 대학에 들어가고, 사법시험도 합격하고, 검사도 되고, 변호사도 되고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오답을 많이 써 내려가고 싶다.


내가 고른 것이 오답이 아닌 '색다른 멋진 것'이라고 여길 예정이다. 남들도 그 색다름에 취해 나를 부러워할 수 있다.


그러려면 아무래도 느낌, 감정, 직감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면 색다른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그리고 인생은 재미와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더 늦기 전에 세상에 오답을 많이 날려야겠다. 그러려면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keyword
이전 04화반 45등이 검사가 되기까지 신비한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