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INNER SPARK 04화

반 45등이 검사가 되기까지 신비한 여정

by INNER SPARK

내 어릴 적 꿈은 군인이었다. 물론 아버지가 아주 어릴 적 반강제적으로 심어놓은 꿈이다. 지금 같으면 가스라이팅 당했다고 했을 거다. 아버지 때에는 군인이 정치인도 되고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직업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공부는 내 전문분야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삼 형제 공부를 위해 내가 고1 되던 해에 서울로 이사하셨다. 나도 맞춰 전학을 했다.


그 더운 여름이 생각난다. 하필 전학 가자마자 모의고사를 봤다. 반 55명 중 45등을 했다. 선생님이 나만 따로 불러서 엉덩이에 몽둥이질을 하셨다. 자식 위해 시골에서 이사 온 아버지 생각해서라도 공부 좀 열심히 하라고 의미에서.


그래서 옆에 애들 보면서 책을 열심히 팠다. 나는 서울 애들이 학원에 가고 과외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하기야 그걸 알아도 집에서는 지원사격을 해줄 형편이 안 됐을 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성적이 계속 올랐다. 부모님과 선생님도 신기해하셨다. 공부 잘하는 짝꿍들 옆에서 그 애들 하는 것을 따라한 것뿐인데 신기하다. 아마도 따라 하기와 몰입의 힘이 합쳐져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아버지의 배신이랄까. 내가 육군사관학교 갈 성적까지 올려놨는데, 아버지는 나한테 군인 되라는 말이 없다. 당신께서 그동안 심어놓은 말들이 있어서일까. 명확히 군인이 되지 말라는 말은 없는데, 자꾸 경영학과, 무역학과 얘기를 꺼낸다. 세상이 바뀌었다. 더 이상 군인들의 세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난 꿈 없는 상태로 고3을 맞이했다. 법학과에 가서 검사, 변호사가 되겠다는 이런 생각은 제로였다. 그냥 미래의 어떤 존재가 나를 끌어당겨준 것 같다. 최근에 퓨처셀프라는 책을 봤는데, 아마도 그 책에서 말하는 미래의 나가 현재의 나를 끌어준 것 같다. 아니다, 당시 현재의 나가 미래의 나를 잡아끈 것 같다.




당시는 먼저 학교, 학과를 지원하고 시험을 봐서 정원 내에 포함되면 합격되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맘대로 서울 상위권 대학의 입학원서를 사들고 교무실로 들어갔다. 아니 쳐들어갔다고 봐야 할까. 내향인인 내가 왜 그랬는지 지금도 미스터리다.


담임선생님은 내가 일방적으로 사 온 원서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우리 반 합격률을 높여야 하는데, 이 자식이.....” 이런 생각을 하심에 틀림없다.


학생은 선생님의 거울이라고 했던가. 나도 눈살을 찌푸렸다.


“선생님, 저 이 학교 가고 싶습니다.”

“안돼. 너 여기 넣으면 떨어져!”

“떨어져도 좋으니 그냥 저 이 학교 넣게 해 주세요. 재수할 생각 있어요.”

“그래도 안돼. 안돼, 인마!”

선생님과 옥신각신 30분을 했는데, 선생님은 일단 한 손 들고 그 학교 입학원서를 쓰게 해 준다고 하신다.


그렇다면 학과는? 맞다. 학과는?


“그럼 학과는 어디 쓸래?”

“경영학과요.”

“안돼, 너무 점수 높아.”

“그럼, 영문과 써주세요.”

“안돼. 거기는 더 높아.”

“그러면, 무역학과 써주세요.”

“뭔 소리야. 거기도 높아. 백 프로 떨어져.”


조용한 내 성격에 갑자기 불이 켜졌다. 나를 너무 부정적으로 보시는 게 아닌가 말이다.


“선생님, 그럼 저 법학과 갈게요. 법학과!”


정말 뜬금없이 나온 소리다. 19년 내내 법학과 갈 생각은 1초도 안 해봤었다.


“너 미쳤어? 법학과 안돼! 도대체 뭔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선생님, 저 그냥 법학과 쓸게요. 그냥 써주세요!”


또다시 30분간 심리전이 청산리 전투처럼 불을 뿜었다. 그래도 내가 반에서 공부 좀 하는 놈이라, 합격을 시켜 반 합격률을 높여야 되는데 난감하셨을 것이다. 나도 고집세기로 유명한 집안에서 자란 놈이라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봐도 참으로 설명이 안 된다. 법학과 가면 뭐 하는지도 모르는 놈이. 집에서 고시공부 지원해 줄지 상의도 안 해보고.


아, 그러고 보니, 부모님한테도 어느 학교, 무슨 학과에 지원할지 상의도 안 했네.... 이런


그렇게 담임선생님과 내가 옥신각신 하는 사이 선생님들이 시킨 점심이 배달 돼왔다.


“김 선생님, 와서 식사하세요.”

우리 담임선생님을 부르는 소리다. 담임선생님은 일부러 못 들은 척 엄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쏘아보고 계셨다. 나는 창문만 보고 있었다.


식사가 배달된 지 10분이 지났다. 저쪽에서 애타는 소리가 들린다.

“김 선생님, 자장면 다 불어요. 어서 오세요”


그러자 담임선생님의 센 경상도 사투리가 교무실에 울려 퍼졌다.


“그래, 이놈의 자슥아. 가라 가. 거기 법대 가라 가. 이 자슥이! 떨어지믄 죽이삔다!”


불어 터지는 자장면 덕에 입학원서를 무사히 넣었다.


그렇게 그 대학 법학과에 원서를 내고 시험을 아주 직관적으로 봤다. 수학시험에서 주관식 몇 개는 감으로 –1, 0, 1/2 등을 썼는데, 공교롭게 답과 일치했다.


담임선생님과 부모님의 예상과 달리 나는 법학과에 합격했다. 나중에 들었는데, 나보다 공부 잘하던 애들이 내가 서울의 그 대학 법학과에 합격하는 걸 보고, 재수를 많이들 했다고 한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인생행로가 바뀌었다니 좀 씁쓸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법학과에 붙어서 나도 정말 난감했다. 처음부터 판사, 검사, 변호사를 꿈꾸고 들어온 학생들이야 1학년 때부터 공부를 참 열심히 했다. 그런데 동기부여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나는 놀기 좋아하는 친구들과 당구, 술 등으로 놀기 바빴다.


교수님이 출석을 다 부르고 돌아서 칠판에 글씨를 쓰려고 할 때 열린 창문을 통해 낙법을 쳐 밖으로 나와 당구장으로 간 일도 여러 번 있었다. 당구에 빠져 하루 12시간 기록을 세운 적이 있었다.


그런데 대학 3학년 2학기 때쯤 되니, 동기들도 대부분 군대를 갔다. 나도 군대 문제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옆에서 공부 잘하는 얘들이 어떻게 하는 지를 보니, 법대기숙사에 들어가 선배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었다.


나도 기숙사에 들어가기 위해 시험을 치렀는데, 내 앞에서 커트가 됐다. 낙담하고 있는데, 한 명이 갑자기 신림동에 들어간다며 기숙사를 포기했단다. 나는 그 친구 대신 기숙사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좋은 선배님들을 만나 정말 열심히 했다.


나랑 당구, 술을 함께 하던 친구들과 군대 다녀온 친구들은 모두 나의 고시공부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내 인생을 뒤돌아보면, 왜 이렇게 내가 뭘 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부정적인 반응들이었는지 이제 와서 좀 궁금하다.


기숙사에서 열심히 했으나, 지속적으로 공부해 온 선배, 동기들을 쫓아가기에는 무리였다. 모의고사를 봐도 뒤에서 세어야 빨랐다.


그런데 군대 휴가 나온 후배와 술을 밤새 마신 다음날 모의공사를 봤는데.... 아, 글쎄 내가 1등이란다. 지금 생각해 봐도 말도 안 되는데, 아무튼 그런 결과가 나왔다.


그 후로 나는 모의고사 1등 한 사람이 됐다. 주위에서도 “야, 너 1등 했다며?”라고 얘기를 해주었다. 나는 그 1등을 놓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아니, “쟤가 지난번에 우연히 1등이 됐는데, 이제 제 실력이 나왔는지, 성적 안 좋은 거 봐”라는 뒷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진정으로 열심히 했고, 다음 해에 1차 시험 합격, 그다음 해에 2차 시험을 합격했다. 2차 시험도 이런 운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상법시험 문제 중 50점짜리 문제는 시험 전날 상법책을 가방에 넣는데 책 안에 끼워 넣어둔 정리메모가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완전히 사진 찍듯 외워갔는데, 그게 시험에 나왔다.


형사소송법문제는 시험 전날 밤에 혼자 철봉을 하고 있는데, 시험공부를 오래 한 선배가 오더니 “야, 너 이거 공부했어?”라면서 A4 크기의 인쇄물을 줬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보지도 않고 2번 접어서 뒷주머니에 넣고 철봉에 열중했다.


다음날 시험장소 정문에서 내려 시험교실로 걸어가다가 문득 뒷주머니에 뭔가가 걸리적거려 그것을 꺼냈다. 그것을 읽으면서 10분 동안 걸어갔다. 그 문제가 또 50점짜리로 나왔다.


행정소송법은 가관이다. 교수님이 특강을 통해 시험에 나올만한 문제를 찍어주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다른 일 보느라 그 시간에 참석하지 못했다. 교수님은 어떤 학생이 ‘이 부분이 시험에 나올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교수님이 ‘아니, 그 문제는 시기상조야. 안 나오니 걱정 말고 다른 부분에 치중해서 공부해’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 문제가 시험에 나오고 말았다. 그 특강을 들은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과락 내지 과락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나는 그 특강을 못 들은 덕에 그 문제가 나왔을 때 신나게 답안을 써 내려갔다.


좀 더 행운이 있는데, 너무 길어지니 사법시험에서 행운이 작용한 부분은 이 정도만 적으려고 한다.




내가 사법시험에 합격하니, 동기들이 난리가 났다. 놀기만 하던 친구가 시험에 붙었다나. 취직하려던 친구들까지 사법시험에 뛰어들었다.


나중에 어떤 친구가 추산해 보니, 내 영향으로 20명 정도가 법조인으로 삶이 전환됐단다. 난 또 이렇게 주변인의 삶에 영향을 끼쳤다.


사법연수원에 들어갈 때 비로소 되고 싶은 게 생겼다. 검사가 되고 싶었다. 가장 정의로워 보이는 사람이 검사라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멋지게 보여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어찌 그렇게 공부가 하기 싫었는지 사법연수원에서도 노는 축에 끼어 살았다.


2년 차에 지도교수님과 진로상담을 하는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부정적인 말씀을 하신다.


“음, 우리 연수생은 뭐 하고 싶은가?”

“예, 교수님, 검사하려고 합니다.”


교수님은 토끼눈을 하면서 성적표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신다. 그런 후 아주 부드럽고 교양 있게 말씀해 주신다. 고3 때 담임선생님의 말투와는 다른데 뉘앙스는 비슷했다.


“음.... 변호사 하는 내 친구들 있는데, 아주 재밌게 잘 산단 말이야. 변호사가 아주 좋은 직업이야.”


내 인생에 태클을 거는 사람들이 아주 즐비했다. 나는 바로 변호사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지막 시험이니 후회 없이 치르기로 마음먹고 추석 연휴도 사법연수원의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시험기간 중에 같은 반원들과 교수님이 식사를 하는 기회가 있어 내가 교수님께 건의 좀 했다.


“교수님, 도서관에서 공부하는데, 청소가 안 돼 있는지 먼지가 너무 많아 공부하기가 어렵습니다.”

교수님은 대답 대신에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한 후에 다른 연수생들과의 대화에 전념하셨다. 그래도 난 왠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시험을 열심히 보긴 했는데, 다들 잘 봤기 때문에 내 순위도 별로 변화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를 잘 모르는 교수님도 나에게 “자네가 그렇게 시험을 잘 봤다는 그 연수생인가?”라고 물어볼 정도로 점수가 잘 나왔다.


군법무관을 마칠 무렵 법무부에서 검사지원자들 면접을 보는데, 의자들 배열이 사법연수원 시험성적순이었다. 나의 연수생활을 잘 알고 있는 일부 친구들은 “야, 네가 왜 거기 있어? 너 이쪽 아니야?”라면서 맨 앞줄에 앉아있는 나에게 시비를 걸었다.


나는 이렇게 검사가 됐다.




써놓고 보니, 내 삶이 나도 모르는 어떤 힘에 이끌려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미래의 내가 나를 멱살 캐리했던 것 아닌가 의심도 해본다.


어떤 경로인지 모르나, 필요한 시기에 몰입으로 초단기적인 성과를 내는 능력이 생겼고, 그것이 운과 결합되어 예상치 못한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나는 항상 운의 힘을 믿는다. 그리고 내가 무의식적으로 잠재의식에 긍정마인드를 깊게 새겨왔던 것 같다. 미래의 내 모습을 긍정적으로 상상하고, 뭔지 모르게 잘 될 것 같은 믿음이 있었다.


어떤 일을 해놓고 보면, 과연 내가 한 일이 맞나 싶을 정도로 결과가 좋을 때가 많았다.


나는 마법으로 포장된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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