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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드림 May 13. 2024

내가 덕질을 하지 않는 이유 2.

고양이 키우는 게 뭐?

“배우들이랑 일하면 어때?”, “그 배우 성격은 어때?”

“배우들도 그냥 사람이야. 뭐가 어때, 그냥 네 옆에 있는 사람들이랑 똑같지”


나는 배우와 (되도록이면)깊은 친분을 쌓지 않게 되었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인격적으로 덜 성숙한 사람도 있고, 이기심의 끝판왕도 있고, 역대급의 빌런도 있지 않나. 그러니까 배우도 결국 사람이고, 완벽할 수 없기에 모든 이들이 다 매체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정의롭고 똑똑하고 수더분한 성격일 수는 없다는거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관계자가 아닌 친구들은 참 관심 있게 질문하곤 한다. 그러면 나는 그저 "배우에게 환상을 갖지 말라고. 덕질은 적당히 하라고. 그 에너지를 네 가족에게 쏟으라고" 날카롭게 이야기해 줄 뿐이다.


나라고 덕질을 안했던적이 있었겠나. 10대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좋아했고, 원타임에 미쳤던 시절도 있었다. 로코나 멜로 드라마를 보면서 내 가슴을 선덕선덕하게 만들었던 남자 배우들도 많았다.


덕질을 안 하게 된 것은 엔터 업계에 들어온 뒤부터다. 그들도 그냥 나 같은 사람이구나, 그저 내 동료일 뿐이구나. 그 뒤로 나는 어떤 배우를 만나도 가슴이 뛰지 않았던 것 같다. 친분 관계를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매니저에게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닌 것을 듣고 난 뒤부터는 더욱 그랬다. 업무로 잘못했으면 내가 고치면 되는데 ‘걔는 고양이한테 신경 쓰느라 내 전화를 잘 안 받아’가 내가 도마위에 올라간 주제였다는 것을 알고 난 뒤부터는 더욱 거리를 뒀다. 단 한순간도 고양이들한테 신경 쓰느라 일에 집중하지 못했던 적이 없었는데도 나를 그렇게 봤다는 것 자체가 상종 말아야겠다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늘 불안에 떨며 새벽까지 잠을 못자는 그를 위해 5분 대기조처럼 전화를 받아주고 고민을 들어주고 같이 해결해 나가려 노력했던 일들은 ‘고양이에 정신 팔린 애’로 한 순간에 무너졌다. 매니저들의 기피 대상 1호 연예인이라 소속사를 찾을 때도 힘들었던 그를 위해 아는 매니저들에게 전화를 돌려 자리를 주선해줬던 내 노력은 그렇게 후려쳐졌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이렇게 씁쓸하구나 싶었을 때, 나는 덕질을 하지 않는 내 자신이 기특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한편으로는 배우를 배우로만 바라보지 못하고 언젠가 함께 하게 되면 실망할 것이 뻔하니 기대감을 갖기 말자 정도로 마음을 단련했다. 그리고 나는 관계자라면 적당한 팬심으로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나는 덕질을 하지 않는다. 더 이상 사람, 그것도 배우에게 상처 받기 싫어서. 내가 물고 빨고 소비했던 누군가를 만나서 받지 않아도 될 실망감을 얻는 것이 싫어서. 그들도 그냥 살아가는 사람일 뿐인데 내게 미움 받지 않을 권리 정도는 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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