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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Nov 12. 2023

불친절한 나의 언어 선생님

제대로 가르쳐주면 안 되겠습니까

우리 집엔 나의 언어 선생님이 산다.


남편을 만나고 손 놓았던 중국어를 다시 하기로 마음먹고부터 그는 나의 '암묵적인' 선생님이다. 남의 편이라 불리는 그 중국어 선생님은 사실 내가 중국어를 배우든 말든 큰 관심이 없다. 그는 나에게, 이미 대화 통하고 중국에서 밥 먹고 물건 사는데 어려움 없으니 더 안 해도 된다고 한다 (자랑 아님). 그렇지만 나는 이래서 속이 터진다. 이 불친절한 언어 선생님 같으니라고.

 



외국어 공부를 하는 건 비단 밥 먹고 물건만 사기 위해 배우는 게 아니잖나! 특히 내 중국어공부의 목적은 단순히 남편과 단둘이 대화하기 위한 게 아니다. 자주는 못 뵙지만 이런저런 말씀을 해주시는 시부모님, 친인척 분들의 말씀에 자연스러운 리액션을 하고 남편 없이도 현지를 휘젓고 다닐 수 있는 레벨을 갖추는 것이다.


가족끼리 뭐 가르치고 배우는 거 아니랬다고, 남편이 각 잡고 언어를 가르쳐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는 '교수법(가르치는 방법)' 따위엔 1도 관심이 없다. 그래서 나는 혼자 방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중국어를 읽어대는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친절한 선생님이 필요할 때가 온다는 거다.




어떤 언어든 그렇겠지만, 음원으로 듣는 표준발음이랑 실제 모국어 구사자의 발음, 즉 현지발음은 천지차이다. 처음 독어를 들었을 땐 속도에 놀랐고, 중국어를 들었을 땐 발음에 놀랐다. 독어 자격증 시험의 듣기 평가는 일부러 잡음도 섞고 속도나 발음도 현지에서 듣는 것과 (그나마) 유사하게 나오는데, 중국어 자격시험 HSK에서 들려주는 듣기와 실제 현지인들의 발음은 정말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현지 가서 시험 듣기 평가처럼 발음했다간 '나 외국인이고 책으로만 공부했다'라고 낙인찍히기 딱 좋다.


아주 쉬운 예로,

这个多少钱?(이것 얼마입니까?)를 음원으로 들으면, "쯔어거 뚜오샤오치엔?"이라고 나온다. 한 자 한 자 매우 또박또박 들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말한다. "쯔이거 뚜얼치에?" 굉장히 빠르고 발음이 뭉개진다.


이런 게 수도 없이 많다. 그래서 특히 중국어는 책으로 공부하고, 음원으로 듣고, 다시 현지인의 발음까지 입력해야 한 번 공부한 게 된다.

 



공부 중 이런 게 등장하면 나는 불친절한 언어선생님을 호출한다. 독일바닥 어디서 갑자기 중국어 발음을 확인해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방법은 이것 하나뿐이다. 불친절한 선생님은 여기서 나를 시험에 들게 만든다.


일단 나한테 한 번 발음을 시킨다. 그리고 대충 비슷하면 잘했다고 한다.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니 그렇게 말고! 제대로 실제 현지 발음을 알려달라니깐."


그러면 뭐라고 한번 더 중얼거리는데, 이건 또 잘 안 들린다. 내가 안 들린다고 뭐라고 하면 불친절한 선생님은, "실제로 이렇게 말하는데 어떡해"란다.


그렇다. 현실발음을 알려달라고 해놓고 다시 음원 같은 또렷한 발음을 요구하는 나 역시 불친절한 학생이었던 것이다. 참 요구사항도 많고 까다로운 학습자가 따로 없다.


이미 남편을 만나기 전 중국어 공부를 했었으니, 그를 만난 뒤 내 중국어는 실력이 대단히 상승하진 않았어도 확실히 이전보다는 편한 언어가 되었다. 그전까진 성조 하나 틀릴까 싶어 입이 잘 안떼지고 두려움이 앞섰는데, 남편은 이에 대해 "발음만 정확하면 웬만하면 다 알아듣는다. 그리고 본토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같은 단어라도 성조를 달리하는 곳들이 있기 때문에(사투리나 관습에 의해) 너무 성조에 목매지 마라"고 말한다.


아기 걸음마하듯 어찌저찌 공부해왔지만 여전히 겁이 나던 언어였는데, 이젠 아무렇지 않게 평소에 입에서 나오고 낯선 중국인이 말을 걸어도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편하게 해 주었으니, 그는 어쩌면 불친절한 선생님이 아니라 나의 진짜 스승인지도 모르겠다.



제목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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