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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May 15. 2024

당신은 기쁨을 나눌 친구가 있나요

인생에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진짜 친구 1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한다. 

알고 지낸 세월과 상관없이 진정으로 공감과 이해를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을 그만큼 찾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 외에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도 있다.

기쁨도 나누고 슬픔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주변 혹은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적어도 그런 사람 한 명쯤은 곁에 있길 바라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사실 슬픔을 나누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기쁨을 나누는 것이다.

 

상대의 고통 즉, 슬픔을 나누는 건 생각보다 쉽다. 몸이 아픈 친구에게 빨리 나으라는 말, 일이 버거운 동료에게 고생한다는 말, 슬픔을 겪고 있는 지인에게 더 좋은 날이 올 거라는 말 한마디 하는 것은 그 사람이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어서도 있겠지만, 인간이라면 응당 '나보다 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연민이나 동정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교육에 의해서든 본능에서든 약자를 돕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하지만 정 반대로 상대의 발전이나 성공 즉, 기쁨을 나누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다.


원하던 대학에 붙었다는 친구, 대기업에 취직했다는 대학동기, 회사의 지원으로 해외 명문대에 MBA를 간다는 동료, 인상도 경제력도 좋아 보이는 사람과 결혼하는 지인, 부모님 도움으로 자기 자본 없이 사업하는 사람 등 - 이 사람들에게 "정말 잘 됐다. 네가 잘 돼서 너무 기뻐, 축하해"라고 진심을 다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단언컨대 슬픔에 위로를 건네었던 사람의 반도 안될 것이다. 




기쁨보다 슬픔에 공감하기 쉬운 이유는, 슬픔은 아무리 포장해도 슬픔이고 나약한 상대의 감정 속에서 위로를 건네는 내가 우위에 있는 반면, 기쁨은 잘못 포장하면 상대를 압도하는 자랑 혹은 자만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말하는 사람이 건조하게 팩트만 전달했다 하더라도 듣는 사람이 꼬아서 자랑으로 받아들이면 공감은커녕 미움을 사기 쉽다.


상대의 기쁜 일을 비꼬지 않고 순수하게 축하해 줄 수 있다는 건 듣는 사람의 상황이나 심리적인 상태가 스스로 만족할 만큼 안정적이거나, 상대방과 자신을 철저히 객관적으로 분리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그렇지 않다면 상대의 성공을 곧 자신의 인생에 끌어들이고 비교질 하며 '내 상황은 이것밖에 안되는데 쟤만 잘되네'라는 식의 시기질투 경쟁심이 발동하고 관계를 망가뜨릴 수 있다.




대학 때부터 독일에 사는 지금까지 크고 작은 성취와 실패들을 겪었던 나는 이 점을 피부로 정말 많이 느꼈다. 힘든 일이 있을 땐 "다 잘 풀릴 거야. 걱정 마"라고 하던 사람이, 좋은 일을 말하자 연락을 씹거나 "너는 다 이뤄서 좋겠네?" 등과 같이 비꼬는 말을 건넸다. 아마 본인의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자기 인생의 불만을 상대에게 표출하는 모습을 보면 오죽 불만족스러우면 저럴까, 하는 동정심 마저 들게 한다.


아무리 희극처럼 보이는 인생에도 비극은 있고, 비극으로 보이는 인생에도 웃을 일은 있다. 기쁨과 성공을 위주로 말하는 사람의 인생에도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남의 스포트라이트로 자신의 인생 구석구석까지 비출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내 인생을 살아주는 건 나뿐이다. 


진정으로 건강한 관계는 타인과 나의 인생을 철저히 분리시켜 받아들이고 상대의 기쁨이든 슬픔이든 진심을 다해 나누며 발전하는 것 같다. 



제목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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