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함부르크에 다녀온 뒤 몸이 많이 아파서 며칠 컴퓨터 앞에 앉기 힘들었다.
정기적으로 가는 곳이고 그리 고된 여정도 아니었는데, 잠자기도 앉기도 힘들 정도로 끙끙 앓은 걸 보면 이전보다 확실히 몸의 회복력이 떨어졌다는 느낌이 든다. 핸드폰에 비유하면 2년 정도 쓰면 배터리 효율이 90프로 이하로 떨어지는데, 이 효율이 낮을수록 아무리 충전을 자주 해도 방전까지 시간이 짧아진다. 사람의 몸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든 효율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운동하고, 건강하게 챙겨 먹으려는 거겠지. 30대가 넘으면 운동의 목적은 더 이상 다이어트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던데, 사실이었다.
10년이 넘는 해외생활 기간 동안 나는 아플 때마다 어떤 이유에서든 겁이 났고, 지금도 여전히 겁난다.
초창기에는 나를 돌봐줄 가족이 없어서 겁이 났다. 사실 겁이라기보다 서러움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리고 독일생활에 한창 적응할 즈음에는 이 서러움이 짜증과 그리움으로 바뀌었다. 병원 예약 잡기도 힘든데 아플 때마다 그렇게 엄마표 김치찌개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당시 살던 집이 한국식당이 없거나 너무 먼 지역에 위치했었기에, 매번 속 한번 제대로 달래지 못하고 그 시기를 보낸 것 같다.
독일생활에 완전히 적응한 지금은, 아프면 정말로 '겁이 난다'.
나이를 먹을수록 병원 가기 힘든 독일 시스템의 무게가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아무리 죽을 것 같아도 감기몸살 정도는 병원에 가봐야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는 데이터가 10년 이상 쌓였기 때문에 이젠 아예 병원 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반복 학습과 경험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런데 만약 가벼운 병이 아니라면?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면? 급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저녁 혹은 주말이라면? 그래도 독일 병원을 믿을 수 있을까?
정말로 그런 상황이 닥치면 일단 응급실로 갈 텐데, 거기서는 또 몇 시간을 기다리게 될까? 최근 한국의료도 진통을 겪고 있지만, 독일 시스템은 생각하면 할수록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아플 때 제대로 처치받지 못할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게 바로 정말 겁이 나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사보험으로 덜컥 옮기자니 금전적인 부담이 너무 크고 (1인 매달 150만 원 이상 나간다) 나중에 다시 공보험으로 돌아오기도 어렵다. 게다가 사보험도 종류에 따라 기대만큼 예약이 빨리 잡히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돈은 두 배로 내면서 일주일 안에 예약도 안 잡히면 사보험으로 안 가느니만 못할 수 있다.
그래서 겨우 차선책으로 선택하게 되는 게 각종 '추가보험'이다. 수술할 때 Chefarzt(과장의사)에게 받는 보험, 2인 이하 병실 쓰는 보험, 여성 수술 보험, 치아 보험 등 공보험과 엮을 수 있는 추가보험이 다양하다. 하지만 이건 사후약방문식으로 일단 병이 생기면 치료할 때나마 조금 도움을 받는 수단일 뿐, 조기발견이나 치료를 빨리 시작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일단 병원에 쉽게 갈 수 있어야 조기발견이든 뭐든 할 거 아닌가.
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나는 30, 40대 넘어서 독일로 이민을 온다고 하면 반드시 이부분을 고려하라고 말씀드린다. 머리로 생각하기에 '그까짓 병원 한 2-3주 기다려서 가는 게 뭐 대수야?'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실제로 겪어보면 2주는커녕 이틀 기다리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얼마 전 독일 사는 친한 친구 아이가 아파서 응급실에 갔다가 8시간 기다리다 지쳐 그냥 집에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상황이 어쩌면 꼭 중년 이상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 사진출처: copilot 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