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직장 이직
우리 남편은 이직을 참 잘한다.
'잘한다'는 의미는 남들보다 이직을 많이 했음에도 매번 연봉상승 혹은 최소한 승진이라도 얻어냈고, 매번 본인이 가고 싶은 회사 중 한 곳으로 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오래전부터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회사의 오퍼를 받아냈다.
아내로서 자랑스럽고 고마운 것과 더불어 같은 직장인으로서 신기하고 궁금하여 남편의 이직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며 알아낸 노하우(?)를 적어보고자 한다.
첫째, 사업군과 하고 싶은 업무가 뚜렷하다.
남편은 대학생 때 인턴십을 통해 경험한 사업군이 제약과 자동차 두 가지였는데, 그중 제약분야가 매우 흥미로웠다고 한다 (약학과 출신 아님). 그래서 첫 직장부터 지금까지 줄곧 제약분야에 있으면서 본인에게 맞는 직종의 범위를 줄여갔다. 우리는 남편이 첫 직장 신입사원일 때 만났기에 나는 남편 이직역사의 산 증인인데, 여태까지 손바닥 뒤집듯 업무가 변한 적은 없었다. 포지션 명칭은 달라도 하는 일의 성격이 크게 변하지 않으면서 점점 전문화되어갔다. 마치 마인드맵의 큰 주제부터 작은 주제로 가지가 뻗어나가듯 이직과 함께 전문성이 더해졌다. 다른 분야나 업무가 궁금하지 않냐고 몇 번 물어봤는데, 그는 '궁금하다고 옮기면 계속 신입에 머물러있는 거나 마찬가지라 웬만큼 맞다면 바꾸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둘째, 최종 목적지를 구상한다.
앞서 말한 사업군과 직종을 바탕으로 남편은 '몇 년 뒤 어떻게 되고 싶은지'를 항상 구상해 왔다. 둘 다 직장인인 우리는 서로의 커리어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때마다 그의 구상은 두루뭉술하면서도 뚜렷했다. 즉, 정확히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할 거다는 계획은 없지만 '어떤 방향으로 가서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그림은 확실했다.
셋째, 인터뷰를 즐긴다.
서류를 통과하면 인터뷰 일정이 잡히는데 나는 이 단계서부터 스트레스가 극도로 고조되고 예민해지는 반면, 남편은 평소처럼 일하고 여가도 즐기고 매우 여유를 부린다. 오히려 내가 나서서 '좀 더 준비해야 되지 않냐'라고 걱정할 정도다. 그때마다 그는 '그래도 할 일을 안 할 순 없지 않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또한, 돼도 안 갈 것 같은 회사의 인터뷰까지 다 보는 게 아닌가. 어차피 안 갈 거 뭐 하러 보냐고 물으니, 인터뷰 연습은 돈주고도 못하므로 일정 잡힌 건 연습 삼아 다 하는 게 좋다고 한다. 그래서 나한테도 잡힌 인터뷰는 거절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보라고 한다. 이쯤 되니 남편이 구직과정 자체를 즐기는 게 아닌가 싶다.
넷째, 낙방에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남편이 정확히 몇 번 낙방했는지 모른다. 그의 메일함을 뒤져볼 수도 없고 합격하면 말해줄 테니까. 한 번은 '당신은 거의 안 떨어지고 다 붙는 것 같다'라고 하니, 말을 안 했을 뿐이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떨어졌다고 한다. 다만 떨어진 것에 마음 쓰거나 거기에 아쉬워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남편은 물어보면 말해줄 뿐, 떨어졌다고 풀이 죽어있던 적도 없었다.
다섯째, 공백을 만들지 않는다.
일을 시작한 이후로 그의 이력서에는 공백이 없다. 보통 직장인들이 3년 단위로 슬럼프가 온다고 하는데 남편은 그걸 이직으로 극복한 게 아닌가 싶다. 비단 수입이 줄어서 휴식을 피하는 게 아니라, 이유 없는 공백은 안 만드는 게 좋다고 한다. 그래서 직장에 다니며 이직준비를 하고 새 직장 입사에 맞춰 퇴사를 한다. 여태까지 딱 한 번 슬럼프를 겪는 게 보일 정도로 힘들어했던 적이 있는데, 그래도 일을 그만두지는 않았다.
여섯째, 될 때까지 한다.
내가 보기엔 이게 가장 강력한 비결인 것 같다. 특별한 스킬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아무나 하기엔 쉽지 않은 것. 그냥 될 때까지 하는 것이다. 현재 남편이 다니는 직장은 대학교 3학년때부터 최소한 20번은 지원했다고 한다. 매번 떨어졌던 직장인데 몇 년 전, 지원도 안 했는데 회사 인사과에서 조건이 적합하다며 먼저 컨택해서 데려갔다. 앞으로 입사할 회사도 힐끗 보니 남편의 지원이력에 5줄이 있었다. 네 번이나 떨어졌었어? 몰랐네. 결정적 순간에 한 번만 빛을 보면 과거 낙방은 전혀 개의치 않게 된다.
남편말로는 당락여부와 상관없이 지원하면서 꾸준히 해당 회사에 대해 공부하고 면접을 준비해놓은 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나도 느끼는 바이지만, 경력과 직급이 올라갈수록 이직이 점점 어려워지는데 이러한 준비가 없거나 일희일비 했다면 이직에 실패했을 것이다.
'실력을 키우면서 존버'하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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