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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오마주 May 20. 2024

노트에 쓰지 못한 제목

'만세력 공부'라고 투명하게 쓰기


나의 색은 카키색이다. 노란색과 초록색, 그리고 검은색이 한 방울 들어간 색이다. 푸른색들이 편하게 고무바지를 입은 듯한 계절, 그런 공기의 색을 좋아한다. 편안함이 기다리는 컴퓨터를 켜는 그 순간을 좋아한다. 

 

만세력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편하게 생각하는 노트를 하나 꺼냈다. 한자가 많고, 설명되는 부분이 각각이라서 핸드폰에 필기하기에 손이 느렸다. 비닐째 보관된 문구류는 집 곳곳에 많이 있었다. 손을 아낀다는 명목으로 중지가 아프도록 글자를 쓴 지 꽤 되었다. 필기를 시작할 때 하는 게 있다. 제목과 이름 쓰기.


차마 겉표지에 쓰지 못했다. 내면에게 말했다.


'엄연히 명리학이라는 학문이야.'


사실이라 대답하지 못했다. 남편은 우려를 표했다. 사주풀이와 같이 심오한 곳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많이 말하고 쓰게 되고, 호불호로 나뉘는 사람이 될지 모른다. 입 밖으로 차마 내지 못했던 말을 했다. 신념, 종교 이외의 생각에 깊게 연관하는 것은 '불편하다' 이상이 될 수 있다. 돈을 벌 수단이 된다고 해도 다르지 않다. 단지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이런 사실을 매일 매시간 기억하겠다고. 마음이 관심을 외면하지 않되, 세상도 단절치 않기를 기도했다. 




 사주풀이 영상을 찾기 전에, 먼저 만세력 앱을 다운로드하였다. 그리고 생년월일시를 입력하면 표와 함께 많은 글자가 나온다. 길고 긴 그 글자들은 수학적 계산에 의해 풀이된다. 보자마자 당황했다. 간단해 보이는데도 아는 한자가 많이 없었다. 나는야 86년생, 7차 교육과정 1세대는 컴퓨터 세대다. 컴퓨터를 제일 잘하지는 못하지만, 한자는 제일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또 다른 도전이다.


출처 : 유튜브 이지안의 쏙쏙 사주 캡처본


이 중에 가슴에 꽂히는 단어가 있었다. '살'과 '귀인'이다. '운'에 있어서는 로또만큼이나 자극적이다. 물론 만세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따로 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완벽한 아기와 같지만, 알고 싶은 것을 먼저 공부하기로 했다. 소설 작가 에피소드들을 먼저 찾아보고 원문을 읽어보는 마음으로 관심이 가는 곳부터 모험을 시작했다.



노트는 왼쪽이 줄노트라서 뒤집어서 반대로 쓰기 시작했다. 왼쪽은 영상 등을 필기하고, 오른쪽에는 추가내용이나 생각을 쓰고 싶었다. 공부하며 들었던 생각들은 원래라면 핸드폰 메모장에 썼을 것이다. 공부한 내용과 생각을 나란히 적으니 재밌다. '사주 보면서 있었던 진상 에피소드가 더 재밌는 이유는?' 이야기 중독자의 작은 메모에 또 웃는다. 


 1번으로 공부한 것은 12신살이었다. '산책처럼, 사주'라는 분의 유튜브를 봤다. 정리가 잘되어있고, 쉽게 설명해서 재밌었다. 영상 처음과 마지막에 짧게 사주 보는 사람에 따라서 보는 사람도 있고 안보는 사람도 있다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라고 언급했다. 그 이유는 천간(위)을 고려하지 않고, 지지(아래)에 있는 12간지만 두고 해석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현실만 보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다. 나는 MZ세대가 가지면 가장 좋다는 '장성살'과 '화개살'을 가졌다. 물론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 '괴강살'도 있다. 오류를 생각하더라도, 정확한 것보다 마음에 드는 해석을 믿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가장 재밌었던 것은 고전문학 시처럼 해석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해석은 예외와 양면성을 가졌다. '살'이라는 말이 단순하게 '험한 것'이라 해석할 순 없었다. '그러한 형태'로 해석하여야 한다. 영어를 공부할 때, 반은 규칙이라서 외우고, 반은 예외니까 외우라고 했던 워어민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여태 살면서 배웠던 분야들의 해석은 문학적, 수학적, 기호학적, 사회학적, 인류애적, 언어학적, 그리고 양면성을 가진다. 오늘은 언어학적과 양면성이었다. 노트에 몇 장을 채우고 나니 '오늘은 여기까지'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내일은 어떤 해석을 맞닿을지 궁금해진다. 




'장성살'을 가진 사람들은 '제왕'이라고 불린다. 조력해 주는 이가 있다면 잘된다고 한다. 나에게는 멋진 배우자가 있다. 필기하는 모습을 보며 남편은 아까처럼 우려의 말을 더는 하지 않았다. 진심을 무시하지 않고, 봐도 못 본 사람처럼 지나가 주는 게 고마웠다. '원하는 바'라는 것을 알고 간지러운 마음을 긁어주는 것만 같았다. 덕분에 눈치 보지 않고 주말 내내 매일 2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관심을 해소할 수 있었다.


최소한 내 주변을 뒤돌아보게 해주는 것만 같아서 만세력을 공부하려 마음먹은 건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이전 01화 만세력 공부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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