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지금 거는 전화는

아들의 썸녀일까 여친일까

by 다독임 Jan 15. 2025
아래로

아들은 올해로 열여섯이 되었지만 친구가 별로 없다. 최강 극 I로서 홀로 있을 때 비로소 에너지가 생산되는 성향이랄까. 그렇다 보니 또래 남자아이들처럼 우르르 몰려다니며 그 흔한 농구나 축구 한번 한 적이 없다. 하교 후에도 회사원 칼퇴하듯 귀가한다. 학교에서도 마음 맞는 친구 몇몇과 대화하며 지낼 뿐 약속을 정해서 나가노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절정의 4, 5학년 시기는 팬데믹 속에 묻혀 있었고 그 이후에도 교우관계는 썩 수월하진 않았다. 야생의 중학생활을 시작한 첫 학기에는 학년 일진과 맞짱을 떠 엄마를 철렁하게 했고, 다음 학기엔 같은 반 덩치 큰 날라리와 주먹다짐을 해 반성문도 쓴 적이 있다.


아무튼 이렇게 사회성이 조금은 부족해 보이지만, 엄마눈엔 그저 신중하고 반듯한 아들이라고 에둘러 말하고 싶다. 


자, 이제 본론. 이런  내향형의 아들이 요즘 매일 밤마다 여자와 통화를 한다. 


지금 거는 전화는

심지어 두 번째 여자다.





첫 번째 그녀 A

사춘기가 되어도 문을 굳게 닫는 일이 거의 없던 아들은 작년 봄쯤 갑자기 문을 닫았다. 그러려니 했는데 잠시 후 방문 넘어 도란도란 들려오는 아들의 목소리. 가족들과 통화할 때와는 사뭇 다른 상냥한 톤이다. 한 시간씩 넘게 통화하고 나올 때 여친이냐 사귀는 거냐 어떤 아이냐 질문을 해보면 그저 같은 반의 조용한 친구라고 못을 박았다. 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 많았는진 모르지만, 주말에도 동네에서 만나 그 흔한 카페 한번 안 가고 놀이터에서 대화만 나누는 건전한 사이로 이어졌다. 그 첫 번째 썸녀와는 단둘이 롯데월드를 다녀오는 파격적인 행보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연락이 끊기더니 점점 소원해진 것 같았다. 그냥 둘은 친구였던 걸까? 사귀자고 했는데 차였을까, 서로 숙맥이라 데면데면하다 썸이 종료되었을까. 아직도 미스터리다.



두 번째 그녀 B

첫 번째 썸은 추억으로 남은 채 겨울방학이 시작됐다. 방학 이후에는 집과 복싱체육관만 오가는 일상이 이어졌는데, 지난주에는 잠시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온다고 한다. 드디어 집밖으로 놀러 나간다는 반가운 소식에 질문을 던졌다.


- (급 화색) 웬일. 누구랑 만나?


- 있어. 엄마 모르는 애.


-그래? 이름이 뭐야?

(집밖으로 나간다니 정말 반갑고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있다니까.

(더 이상 묻지 말라는 분위기 철철)


(이놈아, 있긴 뭐가 있어. 대충 낌새를 보니 뭔가 느낌이 오는데 최대한 무심하게 다시 질문)

- 아, 혹시 A랑 오랜만에 만나는 거야? 요 며칠 전화 통화하는 것 같던데.


- 아냐.  걔랑은 연락 안 한 지 오래됐지.


-그럼 누구야? 궁금한데.

.

.

(그렇게 여러 번의 질척임 후)

-이름만 알려주면 더 안 물어볼게. 약속!


한동안 구질구질하게 정보를 캐기 위해 유도 신문을 했지만 간신히 이름 석자만 알아냈다. 하도 웅얼웅얼 말해서 고 씨인지 조 씨인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새로운 여자사람친구가 생겼다는 게 확실해졌다. 매일 밤 통화할 때 방문 앞에 귀를 들이밀며 궁금해하는 나를 보며 하는 남편의 한마디.

-나한테 그렇게 관심을 쏟아주면 안 될까?

(여보 미안)


첫 번째 여사친이 생겼을 때 온갖 궁금증을 싸매고 있던 나는 이제 초연해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집돌이 아들을 단번에 밖으로 끄집어낸, 과묵한 아들을 수다쟁이로 만든 그 아이는 누구일까.

이번 주에는 학교도서관에서 만나기로 했다는데, 코스가 아무리 봐도 노잼아들답다. 메가커피라도 가서 따뜻한 음료라도 사 마시라고 했는데 글쎄 어쩔지.


워낙 마음 터놓고 대화하는 친구가 몇 없었기에 아들의 새 친구가 나는 몹시 궁금하다. 심지어 다행이고 반갑다는 마음까지 든다.

다 큰 아들을 이렇게 간섭하고 궁금해하는 내가 이상해 보인다는 남편. 이 올가미 같은 어미의 집착은 언제쯤 줄어들까.


어쨌거나 이일로 내가 얻은 교훈은 하나다.


친구가 없어서 걱정이다.

집에만 있어서 걱정이다.

..

굳이 걱정을 미리 사서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련히 뭐든 할 때 되면  알아서 한다는 말은 진리. 영하 15도의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즐겁게 외출하는 적극적 태도를 보며 엄마의 걱정을 좀 내려놓아본다. 그리고 너의 썸이든 연애든 쿨하게 응수하며 응원해 줄 멋진 엄마가 돼 보기로 마음먹는다. 적당히 모르는 척도 하면서.

  

그나저나 이번 썸녀와는 어떤 사이가 되려나?




매거진의 이전글 '돌밥'이라 쓰고 "돌볶"이라 읽는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