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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가 무서운 이유는 돈 때문이다

딸아이의 치과 치료

by 다독임 Feb 04. 2025

며칠 전부터 딸아이가 치통을 호소했다. 아무래도 작년 여름에 때운 치아가 다시 속을 썩이는 모양이다. 달고 단 것을 입에 달고 살았으니 치아가 건강할 리 없다. 이 썩으면 아프고 고생한다는 말이 초등학생에게는 쉽게 와닿지 않았던 건지, 내 이는 영원히 튼튼할 것이라는 이상한 확신 때문이었는지 언제나 단 것을 가까이했다.

 

다행히 딸은 치과가 무섭다고 울고부는 아이가 아니었다. 일찍부터 동네 일반 치과에서 의자에 달린 모니터 속 코코몽과 뽀로로를 보며 금세 적응했고, 치위생사들 사이에서 진료 잘 받는다고 소문난 아이였다. 아픈 마취주사도 꾹 잘 참고, 고등어 타는 냄새와 시끄러운 드릴 소리에도 익숙해했다. 심지어 초등학생이 되어서는 치과 의자는 누울 수 있어 편안하네, 스피커 너머 들려오는 노래가 좋네, 치료 전 입술에 듬뿍 발라주는 바셀린이 촉촉하네 하며 치과를 소아과보다 더 좋아하는 희한한 아이가 됐다. 어쨌거나 딸은 먼 어린이치과대신 집 앞 치과로 편히 다니는 단골이 되었지만, 보호자로서 동행하는 나는 그 치과를 무서워했다.


치과 치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이번엔 돈이 얼마나 들까 하는 걱정, 그것이 치과가 무서운 이유였다.

흔히들 얘기하지 않나. 치과는 아픈 것보다 돈 드는 게 무섭다고. 아니면 나만 그런가.




구치가 나기 전에는 싼 재료로 간단히 때우면 됐고, 씌운다 한들 큰 비용이 들지 않았다. 영구치가 난 후에도 레진으로 때우는 것은 10만 원 안짝이니 그러려니 했다. 치열이 고르고 반듯해 교정비 몇백만 원 안 드는 게 어디냐며 스스로 위로했다. 치과 가기 싫다며 떼쓰지 않고 순순히 잘 치료받는 게 어디냐며 치료비를 상쇄할 만한 장점들을 애써 떠올렸다.


그러다 작년 여름, 영구치를 씌워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영구치이니 아무 재료나 씌울 수 없는 데다, 한창 자라는 어린이에게 누런 금니는 아니지 싶어 치아색의 도자기 재료로 씌우고 56만 원이라는 거금을 지불했다. 그 무렵 다른 이도 치료받았는데 의사는 깊이 썩긴 했지만 좀 애매하니 일단 때우고 좀 더 지내보자 했다. 두 치아를 연달아 신경치료를 하기엔 아이도 힘들고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였을지도.


그날 이후 딸아이는 하루 네 번 꼬박꼬박 3분 양치질을 실천했다. 제 딴엔 그동안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는 후회와 큰돈을 쓰게 한 부모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었을 거다. 아무튼 그렇게 잘 관리해 왔지만, 임시방편처럼 때운 그 이가 겨울이 되면서 신경을 자꾸만 건드렸고 잊을 만하면 밀려오는 뭉근한 치통에 몇 번을 불편해했다. 그러나 나는 좀 더 있어보자는 의사의 얘기를 떠올리며 차일피일 치료를 미뤄왔다.


그러다 엊그제 딸은 숨긴 고백하듯 조용히 털어놓았다.


"엄마, 나 치과에 가봐야 할 것 같아"


딸아이도 안다. 엄마가 치과를 무서워한다는 것을. 아픈 치료를 받는 환자여서가 아니라, 치료비를 결제하는 당사자여서 부들부들 떤다는 것을. 그런 엄마의 눈치를 보다 이제야 슬그머니 털어놓은 것이다. 나 역시 치아가 약해서 이미 임플란트를 두 개나 심은 몸. 그렇기에 치아가 불편하면 얼마나 힘들고 예민해지는지 알면서도 당장의 치료비가 머리에 떠오르면서 애써 미뤄온 것이었다. 미안하다, 아가.

사실 돈도 돈이지만 13살 밖에 안된 아이가 벌써 신경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게 속상했다. 120세 시대를 살아갈 아이가 벌써부터 씌운 이를 달고 살게 되었으니 씁쓸하기도 하고 아무튼 마음이 편친 않았다.




오늘 아침 영하 10도의 칼바람을 맞아가며 치과에 다녀왔다. 병원에서 3만 원을 할인해 줬지만 자그마치 55만 원이란다. 아이가 진료를 받을 동안 재빨리 지역 화폐 50만 원어치를 구입해 2만 5천 원 할인을 받았다. 그리고 오늘의 치료비 37,600원 결제. 아이고 머리야.


치료받고 나오는 길.

큰돈을 쓰고 나온 엄마에게 미안한 건지, 눈치가 보이는 건지 딸아이가 조잘조잘 떠든다.

"엄마, 당분간 뭐 사달라고 안 할게. 외식하자는 말도 조금만 할게. 그리고 나 열심히 닦고 있잖아."


열심히 닦겠다는 말은 믿겠지만, 뭐 사달라고 안 한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 옷 속을 파고드는 시린 바람 때문인지, 순식간에 줄어든 통장 잔액 때문인지 내 마음도 무척이나 시리다. 에둘러 헛소리를 하며 시린 고통을 애써 잊어본다.  


"꾸릉이가 나중에 치과의사 되는 건 어때? 그럼 나중에 엄마아빠 공짜로 치료받을 수 있잖아.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해야 돼. 알았지?"



*일러스트_
치과와 초콜릿과 젤리를 좋아하는 딸내미

(원하는 이미지가 유료여서 딸에게 비슷하게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딸은 그림 그리기와 만들기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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